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최소현 기자 (thonya@skkuw.com)

 

"내 그림들, 그것들을 위해 난 내 생명을 걸었다" 고흐가 살아생전 남긴 말이다. 면도칼로 자신의 귀를 도려냈던 화가, 끝내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화가. 그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여기 영상과 음악으로, 그리고 디지털 기기로 그의 생애를 표현해낸 전시가 있다. <반 고흐 인사이드>다.

 

‘빛의 팔레트’에서는 파란색과 노란색 아크릴 봉으로 직접 그림을 만들어볼 수 있다.

‘그림이 살아움직인다’,  <반 고흐 인사이드>를 보고 느낀 첫 감상이었다. 전시보다는 한 편의 예술 공연에 더 가까웠다. 캔버스를 벗어나 옛 서울 역사의 천장과 벽면에 투영된 작품들이 마치 그림 속에 들어와있는 듯한 효과를 자아냈다. 네 개의 구역으로 이루어진 전시장은 각각 고흐가 작품 활동을 했던 지역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쏟아지는 색채와 웅장한 음악소리에 몸을 맡기고 고흐의 삶을 따라 거닐었다.

첫 번째 구역은 ‘뉘넨의 또 다른 해돋이’로 대형 스크린이 전시장 곳곳에 매달려 있다. 모네의 그림 ‘양산을 든 여인’ 속 양산이 스크린을 넘나들며 바람에 나부꼈고 꽃잎들이 휘날렸다. 이처럼 △드가 △르누아르 △모네 등 인상주의 화가들의 다채로운 빛이 선보여지는 한편, 네덜란드의 작은 마을 뉘넨에서 태어난 고흐는 진솔하고 담담한 시각으로 일상을 담아낸다. ➊이내 고흐의 '감자 먹는 사람들'이 공간을 채웠고, 사방에서 그림이 말을 걸었다.

➊이내 고흐의 '감자 먹는 사람들'이 공간을 채웠고, 사방에서 그림이 말을 걸었다.

두 번째 구역은 ‘파리의 화창한 어느 날’이다. 동생 테오가 지내던 파리로 거처를 옮긴 고흐는 낯선 대도시 생활에 적응해나가며 화풍을 바꿔나갔다. 당시 새롭게 등장했던 신인상주의의 점묘법은 물론이고 일본 *우키요에의 특색까지 흡수하며 다양한 시도를 계속했다. 옛 서울 역사의 중심인 1층 중앙홀에 마련된 전시장은 고흐가 파리에서 느꼈던 감정을 엿보게 한다. ➋천장의 둥근 돔과 12개의 석재 기둥에 점묘법의 특징이었던 짧고 강한 필치가 별처럼 쏟아져내린다. 곧이어 우키요에의 원색적이고 강렬한 색감이 벽면에 차오르더니 거대한 파도가 천장을 덮쳐왔다.

➋천장의 둥근 돔과 12개의 석재 기둥에 점묘법의 특징이었던 짧고 강한 필치가 별처럼 쏟아져내린다. 곧이어 우키요에의 원색적이고 강렬한 색감이 벽면에 차오르더니 거대한 파도가 천장을 덮쳐왔다.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에’라는 세 번째 구역에는 전시장 중앙에 사각기둥이 하나 놓여있다. ‘하얀 과수원’, ‘사이프러스가 있는 과수원’의 희고 부드러운 꽃잎들이 중앙의 기둥을 타고 천장으로 푸르르 치솟아 올랐다. 내내 전원생활을 그리워했던 고흐는 2년 남짓한 도시생활을 접고 아를로 향했다. 아를의 평온하고 따뜻한 풍경 속에서 고흐 특유의 노랑과 파랑이 탄생했는데, ➌당시에 그려졌던 ‘별이 빛나는 밤’이 전시장에 가득해질 때면 코발트 빛이 온몸을 휘감는다.

➌당시에 그려졌던 ‘별이 빛나는 밤’이 전시장에 가득해질 때면 코발트 빛이 온몸을 휘감는다.

마지막 구역인 '오베르의 푸른 밀밭'에서는 고흐가 스스로에게 권총을 겨누기 전 마지막으로 지냈던 오베르의 70여 일을 담고 있다. 커다란 커튼에 투영된 밀밭은 천의 흔들림에 따라 일렁인다. 고흐의 마지막 작품으로 추정되는 '까마귀가 있는 밀밭'에 나오는 바로 그 밀밭이다. 장엄한 음악이 흐르다가 돌연 멈춰버리고, '탕' 총소리가 들린다. ➍까마귀가 날아올라 천장을 뒤덮는다. 천천히 화면이 흐려지고, 전시장에 어둠이 깃든다.

➍까마귀가 날아올라 천장을 뒤덮는다. 천천히 화면이 흐려지고, 전시장에 어둠이 깃든다.

네 개의 주요 공간 외에도 다양한 체험 공간이 곳곳에 마련되어 있다. 고흐의 아틀리에에는 고흐가 그림을 그렸던 실제 장소를 촬영한 사진이 걸려있다. 비치되어있는 기기를 들고 사진에 초점을 맞추면 사진이 서서히 그림으로 변한다. 마치 눈앞에서 고흐의 붓이 움직이는 것만 같다. 가상현실 기술을 통해 고흐의 작품 ‘밤의 카페’ 속으로 들어갈 수도 있다. 고글처럼 생긴 기기를 착용하면 눈앞에 카페의 전경이 펼쳐진다. 붉은 벽과 녹색 테이블이 가득하다. 고개를 돌리자 피아노를 치는 남자와 카페 구석에 앉아있는 고흐가 보였다. 기기 측면의 버튼을 눌러 그에게로 가까이 다가가자 그는 무언가 고민하는 듯 손가락을 까딱이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향했다. 고흐의 등 너머로 아를의 밤하늘이 보인다. 쓸쓸한 그의 뒷모습에서 지독한 고독과 외로움이 전해져왔다.

이번 전시에서는 130년 전의 그림들이 현대의 영상기술과 만나 새롭게 되살아났다. 고흐의 작품을 감상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가 작품을 그렸던 상황과 감정들까지도 이해할 수 있는 구성이다. <반 고흐 인사이드>라는 전시의 제목을 여실히 느낄 수 있다. 기승전결의 플롯을 따라가며 빈센트 반 고흐의 생애를 추억하고, 그의 속내를 헤아려보자.

◆우키요에=일본 에도시대(1603~1867)에 서민계층을 기반으로 발달한 풍속화. 우키요에의 ‘우키요’는 덧없는 세상, 속세를 뜻하는 말로 미인, 기녀, 광대 등 풍속을 중심 제재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