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턴, 성장과 진보 그리고 불평등을 말하다
디턴, 성장과 진보 그리고 불평등을 말하다
  • 박주화 기자
  • 승인 2015.11.09 16:00
  • 호수 159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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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거스 디턴 1

지난 3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앵거스 디턴의 저서 <위대한 탈출>이 한국사회에 주는 의의에 대한 토론회가 열렸다. 과거에 원조를 받던 빈국에서 아주 빠른 속도로 선진국 반열에 올라선 우리나라의 독특한 특성 탓에 부모 세대가 겪었던 빈곤은 우리 세대에겐 다소 낯선 이야기다. 그래서 이전 세대가 겪었던 빈곤으로부터의 탈출과 우리 세대가 직면하고 있는 불평등에 대한 디턴의 연구는 우리에게 더욱 뜻 깊은 의미로 다가온다..

ⓒ프리스턴대학교

왜 성장과 진보가 중요한가

우리는 때때로 소득과 삶에 대한 만족감이 큰 관계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소득의 중요성에 대해 평가절하하곤 한다. 하지만 디턴은 이에 대해 반대표를 던지며 “일반적으로 빈곤국 국민은 삶에 대해 굉장히 불만족스러워하지만, 부유국 국민은 자신의 삶에 대해 높게 평가한다”고 주장한다. 즉, 삶에 대한 만족감과 소득 사이에 뚜렷한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디턴은 “삶에 대한 만족감은 정치적 자유에 대한 평가 지수와도 거의 일치한다”고 말한다. 민주적인 정치체제를 갖추고 있는 사회여야 사회 구성원들을 위한 제도와 행정 체계가 확립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는 경제적 진보만이 아닌 사회 진보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강조한다.

빈곤으로부터의 탈출

디턴은 1945년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서 가난한 광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러나 자식에게 좋은 교육을 시키겠다는 일념을 가진 아버지 덕에 그는 비교적 좋은 학습 환경에서 공부할 수 있었다. 가난한 환경에서 자란 그는 가난의 본질을 이해하려 애썼다. 결국, 디턴은 이론적인 측면에 의존하던 기존의 빈곤과 성장에 대한 연구를 실증적으로 분석해내는데 성공했고, 그 공로로 노벨상을 수상했다. 이와 더불어 그는 빈곤과 결핍에서 벗어난 국가들의 성장 과정을 폭넓게 연구했고 빈국의 상황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을 기울였다.
그의 연구는 빈곤으로부터 탈출한 국가에서 나타난 삶의 변화를 극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변화된 삶의 모습으로 먼저 기술의 발전과 경제성장을 통해 기대수명의 증가를 이루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기대수명의 극적인 성장은 일반적으로 영유아 사망률의 감소에 기인한다. 스웨덴의 경우, 영유아 사망률은 산업혁명을 거치며 지금까지 이전의 1/100 이하로 감소했다. 기술의 발전과 경제성장은 기대수명의 향상과 함께 삶의 질을 개선하는 효과 또한 가져왔다. 소비에서 식료품이 차지하는 비율을 통해 삶의 질을 나타내는 척도 중 하나인 엥겔지수가 급속히 개선됐다는 점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실제로 20세기 초에 미국인이 소득의 30% 가량을 식료품에 지출한 반면, 오늘날 미국인은 불과 소득의 13%만을 식료품에 소비한다.
이러한 탈출은 우리가 흔히 부르는 선진국에서만 일어난 것은 아니었다. 현재 선진국이라 여겨지는 국가들이 상대적으로 먼저 빈곤과 결핍으로부터 빠져나오면서, 국가 간 불평등이 발생하게 됐다. 하지만 이 후 그 뒤를 △대만 △싱가포르 △한국 △홍콩을 비롯한 국가들이 따라잡는데 성공했고 현재 중국과 인도가 그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세계 인구의 40%가량을 차지하고 있는 이 두 나라의 급속한 성장이 범국가적 소득 균등화를 이끌어 내고 있다. 반면 국가 별로 살펴볼 때에는 나라간의 소득 격차는 줄어들고 있지 않다. 그렇지만 얼마나 많은 나라가 크게 성장했는지가 아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높은 성장을 경험했는지’로 바라본다면, 긍정적인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한편, 디턴은 이미 빈곤에서 탈출한 국가 내부에서 국민들 간의 격차완화가 정체되거나 악화되는 현상에 대해서 우려를 표하기도 한다. 그는 이 현상의 원인으로 크게 ‘세계화’와 ‘기술 편향적 진보’를 꼽고 있다. 이 두 원인은 유능한 인재들이 더 많은 보수를 받을 수 있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그는 이러한 현상 자체를 문제로 삼고 있진 않다. 오히려 그는 소수의 계층에만 이익이 공유되는 ‘재정적 대량 살상무기’인 금융공학과 같은 분야에 인재들이 몰리면서 다른 분야의 혁신이 줄어들 것을 문제로 삼고 있다. 또한 그는 “심화된 ‘경제적 불평등’이 상위 계층으로 하여금 하위 계층에게서 기회의 평등을 앗아가는 ‘정치적 불평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경고한다. 

ⓒ'위대한탈출' 한국경제신문

남겨진 사람들

앞서 말했듯이 범국가적으로 본다면 사람들 간 경제적 격차는 줄어들고 있다. 하지만 디턴은 “아직도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빈곤으로부터 탈출하지 못한 채 남겨져 있다”며 그들의 탈출을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 지에 대해 논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방법은 무분별한 원조의 중단이다. 그는 “경제성장률과 원조규모에서 어떠한 연관관계도 찾을 수 없다”고 말하며 지금까지의 원조 방식에 대해 지적한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원조는 부정한 권력이 자리 잡고 있는 대부분의 낙후된 국가의 정권을 강화하는데 기여하거나, 국가 제도를 약화시켜 국가의 역량을 위태롭게 만든다. 나아가 천문학적인 원조는 잠재적으로 좋은 지도자와 정치체계조차 타락시킨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세계의 빈곤을 줄이기 위해서는 해당 국가가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기반을 놓아주어야 한다. 예컨대 △기술이전을 위한 비용의 대출 △공정한 국제 무역을 위한 법률조언 △정치 안정을 위한 무기판매 금지 등을 통해 빈곤 국가의 정치 안정과 제도정착을 도와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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