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시장 도슨트 이희준 씨 인터뷰

기자명 허옥엽 기자 (oyheo14@skkuw.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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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에는 묵직한 가방을 메고 한 손에는 공책을 들고 전국에 흩어진 시장을 누비는 한 청년이 있다. 열흘에 한 번 꼴로 신발에 구멍이 날 정도로 시장을 다녔다는 그. 서울부터 바다 건너 제주까지 전통시장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가는 이 스물여덟의 청년에게 시장은 삶의 지혜를 배울 수 있는 ‘살아있는 책’ 같은 공간이다. “지금도 시장에만 가면 가슴이 두근거린다”고 말하는 전통시장 도슨트 이희준 씨를 만나 그의 시장 이야기를 들어 봤다.

 

ⓒ허옥엽 기자

‘전통시장 도슨트’라는 직업을 처음으로 만들었다. 전통시장 도슨트가 하는 일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박물관이나 미술관 등에서 전시물이나 작가에 대해 설명해주는 ‘도슨트’처럼 전통시장의 역사, 상인의 숨겨진 이야기, 철학이 담긴 시장상품 등을 설명해주는 사람이 바로 ‘전통시장 도슨트’다. 전통시장 도슨트라는 새로운 직업을 만들게 된 것은 사람들이 시장에 대한 정보가 부족해서 시장을 찾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구로에서 갈 수 있는 시장을 아느냐’고 물어보면 대부분 잘 모를 것이다. 실제로 구로에는 ‘구로 시장’이 있고, 그 옆에 ‘남구로 시장’도 있다. 구로 시장에는 ‘칠공주 떡볶이 할머니’가 계시는데 일곱 분의 할머니가 일곱 개의 철판으로 같은 재료를 사용해 다른 맛을 내는 떡볶이를 파신다. 그래서 할머니마다 단골이 다르다. 누군가가 시장에 대한 이런 설명을 해준다면, 구로에 들를 일이 있을 때 칠공주 떡볶이 할머니를 자연스레 떠올리고 그곳을 찾게 될 것이다. 이런 역할을 전통시장 도슨트가 하는 것이다.

전국에 있는 전통시장을 돌아다니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
이전에 전통시장에서 조달한 정량의 식재료와 셰프의 레시피를 집으로 배송해 주는 ‘쿠킷’이라는 소셜 벤처사업을 했었다. 이 사업의 소셜 미션이 전통시장을 활성화시키는 것이었기 때문에 서비스를 만들기 전부터 서울 시내에 있는 약 100여개 정도의 전통시장을 돌아다니면서 네트워크를 만들었다. 전통시장을 다니면서 전통시장에서 파는 식재료가 대형마트에서 취급하는 식재료와 비교했을 때 절대 뒤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 간혹 시장을 다니면서 이태원, 홍대 등지에서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젊은 셰프들을 만나곤 했는데, 그들이 하나같이 ‘에이급을 넘어서는 재료를 찾으려면 시장에 와야 한다’고 말하더라. 그렇게 전통시장의 가능성을 발견했고, 본격적으로 시장을 다니게 됐다.

청량리 전통시장을 취재하다가 한 상인에게 ‘파파라치’로 몰렸다고 들었다.
나는 시장을 취재하기 전에 상인 분들에게 ‘시장에 대한 글을 쓰고 사진을 찍겠다’는 동의를 구한다. 청량리 시장을 취재할 때도 상인 분들에게 동의를 구하고 취재를 시작했다. 그런데 한 상인 분이 내가 사진을 찍으려하자 나를 향해 ‘이 친구가 파파라치다!’라고 외치셨다. 그 순간, 머릿속이 새하얘지는 것 같더라. 이미 동의를 해주신 다른 상인 분들이 나를 도와주실 줄 알았는데 모두들 가만히 계셨다. 그 때 내가 만약 그분들에게 화를 냈다면, 더 이상의 시장 취재는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화가 나기는커녕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사과의 말씀을 드리면서 대화를 하다가 왜 그  분이 그렇게 행동하셨는지 알게 됐다. 파워블로거라는 사람이 가게를 예쁘게 소개해주겠다고 찾아와 사진을 찍어가서는 구청에 신고를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몇 달 동안 장사를 하지 못했었는데, 그런 일이 있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큰 카메라를 들이밀고 또 사진을 찍은 것이다. 그 분 입장에서는 당연히 불쾌할 수밖에 없으셨을 것이다. 그래서 그 분께 카메라의 메모리 카드를 선물로 드렸다. 이런 일이 있고나서부터는 상인 분들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하는지를 알게 됐다.

ⓒ이희준 제공

가장 기억에 남는 시장과 그 이유가 궁금하다.
전라도 광주에 있는 ‘말바우 시장’이다. 말바우 시장은 이름이 특이해서 찾아간 시장이었다. ‘말바우’는 전라도 사투리로 ‘말 바위’라는 뜻인데, 옛날에 말처럼 생긴 큰 바위가 있어서 그렇게 불렸다는 이야기도 있고, 바위에 있는 말굽 자국 때문에 그렇게 불렸다는 이야기도 있다. 사람들은 이 커다란 바위를 이정표 삼아 시장을 만들었다. 내가 말바우 시장을 좋아하는 이유는 이 시장이 ‘파머스 마켓’이기 때문이다. 파머스 마켓은 농부들이 자신이 기른 각종 농산물을 직접 가져와 판매하는, ‘상인이 농부고 농부가 상인’인 시장이다. 말바우 시장을 좋아하는 또 한 가지 이유는 이곳이 우리나라에서는 드물게 5일장이 두 번 서는 상설 시장이기 때문이다. 말바우 시장은 2일, 7일에 서는 오일장에 오는 상인과 손님이 다르고 4일, 9일에 서는 오일장에 오는 상인과 손님이 다르다. 그만큼 말바우 시장은 다른 시장들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활발하게 살아 숨 쉬는 시장이다. 광주 토박이들은 광주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말바우 시장에 가야한다’고 이야기하더라.

전통시장 취재 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규칙은 무엇인가.
‘상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는 점을 가장 중시한다. 또한 ‘시장을 함부로 기록하지 않는다’는 점도 중요하다. 나는 어떤 시장에 대한 기록을 남기기 위해 최소 10번 이상 그 시장을 찾는다. 첫날에는 시장에 가서 10시간 이상 사람들을 관찰한다. 시장은 아침이 다르고, 점심이 다르고, 저녁이 다르고, 어제가 다르고, 오늘이 다르고, 내일이 다르기 때문에 시장을 알려면 먼저 시장의 분위기를 익혀야한다. 시장에 두 번째로 가는 날에는 사람들의 시선을 좇는다. 사람들의 시선이 머무는 곳은 대부분 비슷하기 때문에 손님들의 시선을 좇다보면 그 가게의 베스트 상품을 찾을 수 있다. 그럼 나는 그 상품을 먹어보고, 입어보고, 체험해본다. 이 과정이 끝나면 본격적으로 상인과 대화를 시작한다. 그리고 그 다음날 똑같은 옷을 입고 또 그 시장을 찾아 상인에게 좀 더 깊은 질문을 하는 것이다. 그 다음 날 다시 찾아가보면 그 가게의 단골을 알 수 있게 된다. 3일 정도 찾아가면 매번 마주치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또 그 가게의 단골 분을 붙잡고 대화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지역 토박이 분을 만나 시장의 역사를 듣는다. 시장에 있는 순대 국밥집에서 소주 한 잔 걸치며 국밥을 드시는 분은 보통 그 지역 토박이시더라.(웃음)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모두 마친 후, 기록을 시작한다. 시장에 대한 기록은 오로지 시장 안에서만 한다. 시장에서 느낀 매 순간의 생각, 감정들을 다 기록하되, 사견을 최대한 배제하기 위해서다.

특정 전통시장에서만 맛볼 수 있는 특별한 먹을거리를 소개해준다면.
제주에 있는 ‘동문시장’은 동문수산시장, 동문공설시장, 동문재래시장, 동문시장 주식회사 이렇게 4개의 시장이 합쳐져 있는 구조로 돼있다. 그 중에 동문시장 주식회사 1층에 가면 ‘금복식당’이라는 곳이 있다. 그 곳에 가면 94살 되신 할머니께서 제주에서 나는 덕산 콩을 직접 갈아 서리태콩국수를 만들어 주신다. 우리나라 어디를 가도 그 콩국수 맛을 따라올 곳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부산에 있는 ‘부전시장’에 가면 죽만 파는 거리가 따로 있다. 그 곳에서 리어카를 끌고 다니면서 죽을 팔고 계시는 분을 만나면 그 분이 파는 콩죽을 꼭 먹어보라. 이 분은 죽을 판매하는 상인들에게 죽을 팔기 때문에 죽이 맛이 없으면 큰일 난다.(웃음) 그 콩죽을 먹다보면 다른 죽이 맛이 없어질 정도로 맛있다.

앞으로의 목표가 궁금하다.
최근에는 누군가 ‘통닭’이 먹고 싶다고 하면 전국에 있는 시장 중 통닭이 가장 맛있는 시장을 큐레이션 해는 일을 하고 있다. 서울에 있는 ‘영천시장’에 가면 다리를 쩍 벌리고 있는 통닭이 있는데, 옛날 통닭 중에서는 그 통닭이 제일 맛있다. 부산에 있는 ‘부평깡통시장’에 가면 가마솥에서 튀긴 거인통닭을 먹을 수 있다. 또, 수원에 가면 ‘팔달문 시장’에 통닭거리가 있는데 그 곳에는 10개 정도의 통닭집이 모여 있다. 대학생 전문 통닭집, 가족 전문 통닭집, 배달 전문 통닭집 등으로 나누어져 상도덕을 지키면서 통닭집이 운영되고 있다.(웃음) 인천에 있는 ‘신포국제시장’에 가면 엄청나게 큰 닭강정을 먹을 수도 있다. 이렇게 큐레이션을 해주면 사람들은 대부분 ‘그게 다 시장에 있었어?’라는 반응을 보인다. 이런 반응을 볼 때마다 전통시장 도슨트로서 시장에 대한 정보를 효율적으로 전달해 사람들이 시장에 대해 갖고 있는 편견을 깨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한다. 시장이 청결하지 못한 문제, 시장에 편의 시설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문제를 나 혼자 당장 해결할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시장에 대해 가지고 있는 정보를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는 데 집중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통해 전국에 있는 모든 시장을 플랫폼화 할 계획이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전 세계의 모든 시장을 큐레이션 할거다. 이미 도쿄에 있는 시장은 취재가 끝난 상태고, 곧 대만과 태국, 방콕에 있는 시장을 취재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