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홍정아 기자 (ja2307@skkuw.com)

'명랑마주꾼'이 주민들과 모여 뜨개질을 하고 있다. '기억정류장'이라는 이름으로 자전거를 타고 나가 주민들의 이야기를 듣기도 한다.

Ⓒ명랑컴퍼니

 

“욕심내지 말고. 우리처럼 이렇게 살살 벗기지.” 어르신과 청년들이 모여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나무를 깎고 있다. 여기는 마포의 한 임대아파트. 함께 나무를 깎고 있는 이 청년들은 바로 ‘마포는 대학’의 ‘명랑마주꾼’이다. 2012년, 이곳에선 100일간 6명의 주민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20대 청년부터 90대 노인까지, 연령대도 다양했다. 명랑마주꾼은 침체된 분위기의 아파트에 거주하는 주민들이 서로 명랑하게 관계를 맺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담긴 이름이다. 이듬해 이곳에 모인 청년들은 명랑마주꾼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삶은 진지하고 예술은 명랑하다’를 슬로건으로 하는 이들은 △문화예술을 통한 고립 극복 △아파트에서 발생하는 고립이 만든 사회적 죽음 기록 △청년들의 비밀기지 설립을 주된 활동과제로 한다.
아파트는 이웃문화를 만들기 어려운 공간이다. 집은 마주하지 않으며, 또한 철저히 분리돼 있다. 옆 사람을 내다볼 수 없으며 굳이 그러려고 하지도 않는다. 사회적으로 약자라 할 수 있는 △장애인 △저소득층 △한부모 가정 등이 모인 임대아파트. 현 복지제도는 금전적인 지원을 해주는 대신 이들에게 고립을 증명할 것을 요구한다. 수급자들은 자격이 박탈될까 두려워 밖으로 나가 일을 할 수도 없다. ‘자식이 있다면 지원을 받을 수 없다’는 부양의무제 때문에 있는 자식과의 연을 끊기도 한다. 가족없이 홀로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6개월간 어떠한 연락이나 왕래도 없다’는 증거를 제출해야 하기 때문이다. 명랑마주꾼은 이렇게 무기력하고 고립되어 있는 공간 속에서 주민들을 밖으로 불러냈다.
그들은 무작정 주민들의 집을 찾아가 초인종을 눌렀다. 아무데나 자리를 펴 뜨개질하고 나무를 깎았다. 주민들과 함께 텃밭도 가꿨다. ‘집 청소 해드려요’, ‘말벗 해드려요’ 등의 청년쿠폰을 발행하기도 했다. 간단한 생활수리도 하기 어려운 이웃을 위해 ‘명랑수리공’이라는 이름의 수리 서비스도 진행했다. 동네에 처음 보는 젊은이들이 자주 왔다 갔다 하니 처음에는 낯설어하시던 주민들도 점차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명랑마주꾼의 ‘열매(별명)’는 “처음 주민들께서 다가와 ‘너희는 뭐하는 애들이냐’고 물으셨다”며 “매주 찾아가니 우리를 기억해주었고, ‘날씨가 추워지면 못 나올 텐데 어떡하냐’며 걱정해주기도 하셨다”고 말했다.

'명랑마주꾼'이 그려낸 주민들의 모습.

Ⓒ명랑컴퍼니


주민들과 관계를 맺어나가던 2013년 가을, 또 한 명의 어르신이 돌아가셨다. 그의 죽음을 알아챈 것은 옆집 부부였다. 서로 간의 왕래가 전혀 없던 그들은 이웃이 오래전 홀로 맞이한 죽음을 냄새로 알아챘다고 한다. 돌아가신지 오래되어 역한 냄새와 함께 치울 것도 굉장히 많았던 집의 마지막 정리를 명랑마주꾼이 도왔다. 폐지 줍는 아저씨, 통장 아줌마, 경비 아저씨가 함께한 그곳에 가족은 없었다. 이후 고독사에 대해 고민하던 이들은 무연사하신 분들의 장례를 함께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현장을 <경한아저씨, 안녕>이라는 다큐로 남겼다. 또 다른 장례에서, 찾아온 가족들은 시신을 아무런 처리비용도 들지 않는 유택동산에 뿌렸다. 그들은 생각했다. ‘서울이라는 도시는 왜 가난한 사람에겐 살아서나 죽어서나 땅 한 평 내어주지 않는가.’
그들에게는 또 다른 고민이 생겼다. 아무런 일면식이 없는 이들을 어떻게 추모해야 하는지 몰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과 깊은 관계를 쌓기로 했다. 그렇다면 나중에 장례를 치를 때도 이 사람을 추모할 수 있는 얘깃거리가 생기지 않을까 하고. 그래서 그들은 올해부터 어르신들의 생애사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청년들은 저마다의 삶에 각자의 사연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듣다보니 그 사람에 대해 더 궁금하고 알고 싶어졌다.
또한 명랑마주꾼은 떠난 이들을 위한 추모와, 앞으로 함께 살아갈 분들을 위해 ‘안녕, 안녕하세요’라는 이름의 추모문화제를 기획했다. 전통적으로 공동체사회에서 장례란 원래 마을 전체의 일이었다. 마을 사람들이 함께 모여 슬픔을 나누고 떠난 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하지만 지금, 장례는 단지 개인적인 문제가 되어버렸다. 수많은 사람들이 거주하는 아파트에서는 이웃이 모두 모인 마을 장례란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해서일까. 하지만 그들은 세상과 이별한 이들을 주민들과 함께 추모하고자 했다. 따뜻한 국밥을 나누어 먹고, 이웃의 이야기를 듣고, 떠난 이들을 위해 한 송이의 꽃을 내려놓았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그의 삶을 기록한다는 것은 관계가 쌓여야만 가능하다. 이들의 목표는 주민들과 더 깊은 관계를 맺고 다른 사람들과 이 이야기를 함께 나누는 것이다. 그렇다면 고립에서 벗어난 행복한 공동체를 만들어나갈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