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홍정아 기자 (ja2307@skkuw.com)

 

굳게 닫혀있던 셔터를 걷어내고, ‘구로는 예술대학’의 동네 예술가들이 노래를 부르고 있다.

구로시장의 패션거리 쪽으로 들어섰다. 북적거리던 ‘먹자골목’과는 달리 휑하고 썰렁한 분위기가 풍긴다. 군데군데 비어있는 점포도 눈에 띈다. 70년대 공단이 설립된 후 수많은 근로자들이 월급날만 되면 고향에 있는 가족에게 보낼 선물을 사기 위해 모여들었다는 구로시장은 이제 예전의 활기를 잃었다. 이곳저곳 두리번거리던 중 한 어르신이 말을 건넨다. “어디 찾아왔어? 이 근처에서 행사하고 있어. 젊은 사람들도 많이 있던데 한 번 가봐.” 안내를 따라 골목으로 좀 더 들어가자 불이 환하게 밝혀져 있다. 무대가 만들어져 있고, 몇 명의 청년들이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른다. ‘구로는 예술대학’의 동네 예술가들이다.
2010년, 구로시장에 찾아온 이들은 ‘마을대학 만들기 학과’를 개설했다. 수업의 일부분으로 구로시장의 상인들을 인터뷰하고 청년들의 시각으로 시장의 지도를 만들었다. ‘동네예술학부’를 개설하여, 시장에서 마주치는 수많은 소소한 사건들과 사람들을 노래로 만들고 글과 그림으로 담아내기도 했다. ‘구로는 예술대학’의 ‘금홍(별명)’씨는 “홍대나 가로수길 등 청년들이 노는 곳은 실제로 살아가는 지역과 분절되어 있다”며 “지역에서 새로운 가치와 놀거리를 발견하고 문화를 향유할 수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영-프라쟈’에 입점한 ‘쾌슈퍼’.


“국수 드시고 가세요. 대신 공연도 보고 가셔야 해요.” 동네 예술가 중 한 명이 웃으며 말한다.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따뜻함이 퍼져 나오는 이곳은 오랜 기간 셔터가 굳게 내려져있었다. 과거 이곳은 서울에서 남대문과 동대문 다음으로 컸다는 구로시장의 가장 목 좋은 자리였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이전의 명성은 바래갔다.
오랫동안 사람들의 발길이 끊겼던 이곳에는 곧 12개의 점포가 새로 들어설 예정이다. ‘구로는 예술대학’은 구로구청과 협의하여 ‘영-프라쟈’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올해 초, 지긋하신 어르신들 사이에서 청년 상인들은 4개의 점포를 열었다. 덕분에 어두컴컴하고 낡아 누구도 들어올 것 같지 않던 이곳은 알록달록한 새 옷을 입게 됐다. ‘영-프라쟈’에 입점할 청년 상인은 서류와 대면 심사를 거쳐 선발된다. 자신의 이해관계만 따지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간다’는 마음가짐이 가장 중요하다. 옆 가게가 잘 되면, 다시 그것이 나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동네 예술가들이 만든 구로시장 지도.


주변 상인들도 ‘영-프라쟈’의 확대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다. ‘믿음 화점’의 사장은 청년들이 시장에 들어온 후 시장이 40~50% 정도 활성화된 것 같다고 말한다. 그는 “지금은 점포수가 적어 고객들이 크게 늘어났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앞으로 가게들이 늘어난다면 훨씬 많은 고객들이 찾게 되고 시장에도 활기가 생길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삼십 년 이상 구로시장에서 이불가게를 운영해온 ‘현풍가게’ 사장은 “청년들이 시장에 찾아오는 것은 물론 좋은 일”이지만 “장사란 오래 해야 하는 것인데 청년들이 꾸준히 한 곳에서 하지는 않을 것 같다”며 걱정스러운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청년들은 지역에서 함께 장사하며 사회적 문제에 공동으로 대응할 수도 있다. 그들이 함께 의견을 나누며 상생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가고 서로의 버팀목이 되었으면 한다는 것이 ‘구로는 예술대학’의 바람 중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