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2

기자명 최소현 기자 (thonya@skkuw.com)

우리는 영화를 ‘본다’. 하지만 상상해보자. <착신아리>에 오싹한 벨소리가 없었다면? <매드맥스>에 기타맨의 연주소리가 울려 퍼지지 않았다면? 어딘가 허전한 느낌을 떨칠 수가 없다. 소리가 없는 영화는 그저 반쪽짜리 에너지를 전달할 뿐이다. 우리가 정신없이 영상을 눈으로 좇는 동안, 소리는 그 뒤에 숨어서 묵묵히 제 역할을 다하고 있었다.

동시녹음기사, 소리를 가다듬다
촬영 현장에 슬레이트 소리가 울려 퍼지고 모두가 배우에게 시선이 고정된 순간, 유독 귀를 쫑긋 세우는 사람이 있다. 바로 동시녹음기사다. 동시녹음기사는 촬영 현장에서 발생하는 모든 현장 사운드를 녹음하는 사람으로, 영화의 모든 소리를 담당한다. 동시녹음팀에는 기다란 붐마이크를 들고 다니며 배우들의 목소리를 녹음하는 ‘붐맨’이 있고, 붐마이크와 장비가 연결된 선을 정리하는 ‘라인맨’이 있다. 동시녹음기사는 이들에게 지시를 내리며 현장의 녹음을 총괄한다. 그가 담는 소리에는 배우들의 목소리뿐 아니라 감정도 담겨 있다.
또한 촬영 현장에는 배우들의 목소리 외에도 그 장소 특유의 소리가 섞여 있다. 이를 ‘앰비언트 사운드’, 줄여서 앰비언스라 부르는데, 이 앰비언스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소리의 풍성함 정도가 달라진다. 철도 장면이라면 기차 소리가, 바다라면 파도 소리가 필요하므로 아예 촬영장소의 고유 소리를 따로 녹음한 뒤 믹싱하는 후반 작업이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동시녹음기사는 촬영 전에 현장을 미리 살펴보고 어떤 방법으로 레코딩을 진행할지 등을 결정한다. 레코딩 회사 ‘라온레코드’ 소속 동시녹음기사 전영기 씨는 “하나하나 녹음을 해나가다가 영상이 입혀지고 완성된 영화를 보는 순간이 정말 즐겁다”며 “촬영 현장의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다”고 전했다. 좋은 소리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동시녹음기사의 노고가 여기에 있다.

폴리아티스트, 소리를 연기하다
영화 <올드보이>에서 최민식은 살아있는 낙지를 통으로 씹어먹는다. 이때 질퍽하게 들려오는 낙지 소리는 사실 수술장갑을 끼고 케첩을 주물럭대는 손이 만든 소리다. 이 손의 주인공이 폴리아티스트다.
폴리아티스트라는 단어는 1930년대 유성영화가 도입됐던 시절 처음으로 효과음을 직접 만들어 작업하던 음향기술자 ‘잭 폴리’의 이름을 따서 만들어졌다. 영화 <쥬라기월드>에서는 공룡이 걸어 다니고, <해리포터>에서는 지팡이로 마법을 부린다. 하지만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듯 생생히 재현된 공룡이더라도 포효 소리와 발걸음 소리 없이는 그저 환상에 불과하다. 폴리아티스트는 이런 효과음을 만들어 냄으로써 영화 속 환상에 현실감을 더한다.
영화 현장에서는 주로 대사 위주로 녹음을 하기 때문에 비어있는 소리가 많다. 폴리아티스트는 직접 배우들의 움직임을 따라 하며 배우들의 목소리에 묻힌 소리를 다시 만들어낸다. 영화를 보면서 배우가 가방 지퍼를 올리면 똑같이 지퍼를 올리고, 컵을 내려놓으면 똑같이 컵을 내려놓으며 그때 들리는 소리를 녹음한다. 아예 존재하지 않는 소리도 있다. 이 경우에는 최대한 비슷한 소리를 녹음하거나 편집과 믹싱을 통해 소리를 창조해낸다. 주사기에 액체를 담고 사람의 몸에 약을 주입할 때 실제로는 별다른 소리가 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액체가 밀려 나오는듯한 소리를 만들어서 영화에 담음으로써 관객들에게 주사하는 장면을 더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
소리를 만들어내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장면에 적합한 소리를 찾기 위해 도구를 바꿔가며 몇 번이고 되풀이해야하기 때문이다. 발걸음 소리라도 다 같은 소리가 아니다. 인물의 상황과 감정에 따라 걸음의 속도와 발을 내딛는 세기가 달라진다. 따라서 폴리아티스트 역시 배우의 감정을 그대로 살리기 위해 녹음 시에 영화를 보면서 배우와 행동을 함께한다. 소리를 연기하는 셈이다.
영화 <더 테러 라이브>, <극비수사> 등의 작품에 참여한 폴리아티스트 정성권 씨는 “그저 음원 파일를 가지고 편집하는 작업이 아니고 직접 움직여가며 소리를 만든다는 점이 가장 매력적”이라며 “다양한 미디어가 계속 개발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꾸준히 발전할 분야”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