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게임디자인 강의를 하면 가장 처음에 ‘게임은 닫힌 시스템’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규칙, 진행, 목적, 결과, 경계, 갈등 등등의 게임 요소들은 서로 복잡하게 연계되어 있고 하나의 요소에 변화가 오면 다른 요소들도 적든 많든 모두 영향을 받게 되어 게임 디자이너들은 이들의 역할을 전체 시스템의 관점에서 규정하고 인내를 가지고 균형을 맞추어 플레이어로부터 의도하는 감정을 끌어내야만 한다.
이러한 요소들이 적절하게 배치되면 그들의 조합은 플레이어에게 의미 있는 선택(meaningful choice)을 요구한다. 좀 더 평탄해 보이지만 멀리 돌아가는 길을 선택할 것인가? 험해 보이지만 좀 더 짧은 길로 갈 것인가? 따위의 선택이다. 만약에 플레이어가 어떤 선택을 했는데 알고 보니 무엇을 선택했더라도 결과는 같았을 것이라면 이는 게임 시스템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고 플레이어는 더는 게임에 몰입할 수 없게 된다.
선택의 기준은 게임의 목적과 규칙에 따라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에서 비롯된다. 이러한 문제는 플레이어의 능력에 비해 너무 어렵거나 너무 쉽지 않게, 적당한 도전을 주면서도 감당할 수 있을 만하여 좌절하지 않을만한 난이도를 가지고 있고 플레이어의 능력과 비례하여 점진적으로 어려워져야 한다. 능력보다 너무 어려우면 좌절하고 너무 쉬우면 지루하게 느껴져 이 역시 몰입 상태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된다. 이는 플로우(Flow) 이론과 정확하게 맥을 같이한다.
 게임 디자이너는 이러한 요소들을 조율하여 균형 있는 조합을 끌어내야 하는데 이것이 쉽지만은 않다. 하나의 요소에 변화를 주면 시스템 내의 다른 요소들에 영향을 주어 전체적인 시스템이 변하게 되기 때문에 지속적인 플레이테스팅(playtesting)을 통해 시스템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점검해야 한다. 그래서 최적화된 시스템, 사람들이 몰입하고 환희를 느낄 수 있는 상품을 시장에 내놓아야 한다. 그래서 놀이를 만드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게임을 만드는 것은 전문적인 능력을 필요하다는 것 역시 강의에서 꼭 짚어준다.
인간 사회는 사람이 만들어 낸 가장 복잡한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은 워낙 많은 요소로 구성되어 있어 경제 시스템이나 교육 시스템 같은 그 부분집합만 하더라도 복잡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이런 고도의 시스템들은 어떤 변화를 주더라도 그 효과가 게임처럼 바로 나타나지도 않을뿐더러 워낙 많은 변화가 시스템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 무엇이 어떠한 변화를 가져왔는지, 왜 그런 변화를 가져왔는지 가늠하기 어렵다. 현실은 게임이 아니니까.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사회의 시스템은 이상과는 거리가 멀다. 특히 이 시스템을 사용하는 개개인은 이 시스템이 과연 공정한 규칙을 가졌는지 의심할 수밖에 없다. 모두가 같은 기회를 얻지도 못하고 노력의 대가도 다 다르다. 왜 누구는 성공하는지 왜 누구는 실패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불합리를 반복해서 경험하기도 한다.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과연 그것이 의미가 있을지, 어차피 결과는 같지 않을지 불안하고 화가 난다. 현대를 사는 우리는 인류 역사 이래 가장 많은 선택권을 가질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우리의 조상들이 얼마나 많은 노력과 희생을 치르며 쟁취한 권리인데 그것들이 별 의미가 없을지도 모르는 이상한 세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인류 최고의 발명품이라는 민주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자본주의 이후로 우리는 더 나은 시스템을 개발할 의지도, 희망도 없어 보인다.
게임이었더라면 플레이어는 진작 몰입에서 빠져나왔을 것이다. 더는 이 시스템의 규칙을 따르고 싶지도 않고 시스템에 농락당하는 느낌에 게임을 종료하고 다른 게임을 찾았을 것이다. 하지만 인생은 게임과 달라 그럴 수 없지 않은가. 그래서 이민이나 가고 싶다는 넋두리가 나오기도 하는 모양이지만 그 어디에 완벽한 시스템을 가진 유토피아가 존재할까.
 시간이 걸릴 것이다. 크고 복잡한 만큼 시간이 걸리고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영화 ‘인터스텔라’의 대사처럼 “우리는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
 

이준희
영상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