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성균관대학교에 오기 전 15년 동안 월스트리트의 트레이딩 플로어에서 G7 국가의 채권, 파생상품 등을 트레이딩 하고 펀드를 운용하면서 보냈다. 월스트리트의 트레이딩 플로어의 모습을 영화나 뉴스에서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대형 국제투자은행들, 예를 들면 내가 일했던 시티나 제이피 모간 등, 은 축구장만한 트레이딩 플로어를 가지고 있다. 여기에서 와이셔츠에 넥타이까지 맨 트레이더들이 고함을 치며 전화를 하거나 바로 앞에 있는 6-8 개의 모니터를 들여다보고 있는 모습은 영화 속 장면과 판박이다. 그리고 영화에서처럼 다 남자들이다. 난 15년간 단 한번도 여자 동료와 일해본 적이 없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주연의 영화 <Wolf of Wall Street> 만큼은 아니더라도, 트레이딩 플로어의 boy들은 boys’ club 분위기를 유지한다. 영화처럼 직장에서 욕을 입에 달고 사는 것은 물론, 화가 나면 전화기나 컴퓨터 모니터를 때려 부수는 경우도 허다하다. 또 온종일 틈만 나면 계속되는 남자들의 수다와 시시껄렁한 농담을 귀가 아프게 들어줘야 한다.
한국의 샐러리맨이 술고래라고? 장담컨대 월스트리트에 와 보면 생각이 바뀔 것이다. 그런데 너무 지루해서 영화에선 절대 볼 수 없는 트레이더들의 모습이 있다. 내가 함께 일했던 트레이더들의 대부분은 학부나 석사 과정 수준의 경제학, 통계학 등의 교과서는 꽤 뚫고 있다. 이들 중 많은 사람들은 따끈따끈한 최신 논문들을 훤히 꿰뚫고 있다. 늦은 업무가 끝나고 집에 가서 또는 주말에 공부를 하는 것이다. 물론 영화를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는 집에 늦게 들어가 책 펴고 읽어 보는 트레이더의 모습을 영화에 넣을 리는 없다. 또한 주니어 트레이더의 임무 중 하나는 학계의 논문 결과를 다시 만들어 보고 쓸 만한 것을 찾아 보고를 하는 것이다.  이런 업무를 주는 이유는 고참 트레이더들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실무에선 디테일한 전략과 수행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론에 바탕을 두지 않는 주먹구구식 전략으로는 몇 천억, 몇 조원에 달하는 큰돈을 움직일 수 없다.
지난 학기 이후로 오랜만에 학부 교과서에 푹 빠져있다. 지난 15년 간 단 하루도 이것들을 안 써먹은 날이 없었던 것 같다고 해도 과장이 아닌 것 같다. 그런데 난 왜 학부 때는 이런 생각을 못 했을까. 문득 나를 가르쳤던 교수님들한테 죄송스러운 생각이 든다.

영주닐슨
경제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