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비(영상 11) 학우 영화 <그 남자의 사정> 제작기

기자명 강도희 기자 (nico79@skkuw.com)

지난해 국내 상영 영화의 평균 상영 시간은 130분이었다. 그런데 알고 있는가. 당신이 팝콘을 먹고, 허리를 몇 번 뒤척인 그 시간은 수많은 감독과 배우, 스태프가 몇 개월 심지어는 몇 년을 쏟은 시간이라는 것을. 하나의 영화가 만들어가기까지의 숨 가쁜 움직임은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었다. 이슬비(영상 11) 학우의 졸업 작품 <그 남자의 사연>의 4개월 간 제작과정을 알아봤다.
 

모든 시작은 아이디어 하나에서
영화는 영화감독의 아이디어 하나에서 출발한다. 우리 학교 영상학과 학우들은 ‘졸업작품연구’라는 수업을 통해 졸업작품 전반에 대한 틀을 짠다. <그 남자의 사연>은 중요 부위가 작아 고민인 한 남자의 이야기다. 이슬비 학우는 “계속 무거운 얘기만 써와서 누구나 재밌게 볼 수 있는 작품으로 색다른 시도를 해보고 싶었다”며 아이디어를 떠올린 계기를 설명했다. 이러한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학기 말 예심에서 시나리오가 통과되면 제작 준비 단계에 들어간다. △연출 △제작 △촬영 △미술 △음향 각 분야에서 스텝이 꾸려진다. 제작 일반을 지휘하는 연출팀이 가장 바쁘다. 연출팀은 회의를 통해 시나리오를 수정하고 캐스팅을 도맡는다. <그 남자의 사연>의 촬영지였던 한강 뚝섬 공원의 이용료는 하루 7만 원, 배우 출연료 56만 원, 카메라를 비롯한 장비는 100만 원이다. 늘어나는 촬영기간은 곧 비용이므로 최대한 효율적으로 찍는 게 관건이다. 더군다나 카메라가 하나밖에 없었기에 같은 장소의 컷*은 한 번에 몰아서 찍어야 했다. 이러한 동선을 계산해 촬영순서를 그린 콘티와 스토리보드를 제작하고 촬영 당일 계획을 짜는 것도 연출팀의 일. 한편 제작팀은 예산을 편성하고 장소를 섭외한다. 주변 소음 등을 확인하기 위해 음향 감독이 함께 가기도 한다. 그 밖에 촬영팀은 장비를, 미술팀은 소품을 준비한다. 촬영 1주 전 진행된 대본 읽기에서는 배우들이 각자 그동안 익힌 연기를 눈빛과 목소리로 발산하고 있었다. 촬영 전의 전운이 감돌았다.
 

영화 <그 남자의 사정>의 스크립트.

촬영 시작, 3일간의 사투
“사운드 확인. 카메라 확인. Scene 3, Cut 1, Take 1. 레디 액션!”
<그 남자의 사연>의 첫 촬영은 지난 8월 26일에 이뤄졌다. 오전 9시에 시작하기로 한 촬영이 장비 설치 때문에 한 시간 늦었다. 감독이 스피커폰을 잡고 모니터 앞에 자리 잡으면 그 주위에 조연출과 미술감독, 음향감독이 함께한다. 연출팀 중 한 명이 슬레이트를 치자 배우들이 연기에 몰입한다. 그 옆에선 또 다른 연출팀이 스크립트북을 작성하고 있었다. 각 신을 나타낸 콘티가 그려진 스크립트북엔 NG가 기록된다. 나중에 편집할 때 참고하기 위함이다. 촬영이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사고가 났다. 렌터카에 장비를 싣고 장소를 옮기려는데 다른 차를 들이박아 버린 것. 이때를 회고하면서 이슬비 학우는 “눈앞에서 몇 십만 원이 사라지는 게 보였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촬영은 끝없이 계속됐다. 긴 복도와 화장실이 필요했던 이 학우는 우리 학교 인사캠 국제관 건물을 선택했다. 그러나 하필 국제관 4층에서 MBA 수업이 진행 중이었고, 모든 장비와 함께 촬영지를 수선관으로 옮겨야 했다. 긴 여름날의 해조차 지쳐 밖이 어둑어둑했다. 할 수 없이 촬영팀은 화장실 창문 밖에서 인공조명(HMI)을 쏴 밤을 낮으로 바꿔야 했다. 새벽 1시에 끝난 촬영은 다음 날, 그 다음 날도 강행군으로 총 3일간 계속됐다. 모두를 버티게 해준 건 끊임없는 ‘다시!’ 속 단비 같은 ‘OK!’ 소리, 서로의 땀 냄새, 그리고 참치 마요 도시락이었다.

34시간의 기록이 11분짜리 영화가 되기까지
촬영은 끝났다. 남은 것은 약 80GB의 영상 파일. 이 영상을 15분짜리 영화로 만드는 일은 편집자의 몫이다. <그 남자의 사연>에서 편집은 감독인 이슬비 학우가 직접 맡았다. 수선관 3층 영상학과 전용 편집실에서 만난 이슬비 학우는 한창 작업 중이었다. 이슬비 학우가 쓰는 ‘파이널 컷 프로’는 영화 제작자들이 주로 쓰는 영상 편집 프로그램이다. 편집을 통해 각 쇼트와 쇼트를 자연스럽게 연결한다. 가령 남자가 말하는 쇼트와 여자가 말하는 쇼트를 이어 두 사람의 대화 장면을 만들 때, 시선이나 화면에서 차지하는 비율 등이 맞지 않으면 어색해진다. 음향 효과도 이때 넣는다. “지금 보니까 첫날 혜화동 로터리에서 찍은 영상은 주변 소음이 너무 시끄럽네요.” 이럴 때는 그 장면의 녹음만 다시 하는 ‘후시녹음’을 한다. 배우들의 대사와 주변의 차 소리를 각각 녹음해 넣는 것이다. 자르고, 붙이고, 자르고… 편집 작업은 새벽까지 계속됐다.
올해 영상학과 졸업 작품들은 오는 11월 16일 600주년기념관의 개막식을 시작으로 5일간 대학로 CGV에서 상영된다. <베테랑>, <사도>를 보던 극장에서 시험이 끝난 11월엔 색다른 경험을 해보는 게 어떨까.
 

이슬비 학우가 영화를 편집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