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이소연 기자 (ery347@skkuw.com)

사람을 통해 만나는 학문은 참 매력적이다. 학구적이지도 성실하지도 않기에 시험이 눈앞으로 다가오지 않는다면 좀처럼 책을 펴보지 않는 학생이었지만, 누군가를 취재하러 갈 때는 달랐다. 누군가의 말을 통해 듣는 학문은 살아있는 느낌이었다. 몇 마디의 말 속에 담긴 활자들은 머리가 아닌 마음을 두드렸다.
만나는 이들의 말주변이 좋아서가 아니었다. 어떤 이가 정의하는 학문에는 그 사람의 향기가 배어있기 때문이었다. 누군가가 자신이 공부한 바를 요약해 말해준 한 마디에는 그 문장을 말할 수 있게 되기까지 수년, 수십 년의 노력이 배어있었다.
이번 취재 또한 그랬다. 교수님의 연구실에 찾아가 진행된 연구에 관해서만 이야기하기를 한참, 문득 왜 연구를 시작하게 됐는지 궁금해 물었다. 전공하지 않은 분야임에도 단지 좋아했기에 10여 년을 연구했다고 덤덤히 말하는 이의 눈빛에서는 꾸며진 겸손함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저 젊음이 느껴졌다. 왜 그 일을 하냐는 질문에 단순히 ‘좋아하니까’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젊음이었다.
‘젊어서 좋겠다’는 말을 흔히 들었던 내가 정말 젊은 것일까 생각했다. 어쭙잖게 ‘기자’라는 명함을 달고 기사를 쓰면서도 왜 하고 있는 것인지 회의감이 들 때가 있었다. 좋으니까 힘들어도 한다는 생각보다 힘든데 왜 해야 하냐는 물음이 먼저 떠올랐다. 내 선택이고, 내 잘못으로 벌어진 일들이 마치 강제된 것처럼 행동했다. 젊은 나이에도, 젊지 못했다.
물론 그럼에도 나는 계속 글을 쓰고 있다. 더디지만 글을 계속 쓸 수 있는 것은, 젊진 않아도 더는 늙지 않고자 노력할 수 있는 것은 곁에 있는 이들 덕분이다. 표현이 서툴러 항상 입안에서 바스러지는 말이지만, 곁에 있어 주어서 감사하다. 엄격한 회의, 잦은 야근, 많은 업무에도 지치지 않을 수 있는 것은 곁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것이 즐거워서다. 지금 함께하는 이들과 계속 함께하기 위해 나는 더욱 젊어질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글을 읽는 그대에게 감사함을 표한다. 당신이 있어서, 나는 젊다.

 

이소연 기자 ery347@skkuw.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