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지난 주 교정은 총학생회 선거로 부산했다. 내년 4월에는 국회의원 선거가 있다. 모든 선거에서 후보자들은 솔깃한 공약을 내세우면서 자신을 뽑아주면 뭔가 달라질 것처럼 말한다. 당선 이후 이러한 약속들은 물론 대부분 지켜지지 않는다. 예산이 부족하거나, 정책 환경이 바뀌어서, 또는 예상치 못한 문제들이 생겨서가 흔한 이유이다.
공약이 지켜지지 않는 경험이 반복되면 유권자는 냉소적이 되고 투표장에 가지 않는다. 지난 20년간 총선 투표율을 보면 7-80%대를 기록하다가 90년대 들어오면서 급격히 하락해 2008년 선거에서는 46.2%란 매우 낮은 투표율을 보였다. 지난 2012년 선거에서 좀 회복되어 55.5%를 기록했다. 총선보다 투표율이 높은 대선의 경우도 하락세는 마찬가지인데 1992년 선거만 해도 81.9%에 이르던 것이 2007년 선거에서는 63%로 낮아졌다. 지난 2012년 선거에서는 반등하여 75.8%를 기록했다. 투표율의 전반적 하락은 지켜지지 않는 공약에 대한 실망 때문만은 아니다. 보다 중요하게는 의회정치에 대한 전반적인 불신이 있기 때문이다. 기관신뢰를 묻는 대개의 여론조사에서 국회나 정당은 항상 신임도가 가장 낮은 축에 속한다. 어느 순간 한국사회에서 정치권은 무능하고 싸움질이나 하고 국민을 제대로 대표하지 못한다고 여겨지게 되었다. 정부에 대한 신뢰는 보통 입법부보다 양호하지만 사법부나 대기업, 시민단체, 미디어와 같은 민간기관들보다 낮은 경향을 보인다.
그렇다면 왜 한국사회는 이렇게 국회와 정부를 믿지 못하게 되었는가? 정치불신은 선진민주국가들의 공통적 현상이기도 하다. 소득과 교육 수준이 높은 시민들은 정치권력의 대표성과 정당성을 인정하는 데에 있어 매우 까다로워졌다. 이들은 보다 높은 삶의 질을 추구하면서 정치권력이 다양한 이슈에 대해 보다 효과적으로 대응할 것을 주문한다. 한편, 정부나 국회는 전문적 문제해결력, 상충적 이해 조정력, 사회 통합력을 갖고 다양한 요구에 대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하여, ‘통치불능의 시대’라고 혹자는 말한다. 선진민주국가들이 그래도 정말로 통치불능의 상태에 빠져버리지 않는 것은 선거를 통해 당선된 공직자들에게 사회문제를 해결하라고 맡기기 보다는 시민들이 스스로 나서 공공서비스 조달의 협력자요 공동 생산자로서 자율적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한국사회에서 부족한 것은 바로 이러한 문제해결을 위한 시민참여이다. 우리는 민주적 제도와 절차에 따라 정치적 요구를 하기 보다는 제도권 민주주의를 불신하면서 쉽게 길거리 정치에 나선다. 정치권이 국민이 바라는 정치를 하고 있지 않다고 느끼는 정서는 청년실업, 노인빈곤 등 경제적 어려움이 고착되면서 더 강화되었다. 그러나 많은 공공문제의 해결에는 항의보다는 협의와 협력이 도움이 된다. 더욱이 무조건 정치를 불신하고 방관자나 냉소자로 남거나 집단행동으로 자신들의 의견을 관철시키려는 것은 대의민주주의를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냉소적인 정치불신이 아니라 건강한 참여이다. 이점에서 최근 정치에 관심을 보이고 직접 정치인이 되려고 하는 젊은이들이 늘어나는 것은 환영할 일이다. 권위주의시대에 민주화 투쟁의 선봉에 대학생들이 있었다. 이제 공고화된 민주주의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은 기성세대 정치권을 불신하고 비판만 할 것이 아니라 참여를 통해 민주정치의 한 몫을 담당해야 한다. 참여없는 정치불신은 민주주의를 약화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