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박범준 편집장 (magic6609@skkuw.com)

마틴 루터가 살았던 16세기 로마 가톨릭교회의 부패는 극심했다. 루터는 가톨릭교회를 반박하는 '95개의 논제'를 내건다. 성서를 읽었고 진실을 알아버렸기 때문에 루터는 달리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다. 그가 알고 있는 진실과 세상의 괴리가 너무 크고 고통스러워 그는 긴 밤을 지새웠다.

루터는 보름스 국회의 소환에 응한다. 주장을 철회하라는 국회의 요구를 거절하고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의 양심은 신의 말에 사로잡혀 있다. 왜냐하면 나는 교황도 공의회도 믿지 않기 때문이다. 교황이나 공의회는 자주 잘못을 저질렀고, 서로 모순된 것이 명백하기 때문이다. 나는 내 주장을 철회할 수 없고 그럴 생각도 없다. …나, 여기에 선다. 나에게는 달리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

지난 24일 우리 학교 인사캠 정문에서 열린 세월호 유가족 간담회에 참석했다. 세월호 희생자들을 애도하는 문구가 적힌 노란 쪽지들이 정문 외벽에 붙었고, 노란 종이배가 달린 줄이 나무들 사이에 길게 늘어졌다. 나는 학우들이 깔아놓은 뽁뽁이에 앉았다. 뽁뽁이는 바닥의 싸늘한 냉기를 어느 정도 막아주었지만 곧 차가운 바람이 불었다. “단원고등학교 2학년 3반 24번 예은이 아빠 유경근입니다.” 유 씨가 등장하자 학우들은 응원의 박수를 보냈다.

세월호 참사 이전과 이후의 삶이 어떻게 달라졌나.
세월호 참사 이전에는 내가 잘 살기 위해서 살았습니다. 내 아이들과 가족들, 또 내 꿈과 미래를 위해서. 참사 이후에 지금은 잘 죽기 위해서 살고 있어요. ‘엄마, 아빠 수고 많았어. 그날 내가 애타게 부를 땐 와주지 않아서 정말 미웠는데, 이렇게 열심히 살아낸 거 보니까. 수고했어.’ 그 말 한마디를 듣기 위해서 살고 있습니다.

유 씨는 유가족들이 세월호 참사 직후부터 지금까지 주장하는 것은 단 하나라고 말했다. ‘온 국민이 납득할만한 진상규명을 하고, 더욱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것.’ 오직 그것을 위해 세월호 유가족을 찾는 자리가 있으면 어디든지 달려간다고 말했다.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많은 학우가 정문 앞에 모여 있었다. 이들은 무슨 이유로 여기에 모여 있는 것일까. ‘이제 그만하라’, ‘지겹지도 않으냐’, ‘세월호는 정치적이다’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도대체 왜?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내가 알고 있는 진실과 세상의 괴리가 너무나 크고 고통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시간 추위를 견디며 서로에게 귀를 기울였을 것이다. ‘더욱 안전한 사회를 만들자’는 그날의 다짐이 정치적인 것이 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오늘(28일)은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의 제2차 청문회가 열리는 날이다.

박범준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