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홍정아 기자 (ja2307@skkuw.com)

1221번째 수요시위가 열리다
지난 9일, 제1221차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가 열렸다. 살을 에는 듯한 칼바람 속에서도 △대학생 △종교 단체 △외국인 등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참여해 소녀상의 곁을 지켰다. 1992년 1월 8일 시작된 수요시위는 매주 수요일 낮 12시 일본 대사관 앞에서 열리며, 2011년 12월 14일 1,000회를 맞았다. 수요시위의 요구사항은 △전쟁범죄 인정 △진상규명 △공식사죄 △법적 배상 △전범자 처벌 △역사교과서에 기록 △추모비와 사료관 건립의 7가지이다.

12·28 ‘최종적 및 불가역적’ 합의
한일 양국은 지난해 12월 합의를 통해 일본군‘위안부’ 문제가 “최종적 및 불가역적으로 해결됐음을 확인한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수요시위는 매주 이어지고 있다. 피해 당사자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제대로 된 해결이 아직도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오히려 수요시위에는 한 가지의 요구사항이 추가됐다. 바로 ‘12·28 한일 합의 무효’이다.

한일 외교장관회담 공동기자회견 전문에 따르면 일본 측은 “‘위안부’ 문제는 당시 군의 관여 하에 다수 여성의 명예와 존엄에 깊은 상처를 입힌 문제로서, 이러한 관점에서 일본 정부는 책임을 통감한다”라며 “10억 엔 정도의 규모로 일본 정부의 예산에 의해 모든 전(前) ‘위안부’분들을 위한 사업을 진행하기로 한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정확히 어떤 시점의 ‘군의 관여’를 의미하는지는 언급하지 않았다. 일본군‘위안부’의 모집과 동원부터가 아니라 ‘위안부’로 끌려온 이후를 의미한다고 해석될 우려가 있는 것이다.

또한 합의문에는 ‘피해 배상’이라는 단어가 사용되지 않았다. ‘배상’과 ‘보상’은 적법성 여부로 구분된다. 적법 행위에 대해서는 ‘보상’을, 위법 행위에 대해서는 ‘배상’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더군다나 일본 정부가 직접 전달하는 방식이 아니라 한국 정부가 재단을 설립하면 이에 일본 정부 예산으로 자금을 출연하는 식으로 지급된다.

이날의 합의에서 한국 정부 측은 “일본 정부가 한국 소녀상에 대해 공관의 안녕·위엄의 유지라는 관점에서 우려하는 점을 인지하고 관련 단체와의 협의 하에 적절히 해결되도록 노력한다”라며 “일본 정부가 표명한 조치가 착실히 이행된다는 전제로 일본 정부와 함께 향후 유엔 등 국제사회에서 이번 문제에 대해 상호 비난·비판을 자제할 것”을 못 박았다.

누구를 위한 합의인가
지난 9일, 수요시위에서 한국여성민우회 김민문정 대표는 “정부는 생존 할머니들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자기식대로 문제를 해결했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하며 “당사자의 요구를 배제한 합의는 무효”라고 주장했다.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 역시 지난 7일 성명을 발표해 한국과 일본의 ‘위안부’ 합의에 대해 “피해자 중심의 접근 방식을 채택하지 않았다”라며 △‘위안부’ 피해를 명기한 교과서 채택 △일본 지도자나 유명인사의 책임 회피성 발언 중단 △피해자의 입장을 충분히 반영한 배상 및 보상 이행을 요구했다. 자이드 유엔 인권최고대표 또한 "생존자들 본인만이 진정한 보상을 받았는지를 판단할 수 있다"라고 밝혔으며, 일본군‘위안부’를 ‘성노예’로 재규정했다.

다수의 일본군‘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은 “합의 과정에서 피해자들과의 아무런 소통도 없었다”라며 “누구를 위한 합의인가”라고 울분을 토했다. 또한 “법적 배상금이 아니면 필요 없다”라면서 10억 엔 재단의 위로금 거부 의사를 거듭 밝혔다. 이에 시민사회에서는 ‘일본군‘위안부’ 정의와 기억재단’ 설립을 추진 중이다. 12·28 합의에 의해 정부 주도로 설립될 재단은 △공식사죄 △법적배상 △후대 교육 등의 원칙을 지키기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정의기억재단의 주요 사업은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복지 및 지원 △진상규명 및 기록보존 △평화비(소녀상) 건립 및 추모 △교육·출판 및 홍보가 될 예정이다.

‘현대 전쟁에서는 군인이 되는 것보다 여성이 되는 것이 더 위험하다. 전쟁 속 여성의 몸이 전쟁터였고 여성에 대한 강간은 전쟁의 무기였다’는 말이 있다. 오랜 역사 속에서, 그리고 지금까지도 여성의 인권은 전쟁이라는 명목 하에 억압받고 있다. 수요시위가 열리기 전날인 3월 8일은 세계 여성의 날이었다. 만 오천 명의 여성들이 권리를 찾기 위해 거리로 나온 그날처럼, 이날 수많은 이들도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밖으로 나와 목소리를 냈다. 여성이 참혹한 성범죄의 대상이 되고 인권이 유린당하는 비극이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도록 우리는 그 아픈 과거를 기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