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2)

기자명 강도희 기자 (nico79@skkuw.com)

 

문득 드라이플라워를 만들고 싶어졌다. 고백할 사람도 없고, 누가 결혼하는 것도 아닌데. 그저 이 가을에 어울리는 바싹 마른 안개꽃 한 다발이 있었으면 했다. 너무 더워 밖과 온실이 구분되지 않는 어느 가을날, 양재 꽃시장을 찾았다.

 

양재 꽃시장의 꽃들이 누군가의 꽃다발이 되길 기다리고 있다.

사진|ⓒ안상훈 기자 tkd0181@skkuw.com

오전 9시, 꽃다발에 쓰는 꽃을 파는 절화 매장이 한창 활기찰 때다. 양재 꽃시장은 서울 서초구에 있는 aT 농수산식품센터 옆에 있다. 정문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보이는 곳은 aT 공판장. 이곳에서 경매가 이뤄진다. 그 뒤로 화환 매장이 있고, 종묘 매장, 절화 매장, 분화 매장 등이 있다. 절화는 오전 1시부터 경매가 이루어진다. 전국 각지의 농가에서 꽃을 갖고 오면 도매상인들은 꽃 상태를 보고 구입한다. 산 꽃을 다듬고 진열한 후 판매가 시작된다. 싱싱한 꽃을 다양하게 보려면 경매가 있는 월, 수, 금 오전에 가는 것이 좋다. 가을을 맞아 집집이 국화, 장미, 수국이 한창이다. 여유로운 토요일 오전, 마지막 떨이로 가격이 저렴해서일까, 사람도 제법 많았다. 누가 주었는지 모를 장미 한 송이를 쥐고 엄마 등에 업힌 아이도 있고, 꽃이 담긴 상자를 앞이 안 보일 정도로 잔뜩 들고 가는 아저씨도 보인다. 양재 꽃시장은 도매시장이지만 호기심 많은 연인, 친구끼리의 데이트 장소로도 인기가 많다.
대학생 권주원(22) 씨는 500일을 맞아 남자친구에게 줄 꽃다발을 만들기 위해 꽃시장에 왔다. “꽃다발 하나에 이만 원, 삼만 원 하는데 직접 만들면 훨씬 싸죠.” 고민 끝에 골랐을 마거리트 한 다발에서 그녀의 세심함이 느껴졌다. 반면 정선애(23) 씨는 친구에게 또 샀느냐는 핀잔을 들으면서도 손 한가득 꽃이다. “졸업식 날 친구에게 줄 꽃다발을 직접 만들려고요. 배색이나 크기도 직접 정하고 싶었어요.” 한편 절화 매장 위층에선 유리병이나 리본 등 인테리어 소품도 살 수 있다.
절화 매장 앞에 있는 두 개의 온실은 분화 매장이다. 유리 천장은 도시를 차단하고 햇빛만을 초대한다. 꽃도 옷과 같다. 꽃집의 꽃은 주인의 취향을 반영한다. 동양란, 서양란 등 난만 파는 곳이 있는가 하면 국화, 장미, 제라늄 같은 분화만 파는 곳도 있다. 선인장과 다육식물로 가득한 가게가 눈길을 끌었다. 주인아주머니는 자식 같은 화분들이 받는 눈길이 반가운 듯 말한다. “예쁘지? 농장에서 직접 갖고 온 거야.” 가시 돋친 몸 위로 빨간색, 노란색 몸이 또 붙어있는 선인장의 이름은 ‘비목단’. 더군다나 한 달에 한 번만 물을 줘도 된다는 그의 ‘무심함’ 앞에 결국 삼천 원을 꺼냈다.                
꽃시장은 오후 1시까지 문을 연다. “1시 이후엔요?” 마른 꽃가지를 정리하고 있던 상인분께 물었다. “아, 우리도 자야지!” 해바라기를 파는 그들이지만 집에서, 식당에서, 혹은 누군가의 두 손 위에서 싱싱해야 할 꽃을 위해 매일 밤 분주해지는 양재 꽃시장, 그들은 달맞이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