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사람들에게는 누구나 인생의 첫 기억이 있다. 6살 때 유치원 미끄럼틀 옆을 타고 내려가다가 밑으로 떨어진 게 나의 첫 기억이다. 교실로 돌아갈 시간이 돼서 친구들은 줄을 선채 내가 미끄럼틀에서 내려오길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나에게 모든 이목에 집중돼 있었다. 그때 내 감정은 '부끄러움‘이었다. 내가 기억하는 첫 번째 부끄러움이다. 이후에도 내게는 소위 민망한 일들이 많이 일어났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그 횟수는 줄어들었고 그것을 느끼는 기준은 달라졌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이 내 생애 가장 뻔뻔한 순간이랄까.
하루는 셔틀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 말고는 아주머니 두 분 뿐이었다. 그중 나이가 더 많아 보이는 분은 오백 원짜리밖에 없어 난감해 하고 있었다. 우리 학교 셔틀버스를 타본 사람은 알겠지만 우리 학교 셔틀버스에는 거스름돈을 주는 장치가 없다. 오백 원을 내든, 천 원을 내든 돈이 통 속에 들어간 순간 그 돈은 셔틀버스 요금이 돼버린다. 이런 이유에서 난감해하던 아주머니는 옆에 조금 더 젊어 보이는 아주머니께 물었다. “백 원짜리 있어요? 그러면 나는 그쪽한테 오백 원 주고 그쪽은 나한테 200원 주면 딱 인데.” 조금 더 젊어 보이는 아주머니는 흔쾌히 알겠다고 하셨다. 얼마 후 바로 셔틀버스 정류장에 같이 서는 종로 08번 마을버스가 왔다. 나이 많은 아주머니는 잠시 고민을 하다가 젊은 아주머니 손에 들려 있는 오백 원짜리를 재빠르게 가져가고 200원을 손에 쥐어줬다. 하지만 마을버스를 타려고 돌아서는 순간 마을버스는 출발했고 나이 많은 아주머니는 계속 가만히 계시던 조금 젊은 아주머니의 손에서 다시 200원을 가져가고 오백 원을 쥐어줬다. ‘보기 민망하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쯤 나이 많은 아주머니도 같은 생각이었는지 “나이가 들면 주책이야, 정말”이라고 말하며 민망하다는 웃음을 지었다. 웃을 상황이 아닌데도 민망한 상황을 무마 시키고 싶을 때 나도 모르게 나오는 그런 웃음 말이다.
민망한 행동을 할 수 있다고 해서, 그 행동이 민망한지를 모르는 것은 아니다. “예전에는 못했는데 이제는 괜찮다니까. 나도 아줌마 다 됐나봐.” 우리 어머니가 요즘 자주하는 말이다. 하지만 나는 이런 ‘뻔뻔함’이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도가 지나치면 문제가 되지만, 그 선을 지키는 ‘대한민국 아줌마’는 오히려 진짜로 부끄러울 때를 아는 사람이 아닐까. 우리는 오늘보다 내일 더 뻔뻔해지고, 오늘보다 내일 어른다운 어른이 된다.
 

이경빈(글경제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