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1000원? 5000원 드리겠소.” 집안을 말아먹을 바보라고 불리던 사람이 있다. 기와집 열 채 값으로 오래된 책 한 권을 사던 그는 우리 문화재 수집에 열과 성을 다했다. 그는 왜 그리도 열정적으로 문화재를 지켜내고자 했을까. 답은 그 안에 있다. 자칫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는 옛 그림 속에는 우리의 역사가 담겨있다. 옛사람들의 소망과 그들의 일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것이다. 지난해 3월 말부터 2년간 동대문디자인플라자(이하 DDP)에서 간송미술관 기획전이 열리고 있다. 1>문화재 보존을 위해 일생을 바친 간송 전형필 선생과 미술관에 대해 알아보고, 2>간송 미술전 5부 화훼영모전을 찾았다.

1938년도 보화각의 모습

ⒸEBS '지식채널e' 방송화면 캡쳐

1>국보를 지킨 수문장 간송 전형필 선생

‘나랏말싸미 듕귁에 달아 문자와를 서로 사맛디 아니할세’ 국보 70호 훈민정음 해례본 예의편 첫 문장이다. 현재 한글의 모습과는 많이 다르지만 그 뜻은 널리 알려져 있다. 이 훈민정음 해례본과 국보 135호 신윤복필 풍속도 화첩, 국보 68호 청자 상감운학문매병를 포함한 12개의 국보가 한곳에 보관돼있다. 그곳이 바로 간송 전형필 선생이 설립한 ‘간송미술관’이다. 지난해 3월부터 다음 해 3월까지 2년간 DDP에서 간송미술관 기획전이 열린다. 문화재 보존을 위해 일생을 바친 간송 전형필 선생과 미술관에 대해 알아보고, 간송 미술전 5부 화훼영모전을 찾았다.

나라의 美를 위해 자신의 米를 내놓다.

간송 전형필 선생은 1906년 800만 평의 땅을 가진 부유한 집에서 태어났다. 해마다 약 2만 석의 쌀을 수확할 수 있는 면적이다. 그는 부잣집 도련님으로 편히 살 수 있었지만, 우연히 3·1운동을 주도했던 오세창 선생을 만나며 새로운 가치에 눈을 떴다. 오세창 선생은 우리 고유의 문화와 정신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일이야말로 일제로부터 민족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 생각했다. 간송 선생은 그의 정신을 이어받아 우리나라의 중요한 문화재가 유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도자기 △서화 △석조물 등 문화재를 물심양면으로 수집했다. 특히 일제 시절 일본은 훈민정음 해례본을 찾아 없애고자 했는데, 간송 선생이 이를 먼저 발견해 기와집 약 10채 가격이라는 거금을 주고 지켜낸 것은 유명한 일화이다. 이처럼 그는 나라가 힘든 시기에서도 편한 길이 아닌 민족의 뛰어난 문화를 지키고 계승하는 것을 목표로 살았다.

시대를 넘어 우리에게 온 빛나는 보물들

간송 선생은 1938년 어렵게 모은 문화재가 흩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건축물이자 근대식 사립미술관인 보화각을 설립했다. 보화각이란 이름은 ‘나라의 빛나는 보물을 모아둔 집’이다. 서울 성북구에 위치한 보화각은 문화재와 조화를 이루기 위해 외벽에 여백을 강조하며 한국의 미를 담고 있다. 간송 선생은 미술관 설립 당시 많은 문화재를 가지고 있었지만 일제강점기 시대의 감시와 탄압으로 전시하지 못했다. 또한 그 후 간송 선생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책임자를 잃는 위기를 맞이했지만, 그의 지인과 유족들의 힘으로 체계를 잡으며 1971년 현재의 간송미술관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처음으로 일반인에게도 전시를 시작한 시기이기도 하다. 현 미술관장 전영우 씨는 미술관의 보물들은 ‘망각의 늪으로부터 우리의 기억을 소생시켜 우리가 누구인지 깨워주는 매개체’라고 밝힌 바 있다.

전시회를 넘어 연구로

1971년, 보화각은 간송미술관으로 이름을 바꾸며 ‘겸제전’이란 주제로 첫 전시를 시작했다. 겸제 정선의 ‘진경산수화’는 미술에 큰 흥미가 없는 사람에게도 익숙한 그림일 것이다. 이전에는 겸제에 관한 집중적인 연구가 부족했으나 ‘겸제전’을 시작으로 문화계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또한 산수나 인물에 비해 주목받지 못하던 석화, 화훼영모, 사군자 작품을 전시회를 통해 본격적으로 부각하기도 했다. 간송미술관이 속해있는 간송미술문화재단은 전시만 하는 것이 아니라 ‘간송학파’도 만들며 문화계의 흐름을 이끌고 있다. 간송미술관은 △도예 △서예 △서화 △회화로 나누어 매년 연2회씩 2주일간 봄, 가을 전시회를 열고 있다. 하지만 오래된 건물에서 벗어나 대중과의 적극적인 소통을 위해 DDP로 장소를 옮겨 ‘간송 미술전’이라는 이름으로 5부작의 전시회를 개최하게 됐다. 지금 전시 중인 화훼영모전은 내년 3월까지 진행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