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거슨 디턴 2 : 인터뷰 - 오정근 한국경제연구원 초빙 연구위원

기자명 박주화 기자 (joohwa0526@skkuw.com)

디턴은 그의 저서에서 인류가 어떻게 빈곤으로부터 탈출했는지에 초점을 맞추어 설명하고 있다. 한편 그는 현상에 대한 분석에 많은 부분을 할애해 빈곤과 불평등의 원인, 그리고 해결책에 대해서는 다소 모호한 결론을 내리고 있다. 이에 대한 대답을 구하고자 평소 한국의 경제 발전과 빈곤에 대한 연구를 진행해 온 '한국경제연구원' 오정근  초빙 연구위원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세계 최빈국 중 하나였던 우리나라가 어떻게 짧은 기간 동안에 ‘빈곤으로부터 탈피’할 수 있었나.
일제강점기를 겪고 4년간 전쟁을 치른 우리나라엔 나무 한 포기 없을 정도로 남아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원조를 받아 배급을 하지 않으면 먹고 살 수 없는 나라였고, 일자리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러한 절망적인 상황에서 벗어나 자립하자는 신념으로 국가와 국민이 뜻을 함께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60년대 경제개발을 시작하면서 국가는 도로 건설에 참여하거나 민둥산에 나무를 심으러 나와야지만 국민들에게 배급을 주는 등 ‘일을 해야 돈을 벌 수 있다’라는 경제적 인센티브에 대한 인식을 정착시키고자 노력했다. 또한 산업을 육성해 자립하기 위해 국가는 외자를 유치하고 차관을 빌려오려 애썼다. 젊은이들은 광부로, 간호사로, 군인으로서 해외로 나갔다. 국민은 절망에서 벗어나 잘살아 보겠다는 의지와 동기를 가지고 도시로 나와 산업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한강의 기적은 그렇게 국가와 국민의 노력이 만나 이뤄졌다. 이는 디턴이 말하는 '대탈출의 의지'였다.

2차 대전 이후 빈곤국이었던 많은 나라는 일부 동아시아 국가들을 제외하면 여전히 빈곤한 상태에 머물러 있다.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하나.
여전히 빈곤한 상태에 처해있는 대부분의 국가들은 과거 공산체제나 내전을 경험해 정치가 불안정한 나라거나 혹은 자원이 풍부한 나라다. 독재자들은 빈곤으로부터의 탈출이 아닌 정권 유지에만 관심이 있고 시장경제의 근간인 재산권과 경제적 인센티브의 확립에는 관심이 없다. 일자리를 위한 기업 육성에 소홀한 것은 물론이다. 자원부국들은 산업 경쟁력 향상에 큰 노력을 기울이지 않을뿐더러 그 자원은 소수의 정치적 권력을 정당화하는데 사용됐다. 정리하자면 제대로 확립되지 않은 경제제도와 그를 보호할 법치가 바로 서지 못했기 때문인 것이다.

선진국 반열에 오른 ‘국가’들 간의 차이는 줄어들고 있지만, 그 국가 내의 ‘국민’들 간 불평등은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우리나라의 예를 들어보자. 60년대부터 90년대 초까지 한국은 연 9.5%의 고 성장기를 보냈다. 그 기간은 0.5에 육박하던 지니계수가 0.256까지 하락하며 빈부 격차가 극적으로 감소한 시절이었다. 지금 한국 내 양극화는 90년대 이후 성장률이 하락하여 양질의 일자리가 생기지 않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실질 GDP가 1% 증가하면 지니계수는 0.3% 개선되는 경향이 존재한다. 대학 졸업자는 매년 50만 명씩 쏟아지는데 일자리는 2~30만 개 밖에 생기지 않는 현상이 장기간 계속되어 비정규직 600만, 영세자영업자 700만 명 시대가 되었다. 그러니 소수의 인원을 제외하고는 임금이 적은 곳에 취업하게 되고 이는 양극화를 만들어낸다. 디턴이 지적한 ‘기술 편향적 진보’ 또한 그 원인이다. 80년대 중반 이후 우리나라의 주요산업이 IT와 같은 첨단 분야로 변화하기 시작하면서 더 많은 교육을 받고 혁신적인 사람이 엄청난 부를 획득할 수 있는 시대가 도래 했다. 물론 많은 부가가치를 만들어낸 사람이 그에 따른 보상을 받는 것이 나쁜 현상만은 아니다. 하지만 누구나 그런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기회의 평등’을 보장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디턴도 ‘결과의 평등’은 우수한 사람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받지 못하게 해 오히려 불공정할 수 있지만, ‘기회의 평등’은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불평등은 경제발전 초기 60년대를 기점으로 90년대까지 완화되다가 그 후 답보 상태에 있다. 이에 대한 해결책은 무엇인지.
성장률이 급격히 꺾이는 것에 문제의 시발점이 있다고 본다. 결국은 성장률을 끌어올려야 하는데 이에는 복합적인 처방이 필요하다. 청년들이 가고 싶어 하는 대기업도 더 육성되어야 하고 △관광 △교육 △금융 △의료 등 고부가가치 지식기반 서비스산업이 발전되도록 규제가 혁파되어야 한다. 동시에 기업들 사이에 공정거래 질서가 확립되어야 한다. 이를 통해 경제의 활성화와 시장질서 확립을 도모해야 한다. 분배의 측면에선 근로 촉진형 복지제도 도입과 복지 전달체계의 개선이 요구된다. 자립을 위해 노동을 장려하는 복지제도가 활성화되는 동시에 여기에 참여하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존재하는 사람들에게 최저생계를 보장해 줄 수 있는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 물론 양극화 해결을 위해 여러 가지 많은 노력이 필요하지만, 투자를 활성화시켜 많은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이를 통해 분배를 개선해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이 이루어 지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니계수=인구분포와 소득분포와의 관계를 나타내는 수치. 수치가 높을수록 불평등이 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