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3

기자명 이성경 기자 (stellask@skkuw.com)

빛나는 플래시 라이트, 매혹적인 레드카펫, 그 위를 뒤덮는 여배우들의 드레스 자락. 우리가 생각하는 영화제의 모습이다. 영화제 기간이면 낯 뜨거운 노출 얘기로 인터넷이 떠들썩하지만 사실 그보다 더 뜨거운 영화제의 진짜 모습은 다들 잘 모른다. 영화제는 말 그대로 영화의 ‘축제’다. 우리나라 최초이자 최대의 영화제인 부산국제영화제(이하 BIFF)가 올해로 스무 살을 맞이해 지난 1일부터 10일까지 열렸다. 배우뿐만 아니라 관객, 감독 등 많은 영화인들이 부산을 찾았다.

부산을 찾은 22만의 관객들

영화의 전당 매표소 앞, 시민들이 현장예매를 위해 줄 서있다.

지난 2일 오전 8시, 부산영화의 전당 매표소 앞엔 온라인 예매에 실패한 이들이 현장예매라는 두 번째 전쟁을 위해 줄 서 있었다. ‘SOLD-OUT’이라고 적힌 판에 영화가 하나둘씩 늘어갈수록 곳곳에서 탄식이 터져 나왔지만 돌아가는 사람은 없었다. 대체할 수 있는 수많은 영화가 있기 때문이다. 제20회 BIFF에선 세네 편의 영화를 연달아 심야에 관람하는 ‘미드나잇패션’, 전 대륙에서 온 신인 감독들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플래시포워드’, 60년대 한국영화를 볼 수 있는 ‘한국영화 회고전’ 등 다양한 섹션의 영화들이 준비돼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BIFF를 봐온 이산들(20) 씨는 “예전 남포동에서 BIFF가 열릴 땐 부모님과 오뎅 국물을 마시며 봤었는데 이젠 커피를 마시며 보게 됐다”며 감회를 드러냈다.
BIFF에선 영화상영 외에도 밴드 공연, 영화평론가 사인회, 영화인들과의 토크쇼 등 관객들이 즐길 거리가 넘쳐났다. 아름다운 해운대의 석양을 배경으로 진행된 영화<베테랑>의 무대 인사에서는 배우 유아인의 능글맞은 웃음에 팬들은 쓰러졌고, 영화 <자객 섭은낭>의 감독 허우샤오시엔과의 토크쇼엔 질의 응답에 참여하고자 하는 이들 때문에 감독의 얼굴이 보이지도 않을 지경이었다.
한편, 배우나 감독이 주인공이 돼버린 영화제에서 관객의 권리를 되찾자는 움직임도 있었다. 지난 6일, 영화의 전당 두레라움 광장에서는 관객문화를 응원하는 시민단체 ‘모퉁이 극장’이 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했다. 모퉁이극장의 성송이(26세) 씨는 “시민들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영화제를 단순히 보고 가버리는 것이 아니라 좀 더 적극적으로 즐기자는 의도”라며 활동의의를 밝혔다. BIFF에선 관객도 엄연히 영화제를 만드는 주역이었다.

영화의 끝 영화제, 누군가에겐 새로운 시작

 

우리야 단돈 6천 원으로 보는 영화지만, 영화를 실제로 만드는 데는 엄청난 자본이 투입된다. BIFF는 이런 자본의 거래가 이뤄지는 산업의 장이기도 하다. ‘아시아영화펀드’는 아시아의 감독들의 영화 제작 및 완성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BIFF의 지원프로그램이다. BIFF의 ‘아시아필름마켓’은 투자와 제작을 비롯한 판권구매, 배급, 후반 작업까지 영화 산업의 모든 단계를 총망라하는 시장으로, 이번 아시아필름마켓에선 세계 최초로 ‘엔터테인먼트 지적 재산권 마켓’ 이 시범운영 됐다. 기존의 출판물, 공연물 등의 전통적인 지적 재산권뿐만 아니라 웹, 모바일, SNS,등의 신규 플랫폼에서 활용되는 지적 재산권의 거래가 부산 벡스코에서 이뤄졌다. 또한, BIFF는 각국의 영화인들이 교류할 수 있는 장이란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아시아프로젝트마켓’은 국내외 영화 산업 관계자들과의 만남을 통해 가치 있는 프로젝트에 공동 제작 및 투자의 가능성을 열어준다. 제작자들에게 영화제는 단순한 축제가 아닌 기회의 장이였다.

10일을 위한 수많은 노력들

자원봉사자들이 영화관을 떠나는 관객을 배웅하고 있다.

10일간의 영화제를 위해 1년 동안 총 7명의 프로그래머가 기획했다. 영화의 실무는 전문영화인들이 맡고 있지만, 영화를 사랑하는 20대 청년들에게 BIFF는 또 하나의 기회다. 이번 BIFF에선 800여 명의 자원봉사자들이 △서비스개발팀 △홍보팀 △영사관리팀 등 총 12개의 팀에서 활동했다. 부산대 지리학과 재학 중인 이주영(21) 자원봉사자는 “고등학교 때도 BIFF 기간이면 틈틈이 구경하러 가곤 했는데, 지금 이렇게 참가해서 기쁘다”며 “자원봉사자들도 영화제의 일부”라 했다. 그녀가 일하는 아시아영화아카데미는 아시아의 예비영화인들을 위한 아카데미로, 직접 영화를 찍어볼 기회를 제공한다. 그녀는 “단편영화를 직접 촬영하기 때문에 실제로 영화촬영 현장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며 소감을 밝혔다.
연기하는 배우도, 그걸 찍는 감독도, 그리고 영화를 보는 우리도, 모두 영화제를 만드는 사람들이다. 영화를 사랑하는 당신이라면 영화제를 만들 자격은 충분하다. 반짝이는 모래알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영화’같은 영화제, 주인공이 되고 싶다면 내년 가을엔 부산으로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