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공학 1

기자명 허옥엽 기자 (oyheo14@skkuw.com)

‘인간공학적(혹은 인체공학적) 디자인’이라는 용어는 자동차, 휴대폰, 가전제품, 가구 등의 광고에서 자주 사용되는 말이다. 이 용어는 이제 일반인들에게도 익숙한 용어가 됐지만, ‘인간공학’이라는 학문 자체는 국내에 보급된 지 50년도 채 되지 않은 낯선 분야다. 생산자 중심이었던 과거 사회에서 사용자 중심의 사회로 빠르게 변화됨에 따라 현대 사회에서 인간공학의 중요성은 나날이 커지고 있다. 이에 학술면에서는 서울대학교 산업공학과 윤명환 교수를 만나 인간을 향한 학문, 인간공학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고, 인간공학의 응용분야로서의 ‘감성공학’에 대해 알아봤다.

서울대학교 산업공학과 윤명환 교수 인터뷰

ⓒ허옥엽 기자

 ‘인간공학(Ergonomics)’이란 어떤 학문인가.
인간공학이란 인간의 신체적, 인지적 특성을 정량적으로 파악하여 이를 시스템과 제품 설계 등에 적용해 인간이 더욱 쉽고 효율적으로 시스템이나 제품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학문이다. 쉽게 말해서 근로자의 입장에서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더 쾌적하게 일할 수 있도록 작업환경을 개선할까’ 고민하고, 사용자의 입장에서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제품을 더 편하게 이용할 수 있을까’ 연구하는 학문이 바로 인간공학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대부분의 병원의 경우, 건물 배치나 안내판 등이 환자보다는 의사 중심으로 설계된 경우가 많다. 이렇게 의사 중심적으로 설계된 시스템을 사용자인 환자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개선점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학문이 인간공학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인간공학이 발달해 온 배경은 어떠한가.
1900년대 초에 미국의 프레더릭 테일러가 근로자의 근로의욕을 높이고 능률을 증진하기 위해 ‘과학적 관리법’을 고안했다. ‘테일러 시스템’이라고도 불리는 이 작업 관리법이 고안되기 이전에는 근로자가 100개의 제품을 생산하는데 1시간이 걸리든, 10시간이 걸리든 상관하지 않았다. 그러나 테일러는 노력은 최소화하면서 산출은 최대화하는 방법에 대해 고민했고, 여기에서 인간공학이 시작됐다. 이후 프랭크 길브레스가 테일러의 작업시간 연구를 심화하여 인간공학의 기반을 마련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 미국에서는 전쟁 수행에 필요한 기계를 설계하는데 인간공학이 활용되기도 했다. 이후 인간공학은 우주 개발 및 항공 산업 등 다양한 분야의 산업과 함께 발전됐다. 1970년대 말, 정보화 시대가 도래하자 인간과 컴퓨터의 상호작용에 대한 연구가 시작됐고 현재까지 사용자 인터페이스, 사용자 경험 설계, 감성공학 연구를 중심으로 인간공학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인간공학적 설계에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인가.
‘사물을 보는 관점’이 인간공학적 설계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인간공학적 시스템이나 제품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사용자 중심으로 시각을 바꿔야 한다. 기술을 가진 생산자가 자신이 편한 대로 시스템이나 제품을 만들면 제작 자체는 쉽겠지만, 사용자가 그 제품을 사용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므로 생산자는 관점을 바꿔 사용자의 입장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를 정의하고, 사용자가 누구인지, 어떤 일을 하는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와 같은 점들을 파악해야 한다.

인간공학이 우리의 삶에서 적용되는 예시에는 어떤 것들이 있나.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침대, 신발, 의자, 자동차, 휴대폰 등 대부분의 제품에 인간공학적 요소가 적용돼있다. 특히 애플사의 제품들은 인간공학적 설계를 가장 잘 보여준다. 애플사의 여러 제품은 다른 제품과 비교했을 때 기술과 기능적으로는 큰 차이가 없지만 사용해 보면 세심한 부분에서 차이를 보이고, 이 차이는 사용자 경험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애플사의 아이폰을 사면 함께 주는 번들 이어폰이 있는데, 애플사가 그 이어폰을 만들기 위해 무려 3,000개의 프로토타입을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어폰을 만드는 기술 자체는 간단하다. 그러나 인간공학적으로 쓰기 좋고 착용감이 좋은 제품을 만들기 위해 들이는 이러한 노력이 결국 사용자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앞으로 인간공학의 전망은 어떠한가.
사물인터넷 기술이 발달하면서 이제는 IT 기술이 컴퓨터뿐만 아니라 모든 사물에 적용되는 시대가 됐다. 사물인터넷이 모든 사물을 네트워크로 연결해 정보를 공유하는 기술인만큼 인간 중심적으로 설계되지 않는다면, 기술은 더욱 복잡해질 것이며 사용도 불편해질 것이다. 사용자들은 이제 기술 자체보다도 기술을 사용하면서 얻는 경험을 더 중시한다. 이는 아무리 좋은 기술이라도 사용자의 만족감을 충족시켜주지 못한다면 선택받을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사용자가 원하는 경험을 제품이나 서비스에 반영하기 위해 인간공학은 점점 더 발전해 나갈 것이다. 이와 더불어 정보 기술의 다양화, 통신혁명, SNS 매체 등이 인간공학을 점점 더 세분화, 전문화, 융합화시킬 것이며, 이러한 추세는 가속화될 것이다.

인간공학자로서 대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인간공학은 관점을 바꾸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일상생활 속에서 생기는 불편함을 그냥 지나치지 말고 관찰해보라. 그리고 이에 대해 의구심을 품어보라. 하다못해 ‘식당의 식판은 왜 이렇게 생겼는지’ 혹은 ‘건물 안의 휴지통은 왜 저렇게 배치되었는지’에 대해 고민해보라. 이런 작은 고민에서부터 시작해 교수 혹은 교직원 위주로 설계된 학교 시스템이 있다면 학생의 관점에서 어떻게 개선시킬 수 있는지 생각해보는 데까지 나아가는 것이다. 이렇게 관점을 바꿔 사용자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다면 누구나 인간공학을 연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