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비평 2

기자명 이소연 기자 (ery347@skkuw.com)

문학과 비평의 의미를 묻는 질문에 문학비평은 어떠한 답을 말해줄까. 또한 그 앞에 놓인 수많은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나아가야할까. 이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소설가이자 문학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는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방민호 교수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방민호 교수

문학비평이 문학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가. 그 의미가 문학을 넘어 사회로 확장될 수 있는가.
대개 창작보다 비평을 열등한 것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은데, 문학비평은 문학만큼이나 중요하다. 작가이자 비평가인 오스카 와일드는 “비평은 고도의 창작이다.”라고 말했다. 창작이 삶을 재료로 삼아서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듯이 비평은 작품을 재료로 삼아서 새로운 창작을 이뤄내기 때문이다. 비평은 궁극적으로 문학이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하는 역할을 한다. 또한 문학 외적으로도 그 의미를 확장해볼 수 있다. 평론가 매튜 아널드는 비평이 “현대 사회의 병리 상태를 진단하고 그에 대한 처방을 내린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니까 문학비평은 단지 문학 안에서 그 의미가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문학작품을 통해 현대 사회의 상태를 진단하고 분석하는 것이다. 가령 북한의 인권을 다룬 소설을 통해 북한이라는 사회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이에 대한 비평은 우리 사회와 북한 사회와의 관계를 논의하게끔 만든다.

문학비평은 많은 대학에서 강의로 접할 수 있는 분야다. 대학생이 문학비평을 공부함으로써 어떠한 소양을 갖출 수 있나.
 문학비평은 기본적으로 문학 작품을 읽는 것을 전제로 하는데, 작품을 읽는 행위는 작품을 통해 세상을 보는 것을 의미한다. 즉, 문학비평을 통해 세상을 읽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문학비평의 방법에는 여러 갈래가 존재하기에 문학비평을 공부한다면 세상을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다. 완전하다고 여겨지는 하나의 비평방법은 없다. 각각의 방법이 나름의 한계가 있기에 새로운 해석 방법이 나오는 것이다. 이렇듯 다양한 해석 방식을 접하면서 세상을 이해하는 여러 시각을 익힐 수 있다.

문학비평이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이라면, 문학비평에서의 객관성은 존재하는 것인지.
문학비평은 평론가 개인이 판단하고 쓰는 것이니까 물론 주관적이다. 하지만 객관성을 가질 수 있는 참된 비평은 개인에만 한정되지 않은 공통된 가치에 입각해서 쓰는 비평이라고 생각한다. 평론가 매튜 아널드에 따르면 문학비평은 ‘몰이해적 관심’에 기초해야 한다. 이해관계에 얽매이지 않은 관심을 가질 때 작품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인데, 이에 동의한다. 가령 특정 작가와 친분이 있다고 해서 그 작품에 대해 좋은 평가를 하는 것이 제대로 된 비평일 리 없지 않나. 몰이해적인 태도를 갖춰야 객관적 판단을 할 수 있다.

최근 신경숙 작가의 표절 문제와 관련해 문학권력 하에서의 문학비평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문학 비평계에서 자성적 목소리가 나오긴 했지만 자성이 충분하다고도, 근본적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출판사에 연계된 비평가들이 ‘비평가의 정신적 독자성’에 대해 얼마나 깊이 사고하고 있는가는 다시 한 번 되묻고 싶다. 이전에 말했듯 ‘몰이해적 관심’의 태도가 굉장히 중요한데, 비평가들이 출판사와 잡지사를 배경으로 해 비평이 창작에 부속된 것으로 전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출판사의 부속 기능이 되어가는 것이다. 이러한 왜곡된 비평들은 독자들이 비평에서 멀어지는 원인이 된다.

문학권력과 관련된 구조적인 문제점 외에 현재 문학비평이 당면한 또 다른 과제가 있다고 생각하는지.
한국 사회에서 문학이 ‘근본적인 것’에 대해 생각하는 힘을 회복하는 일이다. 여기서 ‘근본적인 것’이란 사회문제의 이면에 있는 인간 정신의 문제를 말한다. 구조적인 측면이 의미 없다는 것이 아니라 사회문제조차도 인간의 생각에서 비롯되기에 인간의 정신이 근본적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현재 문학은 인간 정신의 문제를 깊이 있게 탐구하지 않고 있다. 즉, 사회의 부조리를 낳은 인간의 내적 세계가 작품 속에 심층적으로 그려져 있지 않다는 것이다. 비평은 이와 같은 문제를 지적하고 개선을 촉구해야 하는데 비평가 또한 그러한 깊이를 생각하지 않는다. 비평이 인간 마음의 문제를 깊이 있게 성찰하고 분석하는 힘을 가져야만 근본적인 가치의 회복이 가능하다.

문학비평이 본래의 가치를 회복하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개인적, 구조적인 차원에서 어떠한 노력이 필요한가.
먼저 구조적인 차원에서는 의미 있는 문학 활동을 펼치려는 사람들의 힘이 응집되어야 한다. 이른바 ‘문단 카르텔’이라고 불리는 힘과는 구별되는 새로운 매체와 네트워크를 창출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학이 피폐화된 것은 문단 카르텔의 횡포 때문만은 아니다. 이는 구조적인 문제이고, 개인 차원에서 당면한 문제도 있기에 이를 해결하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이는 자기 추구를 통해 의미 있는 문학 활동을 하려는 노력이다. 근본적인 힘, 즉 인간 정신의 탐구를 회복하려는 노력이 더 행해져야 한다. 아무런 힘도 가지지 않은 작가는 없다. 펜이 있는 한, 적은 부수라도 책을 낼 수 있다. 의미 있는 문학이라면 단 몇 부에 불과할지라도 구조적인 힘을 극복하고 세상에 알려질 수 있는 희망이 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