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박범준 기자 (magic6609@skkuw.com)

오직 글을 통해서만 세상을 살아내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의 나는 몹시 폐쇄적이고 비사회적인 사람이었다. 근래의 나는 세상을 살아내면서 글을 쓰고 있다. 신문상의 지면이 넓어진 만큼 나와 세상의 접촉면도 넓어진 느낌이다. 그래서 신문사에서 나는 행복하다. 취재 때문에 밥때를 놓쳐 식사하지 못하고 버스에서 끼니를 때워도, 수면이 부족해도 괜찮다.
‘끌어안고 같이 죽고 싶어지는’(박준) 문장을 발견할 때가 있다. 그런 문장을 발견하면 나는 메모를 하거나, 사랑하는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들려준다. 그런 문장을 쓰고 싶었다. 읽고 나서 애가 닳아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게 만드는, 하다못해 창문을 열고 무작정 아무 소리나 내뱉고 싶어지게 만드는 그런, 좋은 문장.
나는 또한 진실한 문장을 쓰고 싶었다. ‘진실한 문장을 써서 정확한 위치에 배치할 것!’ 신문사에 들어온 시점부터 지금까지 내가 지탱하고 있는 유일한 원칙이다. 한 문장, 한 문장 쓸 때마다 나는 끊임없이 자문한다. ‘이 문장은 진실한가?’
그러나 언어는 얼마나 불순하고 불완전한가. 그 어떤 문장을 써도 진실을 온전히 담아낼 수는 없다. 우리는 둥근 원을 이루어 춤추며 생각한다, 그러나 비밀은 한가운데 앉아서 모든 것을 알고 있다(R. 프로스트). 시인의 말대로 생의 진실은 둘레의 한가운데에서 우리를 비웃고 있는지도 모른다. 또한 인간의 기억은 얼마나 왜곡되어 있는가.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은 우리가 기억하는 것만큼 완벽하지 않을 수 있다. 우리가 기억하는 그때의 풍경은 그 기억만큼 아름답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록하는 것’을 중단할 수는 없다. 정확해지기 위해서 우리는 끊임없이 기록하고 기억해야만 한다. 하지만 어떤 형태로 기억하고 기록할 것인가? 나는 그것이 이야기의 형태를 띠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진실한 이야기는 그 어떤 논리나 주장보다도 강력하다. ‘위기에 처한 난민들을 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충분히 강하지 못하다. 주장은 종종 쉽게 무시된다. 하지만 해변에 떠내려온 한 아이의 사진과 그 사진에 담긴 이야기는 모든 논리와 주장을 초월해 우리의 심장을 움켜쥔다.
모든 좋은 이야기에는 겨자씨만 한 진실이 보존되어있다. 그 진실은 무척 연약하고 깨지기 쉬운 것이어서 번잡한 문장이나 한 문장짜리 교훈으로 함부로 말해질 수 없다. 이번 특집면과 사회면 기사에 담긴 11개의 이야기 안에도 어떤 진실이 웅크리고 앉아있다고 나는 믿고 싶다.
너무 내 얘기를 많이 했다. 이 이야기들은 나 혼자 쓴 것이 아니다. 일상을 마치고 텔레비전을 보며 쉬시다가 갑작스러운 요청으로 교열을 봐야 했던 나의 부모님. 평일 새벽, ‘제군들이여’로 시작하는 카톡을 받으며 한 달 내내 시달려야 했던 특집팀 기자들. 늦은 시각 느닷없는 전화를 받아 ‘처음에 대해 얘기해주세요!’라는 어처구니없는 질문을 받아야 했던 인터뷰이들. 엘리베이터에서 우연히 마주친 한 대학생의 어이없는 부탁을 들어준 택배기사 아저씨. 좋은 면을 만들어주신 디자이너님들. 이들 모두에게 감사를 표한다.

박범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