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의 지휘자, 뮤지컬 연출가

기자명 최소현 기자 (thonya@skkuw.com)

2006년 개막한 뮤지컬 ‘김종욱 찾기’는 한 여자가 김종욱이란 이름의 첫사랑을 찾다가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는 이야기다. 이 작품에는 남자와 여자 그리고 ‘멀티맨’이 등장한다. 멀티맨은 남자의 상사, 여자의 아버지, 그리고 수많은 김종욱들을 포함해 총 22개의 배역을 갖는다. 배우는 한 명이지만 그는 각기 다른 성격과 내면을 갖고 있다. 뮤지컬 연출가 역시 하나의 완벽한 무대를 위해 대본, 연기, 무대 조명, 배경, 장치, 의상, 음악 등 모든 분야를 지휘해야 한다. 언제든지 옷을 갈아입을 준비가 돼있는 ‘멀티맨’인 것이다. ‘김종욱 찾기’, ‘오! 당신이 잠든 사이’ 등의 창작뮤지컬을 만든 연출가 장유정 씨에게 이러한 ‘멀티맨’으로서 삶은 어떠한지 물어봤다.

 

연출가 장유정 씨

Ⓒ장유정

뮤지컬 연출가는 어떤 일을 하는지 소개해달라.
뮤지컬을 만드는 재료로 크게 대본과 음악이 있다. 연출가는 이를 무대 위에서 어떤 방식으로 표현할지 계획하는 사람이다. 연습이 시작되면 배우, 스텝들과 대본 리딩을 하면서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발전시킨다. 작품이 만들어진 후에도 관객들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고민한다. 연출가는 조명 디자이너나 배우가 아니다. 조명이 만들어지고 연기를 하는 명확한 과정보다는 각 스텝의 작업물이 모두 합쳐졌을 때 어떠한 그림이 나올지를 구상하고, 이에 대한 방향을 제시하는 게 연출가다.

2002년 뮤지컬  <송산야화>의 대본을 작업한 이후 많은 작품들을 연출했다. 뮤지컬 연출을 시작했을 때 가장 힘들었던 점은 무엇인가.
여자였다는 점, 또 나이가 어렸다는 점에 대한 사람들의 선입견이 있었던 것 같다. 또 그때만 하더라도 뮤지컬 연출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잘하면 이 사람처럼 되겠구나’하는 롤모델이 없었다. 학교 선배 중에서도 뮤지컬 연출을 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으니까. 안갯속을 헤매고 있는 느낌이었다. 외국의 공연 장르인 뮤지컬을 우리나라 사람들이 과연 좋아할까. 이 일을 해서 먹고살 수는 있는 건가. 미래를 그리기가 어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만큼 작업하는 게 재미있기 때문에 극복할 수 있었다. 여러 배우, 스텝들이 모여 하나의 작품을 같이 만들어간다는 뿌듯함과 만족감이 마약처럼 작용했다.

좋은 연출가가 되기 위해서 어떤 자질이 필요한가.
스텝들이 가지고 있는 디자인이라든지 기술적인 부분에 대한 감식안이 있어야 한다. 또한 무용이나 영화, 서사문학 등 인접 장르에 대한 간접적인 경험을 늘려야 한다. 창의력은 깊어지는 것이 아니라 넓어지는 것이다, 다양한 경험을 쌓고 다각도에서 이를 바라보아야 문제가 해결되고 창의력이 발현된다. 계속 하나만 판다고 되는 것이 아니므로 다양한 경험을 쌓아야 한다.

‘김종욱 찾기’부터 ‘오! 당신이 잠든 사이’, ‘그날들’ 등 대중들의 사랑을 받은 창작뮤지컬의 극본을 직접 썼다. 작곡가와의 협업은 보통 어떤 방식으로 진행하는가.
창작뮤지컬의 경우 대개 대본이 먼저 나온다. 극작가가 대본을 구체적으로 완성시키면 작곡가가 그에 맞춰 음악 작업을 한다. 영어는 한 음표 당 여러 음절이 들어가도 이상하지 않지만 우리말은 한 음표 당 하나의 음절이 들어간다. 음악이 미리 마련되어 있으면 제한이 커져 가사를 만들기가 쉽지 않다.

뮤지컬 ‘김종욱 찾기’는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영화와 뮤지컬의 차이는 뭐라고 생각하는가.
뮤지컬만이 갖는 매력이 있다. 뮤지컬 ‘김종욱 찾기’에는 남자 주인공, 여자 주인공과 멀티맨, 이렇게 단 세 명이 나온다. 그중 멀티맨은 의상과 헤어스타일을 조금씩 변화시켜 아버지, 점쟁이, 택시 운전기사 등 22가지의 역할을 모두 소화해낸다. 이 인물들이 모두 같은 배우라는 것을 관객들은 안다. 뮤지컬의 재미는 이러한 곳에 있다.

뮤지컬 ‘형제는 용감했다’가 3년 만에 다시 무대에 올랐다. 기존 작품을 다듬으면서 가장 신경 쓴 부분은 무엇인가.
가족 간의 사랑을 다룬 전통극인 ‘형제는 용감했다’의 경우 1막은 코미디적인 요소가, 2막은 정극적인 요소가 강하다. 코미디는 특성상 지난해에는 재밌었어도 올해는 재미가 없을 수도 있다. 이 사람이 했을 때는 재미있었는데 저 사람이 하니까 재미가 없기도 하다. 그래서 3년 만에 다시 올리는 작품인 만큼 필요한 부분은 바꾸기도 했다. 반면 2막의 정극은 주제를 드러내며 정서적으로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부분이기 때문에 최대한 고치지 않으려고 했다.

창작뮤지컬을 만들 때 가장 힘든 점은 무엇인가.   
내용적인 측면부터 얘기하자면 어디서나 다 그렇겠지만 새로운 것을 만들어낸다는 것이 쉽지가 않다. 라이선스 뮤지컬은 여러가지를 이미 시도해본 상태에서 한국으로 들어왔기 때문에 참고할 여지가 많은 반면, 창작뮤지컬은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를 한다는 부담이 있다. 이 장면에서 노래를 부르느냐 마느냐부터 누구와 부르느냐까지 모두 결정해야 한다. 따라서 여러모로 다른 뮤지컬보다 손이 많이 간다.
구조적인 측면으로는 창작뮤지컬이 믿고 기댈 발판이 없다는 점이 가장 크다. 미국에서 토니상을 받았다더라, 좋은 평을 받았다더라고 하면 작품성에 대해 설명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새로 만들어지는 창작뮤지컬의 경우는 결과물이 어떨지 아무도 모른다. 흥행에 대한 보장이 적기 때문에 투자 받기도, 배우를 캐스팅하기도 상대적으로 어려운 편이다.

창작뮤지컬이 라이선스 뮤지컬에 비해 대중들의 관심을 덜 받는 것이 사실이다.
사실 홍보마케팅에 있어서는 자본이 가장 중요하다. 유명 포털사이트나 TV 방송, 버스, 지하철 등에 광고를 하면 당연히 인지도가 오를 거다. 하지만 그만큼 손익분기점이 올라가니까 문제가 된다. 그 올라간 만큼을 관객들이 부담하게 되니까 티켓 가격을 올리거나 티켓을 많이 팔아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라이선스 뮤지컬은 유명 배우가 많이 참여하기도 하고 투자도 잘 되기 때문에 여력이 되지만 창작뮤지컬은 그러기가 쉽지 않다. 오를 게 분명한 튼튼한 삼성 주식을 사겠느냐,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의 주식을 사겠느냐. 이러한 간극을 메우기 위한 첫 시작이 좋은 대본과 음악이라고 생각한다. 누가 생각해도 너무나 훌륭한 대본과 음악이 나온다면 가능하지 않을까. (웃음)

앞으로 창작뮤지컬의 발전을 위해 어떠한 노력이 더 필요할까.
누구 하나의 몫이 아니라 다각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90년대에 ‘한국 영화 살리기 운동’이 있었다. 기업의 대규모 투자와 정부의 제도적 지원이 어우러지면서 자연스럽게 한국 영화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늘어났다. 뮤지컬도 마찬가지다. 물론 작품도 좋아야 한다. 그러나 관객에게 창작뮤지컬이 재미있다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서는 창작자의 역량은 물론이고 언론의 관심, 기업과 정부의 지원 등 다방면으로의 노력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