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임효진 기자 (ihj1217@skkuw.com)

 

작품을 쓸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윤학렬(50) 감독은 “사람에 대한 관심”이라고 답했다. 평소 같았으면 이유를 물었겠지만 그가 살아온 길을 다 알게 된 후였기에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는 진정한 나눔을 보여준 이의 삶이 잊히는 걸 원치 않아 영화로 만들었고, 팍팍한 삶에 지친 청년들이 안쓰러워 위로하기 위한 책을 냈다. 그리고 최근에는 이 세상 모든 ‘을’들을 응원하기 위해 영화 <지렁이>를 촬영했다. 크고 거창한 것이 아니라도 자신이 잘 알고 있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나눠주는 것을 나눔이라는 그. 무모하지만 사람 냄새나는 윤 감독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윤학렬(50) 감독

최근에 촬영을 마친 영화 제목이 특이하게도 <지렁이>다. 영화 내용과 무슨 관련이 있나.
작년에 대한항공 조현아 전 부사장이 이륙 준비 중이던 기내에서 땅콩 제공 서비스를 문제 삼으며 난동을 부린 ‘땅콩 회항 사건’이 있었다.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사건 중 하나였다고 생각한다. 영화는 보통 사회적 현상을 반영하는데 영화 <지렁이>의 경우 ‘땅콩 회항 사건’이 시사하듯 한국 사회에 만연한 갑을관계를 반영했다. 영화 제목을 <지렁이>로 한 이유는 지렁이가 땅속을 정화하는 좋은 기능을 하는데도 비가 오는 날을 제외하곤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지렁이는 죽기 전 마지막에 한 번 꿈틀할 뿐 평생을 세상의 어두운 곳에서 지낸다.  지렁이의 삶이 우리 사회 ‘을’들의 이야기와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했다. 영화 <지렁이>는 우리 사회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을 중의 을이라고 할 수 있는 뇌성마비 장애인 아버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아버지에게는 유일한 희망이자 기쁨인 딸이 하나 있다. 그런데 그 딸이 학교에서 집단 따돌림을 당해 자살을 한다. 그 비밀은 딸이 근무하던 편의점 창고에 감춰놨던 다이어리가 발견되면서 밝혀진다. 그때부터 아버지는 진상을 밝히기 위해 학교와 경찰서를 전전하지만 이미 모두 입을 맞춰 놓은 상태여서 오히려 딸이 가해 학생으로 몰리는 상황이 된다. 결국 아버지가 할 수 있는 것은 사회를 향해 울부짖는 것뿐이다.

영화 <지렁이>의 내용도 그렇고 청년들에 대한 관심이 큰 것 같다. <학교폭력 NO 이젠, 아프다고 말해요>라는 학교폭력 예방 서적을 출간하기도 했는데.
우리 사회에는 상처를 입은 사람이 많다. 상처를 가진 사람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두 가지라고 생각한다. 하나는 상처를 계속 안고 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본인의 상처를 바탕으로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고 위로해주는 것이다. 닉 부이치치의 경우 태어날 때부터 사지가 없었다.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한 것은 물론이고 자살 시도도 여러 번 했다. 그러나 하나님께 기도하면서부터 자신이 할 일은 많은 이에게 영감을 주고 상처를 치유하는 것이라는 걸 깨닫고 지금은 설교자로 활동하고 있다. 이처럼 상처가 있는 사람만이 상처 입은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치유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야지만 리얼리티가 전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청년들은 상처가 많다. 나 또한 과거 상처가 있던 사람으로서 상처 입은 청년들을 치유해주고 싶다. 그럼으로써 다음 세대의 미래인 청년들과 비전을 나누고 싶다. 

윤학렬 감독(좌)이 영화촬영 현장에서 연기지도를 하고있다.

Ⓒ윤학렬 감독


윤학렬 감독 하면 <철가방 우수씨>를 빼놓을 수 없다. 당시 뉴스를 통해 김우수씨의 사연을 듣고 망설임 없이 영화화를 결정했다고 들었다.
김우수씨가 한 달에 72만원을 벌면서 5명의 아이들을 7년간 지속적으로 후원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믿기지 않았다. 처음에는 사실일까 하는 호기심에 김우수씨가 살던 고시원을 찾아갔다. 고시원 문을 열자 책상 위에는 성경책이 펼쳐져 있었고 벽에는 후원하는 아이들의 사진이 붙어 있었다. 이 장면을 보고 김우수씨가 단순히 화제의 인물 정도로 취급되게 둬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분의 삶을 통해 기부가 돈 많은 사람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진정한 기부는 이해를 바탕으로 반복적이고 지속적으로 이뤄지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우수씨의 삶을 기록하는 것 자체에 의의를 두고 영화를 만들기로 했다. 영화를 통해 진정한 기부를 보여줌으로써 우리 사회의 나눔과 기부 문화를 바꾸고자 하는 생각이 가장 컸다. 신기하게도 좋은 의도를 가지고 영화를 만들려고 하니 많은 분들이 도움을 주겠다고 나섰다. 덕분에 영화 <철가방 우수씨>는 배우 최수종 선배님의 연기 재능 기부, 소설가 이외수 선생님과 부활의 김태원씨의 OST 기부, 디자이너 이상봉씨의 의상 기부 등으로 만들어질 수 있었다.

ⒸCJ E&M

<철가방 우수씨>로도 유명하지만 <오박사네 사람들>, <LA아리랑> 등 ‘1세대 시트콤’을 만드는 데 참여했다. 극작가로 활동하다가 갑자기 영화감독으로 데뷔했는데 특별한 계기라도 있는지.
글을 쓰는 것 자체가 독립적인 예술 행위이긴 하지만 시나리오 작가로서 영상매체로 만들기 위한 글만 쓰는 것은 부차적인 느낌이어서 아쉬웠다. 내가 쓴 글을 다른 분들이 영상으로 만드는 것이니 말이다. 내가 쓴 글을 가지고 내가 머릿속에 그린 영화를 만들고 싶어서 영화감독에 도전하게 됐다. 만약 이런 결심을 하지 못했다면 앞의 영화 <철가방 우수씨>나 <지렁이> 같은 작품도 만들 수 없었을 것이다.

서울예대에서 극작을 전공하고 희곡 <유원지에서 생긴 일>로 199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전력도 있다. 원래부터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지.
그렇다. 학창시절부터 작가가 되고 싶었다. 나는 아픔 있는 유년시절을 보냈다. 콤플렉스도 많았고 말 수도 적은 편이었다. 그런 아픔들을 글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리고 학창시절 제일 잘하는 것이 글쓰기여서 더 글쓰기에 매달렸다. 학교에 다닐 때도 공부보다는 글 쓰는 일에 관심이 많았다. 과장해서 말하자면 방정식 이후로는 수학을 모른다(웃음). 친구들이 입시 공부를 할 때 나는 최인호의 『광장』을 필사했다. 필사가 가장 좋은 글쓰기 훈련이라는 것은 나중에 작가가 되고나서야 알았다.

최근 영화 촬영을 마쳤다. 앞으로 어떤 작품을 할 계획인가. 최근 들어서는 코미디 작품은 안 하는 거 같던데 앞으로 할 계획은 없는지.
나는 늘 코미디를 한다고 생각한다. 나이가 든 후 웃음 코드가 바뀌었을 뿐이다. 젊었을 때는 세상을 몰라서 마냥 웃긴 것만 찾았다. 슬랩스틱이나 블랙코미디처럼 직접적으로 웃길 수 있는 소재들 말이다. 지금은 사람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웃음 코드가 휴머니티에 가까워졌다. 예전에도 했고, 지금도 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코미디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