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내게로 와 '꽃'이 되었다
그는 내게로 와 '꽃'이 되었다
  • 강도희 기자
  • 승인 2015.09.22 00:16
  • 호수 158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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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1)

해마다 두 번, 졸업식 때면 성균관로는 때아닌 꽃밭이 된다. 이만 원, 만오천 원, 아니 만 원. 그림자가 길어질수록 꽃집 주인들은 조급해진다. “떨이요, 떨이” 평생 꽃을 사본 적이 없는 당신은 잠깐 고민하다가 빨간 장미와 하얀 안개꽃이 무성한 꽃다발을 고른다. 그렇게 산 꽃은 당신의 손에서 졸업생 선배의 손으로. “아빠, 이거 잠깐만.” 선배의 손에서 아버님의 손으로. “당신 이것 좀 들고 있어 봐.” 아버님의 손에서 어머님의 손으로. 끝내는 다른 여러 꽃과 섞여 기억 속에서 지워진다. 꽃밭은 6개월 뒤에나 다시 돌아올 것이다.
이라크 샤니다르 유적에서는 원시인의 뼈와 함께 꽃의 흔적이 발견됐다. 그 옛날 호모 사피엔스도 꽃으로 죽음을 위로할 줄 알았던 것이다. 조선 시대에도 꽃은 민간 의례에서 필수적이었다. 궁중 잔치가 열릴 때면 잔치 음식마다 꽃을 꽂았고, 임금은 신하들에게 꽃을 하사했다. 불교의식에서도 꽃 공양은 중요한 의식이었다. 불교의 꽃은 극락세계를 상징한다. 오늘날에도 의미 있는 날에 꽃은 빠질 수 없다. 졸업식 날의 꽃다발엔 축하와 부러움이 담겨있고, 결혼식 날의 부케엔 신부의 설렘이 가득하다. 장례식장의 국화꽃은 마지막 작별이자 유가족을 향한 위로다.
그런 꽃을 특정한 때에만 보는 것은 아까운 일이다. ‘꽃의 나라’ 네덜란드는 집집이 창문 가에 꽃병과 화분을 꼭 둔다. 그러면 나뿐만 아니라 창문 밖의 다른 이도 함께 꽃을 즐길 수 있다. 우리나라는 아직 길을 걷는 이가 즐거울 정도로 집 창가마다 꽃이 만개해 있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일상 속의 꽃을 즐길 수 있는 곳이 있다. 올림픽공원은 꽃으로 뒤덮인 벌판으로 유명하다. 장미, 야생화, 유채꽃 등 각 꽃별로 정원이 있으며, 오는 10월까지는 황화코스모스 축제가 한창일 예정이다. 이 외에도 △한강 시민공원 △삼청동 정독도서관 뒷길 △수원 권선구 당수동 시민농장 등이 영화 속에서만 보던 꽃 풍경을 ‘상영’한다.
혼자 걸으며 꽃을 감상하는 일이 아직 낯간지러운 당신에겐 다른 곳을 추천한다. 사실 꽃은 찾아가서 ‘보는’ 주인공이기보다는 눈길을 돌렸을 때 ‘보이는’ 조연일 때가 더 많다. 대학로에 있는 ‘제프리 카페’나 ‘온새미로’는 카페와 꽃집을 합친 ‘꽃 카페’다. 커피와 함께 꽃다발이나 장식물을 판매하며, 일일 꽃꽂이 강좌를 운영하기도 한다. 제프리 카페를 운영하는 김도윤 씨는 “웨딩이나 파티 같은 큰 행사를 위주로 작업하다 보니 대중 속으로 들어가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며 설립 이유를 밝혔다. 온새미로를 운영하는 이윤희 씨는 “언제부턴가 사람들은 꽃을 사치품이라 생각한다”며 “그래서 최대한 다양한 꽃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다”고 했다. 벚꽃 풍경이 아득해질 한겨울엔 이들 카페에서 꽃향기를 맡으며 시험공부를 하는 것은 어떨까.
드라이플라워는 꽃 소비 문화의 또 다른 트렌드다. 안개꽃, 장미, 접시꽃 등의 꽃을 말린 드라이플라워는 책상 위 빈 병에 꽂거나 문에 붙이는 등 인테리어 소품으로 사용된다. 인사캠 정문 앞 옷가게 ‘Luna Muse’는 옷가게라는 명칭이 무색하게 쇼윈도부터 온통 드라이플라워로 가득하다. 어머니가 꽃집을 하셔서 어렸을 때부터 꽃을 좋아했다는 주인 윤다예 씨는 직접 꽃을 말리고 염색한다. 지난 17일부터 19일까지 Luna Muse를 비롯한 혜화동의 주변 옷가게들이 모여 꽃 디자인 소품들을 파는 플리마켓을 열었다. 꽃다발을 비롯해 핸드폰케이스, 양초, 엽서 등 드라이플라워를 이용한 다양한 제품들이 눈길을 끌었다.
꽃은 아름답다. 그러나 특별한 날이 아니면 사람들은 꽃을 사지 않는다. 그러나 특별한 날이기에 꽃을 사는 것이 아니다. 꽃을 사기 때문에 특별해지는 것이다. 그리고 해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다. 꽃을 사는 행위가 주는 기쁨을. 꽃은 오늘이 밸런타인데이인지, 졸업식인지 모른다. 그저 당신이 ‘필에 꽂혀’ 꽃을 사러 오길 기다릴 뿐.

 

▲Luna Muse에서 판매하는 드라이플라워. 사진|ⓒ안상훈 기자 tkd0181@skkuw.com

 

한낮의 대학로 제프리 카페에선 커피향보다 꽃향기가 더 진하다. 

사진|ⓒ안상훈 기자 tkd0181@skkuw.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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