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박범준 편집장 (magic6609@skkuw.com)

 

입학식. 봄. 새내기. 시작. 형용사나 부사가 없이도 오롯이 빛나는, 설렘과 희망이 담뿍 담긴 단어들이다. 12년 혹은 그 이상의 치열한 입시경쟁을 통과한 새내기들을 진심으로 환영한다.
나는 보통의 입학식 연사들처럼 높은 지위에 있거나 막대한 부를 갖고 있지는 않다. 단지 여러분보다 조금 일찍 대학에 왔을 뿐이다. 선배의 입장에서 여러분께 들려줄 얘기는 애석하게도 어두운 얘기뿐이다.
며칠 전 EBS에서 방영된 <시험:5부 서울대 A+의 조건>이라는 다큐멘터리를 흥미롭게 봤다. 다큐는 서울대 교수학습개발센터 이혜정 연구소장의 특별한 연구를 다뤘다. 이 소장은 평균평점 4.0을 넘은 서울대 우등생들의 공통적인 특징을 찾고자 했다. 서울대 2, 3학년 학생 중 연달아 두 학기 이상 4.0을 넘은 46명을 뽑아 심층연구를 진행했다. 이 소장은 이들의 행동 패턴을 연구한 뒤, 이를 바탕으로 서울대 학생 1,213명에게 설문조사를 해 소위 ‘서울대에서 A+받는 비법’을 추출했다.
연구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수업시간에 교수가 말한 모든 내용을 받아 적고, 교수가 한 말을 앵무새처럼 답안지에 반복한 학생’이 서울대에서 A+를 받고 있었다. 이 소장은 연구 소회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사실은 연구하기 전에 굉장히 기대했어요. ‘우리 자식들이 이런 아이들이면 얼마나 좋겠냐’는 기대를 했는데, 아이들에게 이렇게 크라고 과연 얘기할 수 있을까. 넌 어떤 생각도 가져선 안 되고, 네 생각이 아무리 좋아도 교수님과 다르면 버려야 하고 교수님의 말씀을 단 한마디도 빼놓지 않고 적어야 하고…이게 서울대학교의 교육이라고 과연 얘기할 수 있을까?”
다큐는 ‘창의적인 사고를 강조하는 현대사회에서 무비판적인 수용과 암기를 강요하는 우리나라의 평가시스템이 과연 적합한가’라는 중요하고도 아픈 질문을 하고 있었다.
다큐를 보면서 지난해 논란이 됐던 소고기 등급제가 생각났다. 현행 소고기 등급제는 마블링(근내지방)을 기준으로 예비 등급을 매긴 후 고기 색깔이나 조직감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최종 등급을 정한다. 그래서 다른 조건이 아무리 우수해도 마블링이 좋지 않으면 고기 등급이 낮게 나온다. 마블링이 많은 소고기는 육질과 식감은 좋지만, 포화지방이 많아 건강엔 좋지 않다. 1992년 도입된 소고기 등급제는 시대가 바뀌고 건강을 중시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이젠 천덕꾸러기 신세가 돼버렸다.
사람들은 질문을 던졌다. 소고기를 판정하는 여러 기준 중에 왜 마블링이 우선에 놓여야 하는가? 소비자들의 건강을 고려해 영양이나 위생 상태를 우선 평가해야 하지 않을까? 논란이 가열되자 축산물품질평가원은 올 상반기까지 소고기 등급제의 개선안을 마련하겠다고 발표했다.
나도 마찬가지로 질문을 던졌다. 왜 학생들은 교수님의 생각을 얼마나 잘 암기하고 있느냐에 따라 평가받아야 하는가? 독창적이고 비판적인 사유를 가진 학생들이 높이 평가받아야 하지 않을까? 그러기 위해서 시험은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가?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큰 질문’ 없이 ‘큰 배움’ 없다. ‘큰 배움’을 하는 대학(大學)에 왔다면, 대학생답게 큰 질문을 던져보길. 못난 선배로서 감히 조언한다. 그러나 굳이 거창하고 어려운 질문이 아니어도 좋다. ‘나는 무엇을 할 때 가장 행복한가?’, ‘나는 어떤 가치를 추구하며 살 것인가?’ 같은 자신의 내면을 향한 질문도 좋다. 질문의 방향성은 중요치 않다.
하나의 질문을 안고 대학생활을 시작하자. 그 질문엔 정답이 없다. 정답이 없으니 당신은 어쩌면 영원히 그 질문을 끌어안고 살 수도 있을 것이다. 삶과 세계에 질문을 던지는 것이 때로는 아프고 때로는 피곤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질문이 있는 삶은 고통스러울지언정 무의미하진 않을 것이다.
 
박범준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