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2015년 신년 계획을 세우면서 올해에는 꼭 내 이름이 적힌 책을 하나 만들겠다고 마음먹었다. 개인 출판을 한 적이 있는 친구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니, 요즘은 개인 소량 출판을 하는 경우가 워낙 많아서 사이트에서 요구하는 대로만 주문하면 얼마든지 내가 원하는 대로 책을 만들어 준다고 했다. 다만, 친구는 딱 하나만 걱정하라고 했다. “글이 모아놓고 보면 진짜 부끄러울걸? 나 그때 출판 준비하면서 수정을 몇 번 했는지 기억도 안 나. 그런데 그렇게 수정을 많이 한 글인데도 지금도 그 책 다시 펴보면 부끄럽다(웃음).”
그동안 써놓았던 글들과 이번 개인 출판을 위해 이번 한 해 동안 차곡차곡 써둔 글들을 하나 둘 모아보니, B4용지 크기로 90페이지 가까이 되는 분량이 나왔다. 생각보다 양이 적다 싶었지만, 양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내 친구의 경고가 들어맞았다. 제법 잘 썼다 싶은 글들만 모았다고 생각했는데도 모아놓고 다시 읽어보니 부끄러웠다. 이것저것 뜯어고쳐야 할 점들이 자꾸 눈에 띄었다. 글을 쓰는 것보다는 문장을 수정하는 게 일이었다. 키보드를 이용하여 비트(Bit)로 이루어진 문자를 써내려갈 때는 거침없이 써내려갔었는데, 잉크로 이루어진 문자로 찍어낸다 하니 같은 글임에도 그 무게가 달라진 듯하였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상품과 콘텐츠를 소비하는 자들이지만, 스마트폰이 발전하고 SNS가 발전하면서 스스로 상품과 콘텐츠를 제작하는 창조자의 자격 또한 획득했다. 개인이 창작한 비트로 이루어진 텍스트와 사진 및 영상이 범람하고, 비트의 흐름 속에서 개인의 의견을 피력하는 것 역시 쉬워졌다. 비트라는 비물질의 사용에는 익숙해졌지만, 그것의 가벼움이 가진 무서움에 대해서는 깨닫지 못한 우리들은 콘텐츠의 창작도 가볍게, 의견의 피력도 가볍게 해치우곤 한다.
비트의 비물질성과 가벼움은 끊임없이 바쁘게 움직여야 하는 현대인들에게 큰 공간을 차지하지 않으며 무게 또한 가볍다는 점에서 매력을 어필한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이 특징에서 파생되는 놀라운 속도의 동시접속성과 번식 및 확장성은 간과하는 경우가 많다. 비트의 흐름이 굉장히 빠르고 가볍다고 하나, 그것이 가진 실질적인 무게는 잉크 문자와는 크게 다르지 않다. 단지 비물질과 물질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가시적인 무게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비트는 현실이라는 물질세계에서 무게를 잴 수 없지만, 잉크는 몇 g(그램)의 단위로 표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민감한 사안에 대한 기사들이 많아지면서 SNS의 댓글들이 점점 날이 서기 시작했다. 무분별한 편 가르기와 온갖 욕설이 난무하고 있는데, 가끔 그 치열한 싸움이 흥미진진하여 댓글을 일부러 챙겨볼 정도이다. 만일 이 가벼운 비트의 문자들이 무게감 있는 잉크의 문자들로 실체화된다면, 그 후에도 이토록 날만 서 있는 비난을 가볍게 쓸 수 있을까?
헬조선, 열정 페이를 외치고 있는 우리, 청춘은 세상을 바꾸는 저항을 위해 하나로 뭉쳐야한다. 그러나 가벼운 비트의 문자들만큼이나 부유하는 우리의 가벼운 생각과 관심은 마치 날만 잔뜩 서 있어 타인의 접근을 불필요하게 차단하는 고슴도치의 모양새와 같다. 허를 찌르는 날카로운 비판과 논리 없는 원색적인 비난은 구별되어야 한다. 개인에게 할당된 공간이 별로 크지도 않은 곳에 서서 바로 옆에 서 있는 서로에게 가시를 내세우는 것은 결국 서로에게 깊은 상처만을 남길 뿐이다. 비트의 흐름이 이미 우리에게 익숙해졌다면, 그 흐름을 따라 그 가시를 외부로 내뿜는 가장 효율적인, 비트를 잉크처럼 고농축으로 사용하는 방법에 대한 가볍지 않은 생각들이 필요하다.

 

신아름(국문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