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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의 존엄
박범준 편집장  |  magic6609@skkuw.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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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9호] 승인 2016.04.10  21:3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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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정신과 의사 프란츠 파농은 2차 대전 이후 알제리의 참혹한 현실을 목도한다. 당시 프랑스의 식민 지배를 받던 알제리엔 인종차별과 폭력이 난무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알제리인의 폭력 행위는 프랑스인을 향하기보다는 같은 알제리 민중을 향했다. 원주민 중 자신보다 만만한 대상을 골라 충동적으로 살해하고 범죄를 저지르는 일이 빈번했다. 파농은 이런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수평 폭력’이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수평 폭력은 자신을 억압하는 근원이 아닌 자신과 비슷하거나 나약해 보이는 사람에게 대신 분노를 표출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도 수평 폭력의 예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수시충’, ‘지균충' 같은 표현들 그리고 ‘여성 혐오’, ‘외국인 혐오’, ‘동성애 혐오’ 와 같이 우리 사회에 만연한 각종 충(蟲)과 혐(嫌)의 발화는 언어로 행하는 수평폭력이다. 최근 논란이 된 모 대학 신입생 환영회의 ‘막걸리 세례’는 그러한 수평폭력이 육화된 사례다. 청년의 분노가 취업시장의 학력 위계구조나 청년실업을 돌보지 않는 정치권이 아닌 자기보다 약한 청년을 향하고 있다.

청년의 문제는 구조적이다. 민주사회에서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기본적인 수단은 투표다. 그러나 청년의 투표율은 선거 때마다 평균 투표율을 밑돈다. 정치권은 그 원인을 ‘오직 노는 것밖에 모르는 철부지 같은 청년들’에게 돌리는 것 같다. 지난달 한 정치인은 페이스북에 “상당수의 대학생”이 이번 4.13 총선 투표일에 MT를 간다며 대학생이 한심하다고 비판해 물의를 빚었다.

청년의 저조한 투표율은 청년의 ‘정치 무관심’이 아닌 ‘정치 체념’ 때문에 발생한 현상이라고 봐야 한다. 선거 때마다 여야는 여러 청년정책을 내놓았지만, 변화는 미미했다. 대표적인 예가 반값등록금 공약이다. 지난 2월 페이스북에 개설된 ‘미완성 반값등록금 대나무숲’ 페이지는 이러한 청년의 분노를 대변한다. 청년들은 ‘실제 반값도 아니면서 반값등록금이라고 광고하지 말라’며 분노했다.

청년과 정치는 악순환의 고리에 빠져있다. 청년의 정치 체념은 당장 투표율 저하를 낳고, 이는 정치권의 무관심으로 이어진다. 국가법령정보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통과된 청년 관련 법령은 3건으로 아동(23건)과 노인(13건) 관련 법령에 비하면 턱없이 낮다. 정치권의 무관심은 또다시 청년의 ‘정치 체념’으로 이어지고 악순환은 반복된다.

다시 파농 얘기로 돌아가면, 식민지 알제리의 참혹한 현실을 본 파농은 알제리 독립운동을 지지하며 ‘검은 얼굴’의 투사로 변모한다. 알제리 민중의 분노를 같은 알제리 민중에게서 억압의 근원인 프랑스로 돌린 것이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칼은 우리 손에 쥐어져 있다. 그 칼의 이름은 투표다. 약자를 향한 수평폭력이, ‘헬조선’의 자조가 절망스러운 현실의 답이 될 수는 없다. 각 정당의 청년정책과 그 실효성을 꼼꼼히 따져보고 자신의 가치관에 맞는 정당과 후보를 고르자. 투표는 청년이 지켜야 할 최소한의 존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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