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늦가을을 줄곧 밀쳐내는 11월 중순 만추의 황홀한 자연의 마지막 향연이 인간의 마음을 스산하게 휘어잡는 것 같다.
앙상한 나뭇가지와 바람결에 황금색 은행잎이 마치 허망하게 무너진 왕국의 지폐인양 시커먼 아스팔트 보도 위를 어지럽게 우수수 나뒹군다.
해마다 오고가는 연말이지만 요즈음은 날이 갈수록 바짝 “삶의 마감”이라는 인생 뒷정리에 신경이 더욱 예민하고 초조해진다. 설상가상으로 어젯밤 달갑지 않은 가을비까지 짓궂게 내린 뒤끝이라서 그런지 초겨울 기운처럼 찬바람이 얼굴을 때리고 온몸이 움츠러든다.
늦가을을 맞으면 어쩐지 낙엽이 떠오르고 낙엽 중에서도 일품은 성균관 명륜당 은행잎이다. 노랗게 화장한 은행잎은 너무 눈부시고 찬연하여 비록 한살이를 마치고 쓸쓸하게 대지 위에 흩어져 있을지언정 섣불리 쓰레기 더미로 치우거나 태워 버릴 수만은 없는 보기에도 아깝고 운치가 있다.
 오늘따라 웬 심사인지 성균관 대성전 앞에 서있는 수령 약 6백여 년이 가까운 은행나무 낙엽을 사뿐히 지르밟고 싶다. 하찮은 여우도 죽을 때에는 태어난 소굴 쪽을 향하여 머리를 돌린다는 수구초심처럼 인생 황혼 시기가 다가오는 내 마음도 1958년 이른 봄 처음 상경하여 성균관 대성전 명륜당 뜰에서 입학식을 치르던 아련한 옛 추억이 되살아나는 감정 때문인 것 같다.
내 생애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착잡하고 서글픈 심정으로 서둘러 성균관을 찾았다. 지하철 4호선 혜화역에서 출발한 마을버스가 캠퍼스 구석구석까지 수시로 운행한다. 참 편리해졌다. 내가 하숙했던 성대 정문 앞 설렁탕 음식점이었던 ‘춘천집’은 흔적도 없고 명륜동 뒷골목도 이젠 현대식 주거단지로 완전히 환골탈태했다. 정말이지 상전벽해다. 그래서 더욱 아쉽고 허전한 감정이 져며든다.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던가? 그러고 보니 대성전 뜰의 은행나무를 벗 삼아 젊음을 구가하고 낭만을 향유하던 풋내기 대학생 시절이 벌써 강산이 여섯 번이나 바뀐 세월이 흘렀다.
봄이면 파랗게 짙어가는 싱그러운 은행나무 녹즙 기운을 온몸에 흡입하며 시심(詩心)을 키웠고 여름이면 그루 턱의 둘레가 자그마치 30미터가 넘어 족히 50여명의 젊은 학생들이 삥 둘러 앉아 호연지기를 불태우고 때론 어설픈 개똥철학을 갈파하곤 했다.
그러다가 어느 사이 늦가을 은행잎이 노랗게 물들어 낙엽지면 그 당시 젊은이들 누구나 한창 대히트곡이었던 샹송가요 ‘고엽’을 애잔하게 불러 제쳤다. 이 노래는 인기 샹송가수 ‘이브 몽땅’이 불렀던 영화 주제곡으로 장안의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다. 나도 이러한 열기에 휩싸여 “The fallin g leaves drift  by the window......”하며 구성지게 읊조리며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와 영문판 주간지 ‘News week’지를 남이 보란 듯이 손에 움켜지고 다니면서 제법 교양인인척 하던 철부지 젊은 시절이 지금 생각하면 너무 실소를 자아낸다.
성균관의 모든 상징은 은행나무다. 공자가 은행나무 그늘 아래 향단(香壇)에서 제자들을 가르쳤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자를 모시는 성균관이나 각 지방 소재 향교안의 명륜당 뜰에는 빠짐없이 은행나무가 자리 잡고 있다.
대성전에선 연 2회 공자의 제사를 지내는 석전제(釋奠祭)가 열린다. 내가 대학을 입학했던 1958년에도 춘계 석전제가 열렸다. 그때 초헌관에는 이승만 대통령, 아헌관에는 이선근 성균관대 총장, 종헌관에는 최찬익 성균관 관장이 집전했다. 그때 겨우 20세인 나는 호기심을 안고 앞자리에 앉아 시종일관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행사를 마치고 대통령이 떠나면서 앞줄에 자리한 인사들과 일일이 악수를 했는데 나도 그 틈에 끼여 대통령과 악수를 하는 영광을 누렸다. 그해 추계 석전제에는 옛날 과거시험을 재현하여 대성전 앞마당에서 백일장 대회가 열렸다. 전국에서 모여든 내로라하는 선비들이 돗자리를 깔고 앉아 일필휘지(一筆揮之)하던 진지한 모습이 생생하다. 그때 방(榜)에 적힌 시제(試題)가 “고궁추색(古宮秋色)”이었다. 고색창연한 대성전과 명륜당 은행나무 가을단풍이 절묘하게 어울리는 시제였다.
현대적 맘모스 성대 본관과 고풍스러운 명륜당 대성전 건물 너머로 서녘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다. 내 인생 마지막 발걸음처럼 말이다. 조락(凋落)하는 자연의 변화처럼 내 마음도 더욱 허전하고 을씨년스럽다.
어디선가 차중락의 “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의 노랫소리나 샹송 “고엽(枯葉)”의 서글픈 음률이 귓전을 스치는 듯 멜랑콜리한 기분이다.
아듀(Adieu)! 성균관 명륜당 은행나무여 !

 

고재웅(경제 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