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장소현 기자 (ddloves@skkuw.com)

 

문화예술 콘텐츠 시장에서 자본의 확장과 집중은 날로 심화되고 있다. 문화예술 콘텐츠 제작자는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본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아무리 좋은 작품이라도 충분한 자금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대중에게 소개될 수 없다. 때문에 대중의 관심은 항상 큰 효력을 발휘한다. 십시일반, 대중들이 작품에 직접 후원하는 ‘크라우드 펀딩’이다.

 

후원하세요, 문화예술

건강한 문화예술의 시작은 능동적 문화인이 되는 것에서 출발한다. 인터넷의 발달로 대중과 제작자가 서로 소통하는 것이 가능해지면서 정부나 기업이 아니라 잠재적인 소비자에게서 직접 자금을 끌어오는 통로가 생겼다. 이처럼 불특정 다수에게서 필요한 자금을 후원받는 것을 ‘크라우드 펀딩(crowd funding)’이라 한다. 주로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를 통해 참여하는 경우가 많아 ‘소셜 펀딩(social funding)’이라고도 불린다. 문화예술 영역은 투자가 부진하지만 소비자와 제작자간의 연대감이 강해 이러한 특성이 빛을 발하고 있다. △공연 △만화 △영화 △전시 △출판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자금이 부족해 사라질 뻔했던 창의적 작품들이 크라우드 펀딩 덕에 무사히 대중에게 소개될 수 있는 것이다. 현재 국내 문화 산업에 활용되는 크라우드 펀딩은 대부분 금전적 보상을 기대할 수 없는 형태이다. 감사 메일, 작가가 제작한 물건, 초대권 등 소정의 보상은 받을 수는 있으나 수익금 일부는 돌려받지 못한다. 비록 이익을 얻을 수는 없을지라도 후원한 투자자 입장에서는 그 작품이 완성되는 과정에 참여했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 이런 식으로 운영되는 국내의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에는 ‘텀블벅’, ‘예술나무’, ‘굿펀딩’ 등이 있다.

‘텀블벅’은 한국에서 서비스 중인 대표적인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 중 하나로 예술, 문화 콘텐츠를 중점적으로 다루며 독립 문화 창작자 지원을 목표로 한다. 누구든 자신의 창작에 대한 프로젝트를 올릴 수 있으며 후원을 요청할 수 있다. 후원자는 후원의 대가로 차후 프로젝트 완료 시 소정의 기념품을 전달받으며 이는 후원금에 따라 차등적으로 분배된다. 프로젝트는 일정 기간을 설정하여 그 기간 안에 목표 금액을 달성해야만 후원된 금액을 이체하여 창작자에게 전해주는 ‘All or Nothing’ 방식의 시스템을 사용한다. 만약 설정한 기간 내에 목표기금의 수치에 도달하지 못한다면 후원금 자체가 이체되지 않으며 창작자에게도 전해지지 못한다. 즉, 일정한 금액이 모이기 전까지는 창작자와 후원자 중 누구도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 구조로 설계되어 있다. ‘예술나무’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ARKO)가 2011년부터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플랫폼으로 다른 민간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과 달리 이용 수수료가 없다는 장점이 있다. ‘예술나무’ 역시 문화예술 분야 종사자면 누구나 신청할 수 있으며 온라인 신청 후 내부 심의를 거쳐야 프로젝트를 등록할 수 있다. ‘굿펀딩’은 다른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과 달리 100% 이상 후원금이 달성되지 않더라도 모인 후원금액을 받아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는 ‘Keep it All’ 모금 방식을 갖고 있다. ‘Keep it All’ 방식은 목표 금액을 달성하지 못해도 후원금을 받을 수 있는 대신 페널티 수수료가 부과된다.
 

대중의 힘으로 만들어낸 작품

창의적 아이디어가 있지만 금전적 문제로 어려움을 겪던 아티스트들의 입장에서는 이와 같은 대중의 후원이 큰 힘이 된다. 후원하는 입장에서도 색다른 추억을 만들고 금액에 따라서는 희소성 있는 상품까지 선물로 받을 수 있으니 더욱 의미가 있다. 대표적인 문화계 크라우드 펀딩 성공 사례로는 인디밴드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이하 구남)가 있다. 데뷔 10주년을 맞은 2015년, 구남은 3집 <썬파워> 앨범 발매를 앞두고 새로운 레이블을 세우게 된다. 진정한 인디 정신을 실현하고자 소속사를 나왔지만 재정적인 어려움이 있었던 그들은 크라우드 펀딩을 이용한다. 후원에 참여한 사람들에게는 금액에 따라 구남 3집 앨범 MR(inst.) CD, 3집 데모 CD, 코러스 참여권, 구남 멤버와의 해외여행권 등이 주어졌다. 실제 구남 3집 앨범에 투자한 정세헌(경영12) 학우는 크라우드 펀딩이 자기만족으로 돌아왔다고 전했다. “내가 투자한 돈으로 음악을 만들어주니까 뿌듯함을 느낀다”며 “크라우드 펀딩은 음악을 만든 사람과 투자하는 사람의 유대의식을 강하게 해준다”고 말했다. 구남은 크라우드 펀딩으로 제작비의 절반가량(800만 원)을 모을 수 있었으며 돈과 유행을 좇지 않고 자신들만의 음악을 추구하겠다는 그들의 의지를 더욱 굳건히 해주었다. 구남 외에도 다양한 성공 사례가 존재한다. 지난달 15일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 ‘메이크스타’를 통해 진행된 걸 그룹 ‘라붐’의 뮤직비디오 제작 프로젝트 역시 그 경우이다. 팬들과의 특별한 교감을 위해 프로젝트를 진행한 라붐은 뮤직비디오 제작비의 일부인 1,000만 원을 크라우드 펀딩 목표액으로 하였으나 시작 4시간 만에 목표 금액의 백퍼센트를 넘어 1,065만 원의 후원금을 받을 수 있었다. 라붐의 이러한 도전은 아티스트 본인에게뿐만 아니라 그들을 후원한 투자자들에게도 좋은 결과를 낳았다.
 

크라우드 펀딩의 현주소

2011년에 국내 크라우드 펀딩이 자리 잡은 이후 지금까지 문화계에서 다양한 크라우드 펀딩이 있었고 이를 통해 많은 작품이 대중에게 소개됐지만 여전히 한계점은 있다. 우선 공연계에는 크라우드 펀딩의 성공 사례가 상대적으로 드물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그린 뮤지컬 <꽃신>의 경우 2014년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 ‘오픈 트레이드’에서 지방 공연 및 해외 공연을 위한 준비금을 모았다. 하지만 이에 대한 모금액은 한 달간 16명에게서 96만 원을 모금하는 데에 그쳐 이렇다 할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다.

이와 같은 문제점이 발생하는 가장 큰 이유는 아직까지 크라우드 펀딩 자체의 인지도가 낮아서이다.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의 자체적 홍보가 미비해서 인지도가 낮으니 제작자들로서는 플랫폼을 통해 크라우드 펀딩에 참여하더라도 자체적인 마케팅과 홍보도 필요한 실정이다. 이런 경우에는 후원금을 본래의 취지와는 달리 대부분 지인이나 관계자를 통해 모을 수밖에 없다. 작년 17회를 맞은 ‘서울변방연극제’는 예술적 자율성을 확보하고 독립적인 제작방식을 취할 수 있는지 묻기 위해 정부 지원금을 받지 않은 채 시민 모금에 나섰다. 후원에는 성공했으나 대부분의 후원금이 연극계 관계자로부터 비롯돼 한계가 있었다.

문화계의 크라우드 펀딩은 아직 걸음마 단계다. 하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크라우드 펀딩에 참여한다면 아티스트들이 대형 투자사나 정부에 의지하지 않고서도 자신의 작품을 제작할 수 있다. 이렇게 크라우드 펀딩은 더욱 건강한 문화 환경을 만드는데 일조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