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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에 투영된 과학문명의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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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0호] 승인 2016.05.09  20:3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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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과학기술은 현대사회의 찬란한 문명을 이루는데 있어서 가장 강력한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실제로 인류문명의 발전은 과학자들의 치열한 노력의 산물인 과학기술에 힘입은바 크다. 폴란드 태생의 영국 과학자인 야코프 브로노프스키가 그의 저서『인간 등정의 발자취』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현대로 올수록 ‘문명은 곧 과학기술’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다. 특히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는 과학적 이론들이 첨단 테크놀로지와 결합해 과거와는 비견할 수 없는 ‘과학기술의 황금시대’를 열고 있다. 따라서 과학기술문명사회를 사는 오늘날 우리 현대인들의 삶은 과학기술이라는 자석의 N극과 S극에서 나오는 강력한 자장(磁場)안에서 한순간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앞으로도 강력한 자장을 가진 과학기술은 인류를 블랙홀과 같이 자신의 영역으로 더욱 깊숙하게 빨아들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일상화되고 있는 과학기술의 가속화된 발전이 인류에게 축복의 씨를 뿌릴 것인지, 재앙의 재를 뿌릴 것인지는 미래학자들도 쉽사리 예측하고 있지 못하다.

디스토피아적인 미래를 예측한 1932년의 고전소설인 ‘멋진 신세계(Brave New world)’에서 올더스 헉슬리는 문명이 극도로 발달하여, 과학이 모든 것을 지배하게 된 세계를 풍자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영화인 ‘아일랜드’와 ‘매트릭스’에서와 같이 아이들은 모두 인공수정으로 태어나 유리병 속에서 보육되며 그 부모도 알지 못한다. 그리고 지능의 우열만으로 장래의 지위가 결정된다. 과학적 장치에 의하여 개인은 할당된 역할을 자동적으로 수행하도록 규정되고, 고민이나 불안은 정제(錠劑)로 된 신경안정제로 해소된다. 옛 문명을 보존하고 있는 나라에서 온 야만인은 이러한 문명국에서 살 수 없어 자살하고 만다.

지금에야 수많은 과학기술발전에 기반 한 미래예언서들이 출간되며, ‘블레이드 러너’라는 영화를 기점으로 디스토피아적인 미래를 다룬 영화들도 빈번하게 제작되고 있지만, 당시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는 진리에서 멀어진 과학의 비애를 다룬 충격적인 예언서로서 현재도 새롭게 해석되고 조명되고 있는 고전이다.

한편, 헉슬리의 소설이 나오기 이전인 1914년 미국의 헨리 포드는 컨베이어 벨트로 상징되는 일괄방식의 조립라인을 개발해 내었다. 이 시스템의 가장 큰 특징은 표준화되고 동질적인 상품을 대량으로 생산한다는 것이다. 또한 대량 생산된 상품은 그에 상응하는 대량 소비를 필요로 했는데, 포드는 노동자들에게 과거에 비해 높은 임금 수준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여 이 문제를 해결하였다. 포드는 대량 생산과 대중소비문화 성장을 특징으로 하는 현대의 대중사회 출현의 서막을 열었고, 이러한 생산방식은 바로 ‘포드주의(Fordism)’라고 일컬어진다. 이 포드주의는 자동화된 기계를 통해 인간의 노동을 효율적으로 통제하기 시작한 것을 의미하며, 이제 비판의 도마에 서 있는 현대 사회의 대량생산, 대량소비 체제의 사회적 틀을 갖추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이렇게 헉슬리가 소설에서 은유적으로 묘사한 ‘멋진 신세계’의 사회 현실은 가상의 미래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포드주의’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당대의 많은 이들이 포드주의에 입각한 생산의 효율성에 감탄하고 있을 때, 헉슬리는 그 안에 담긴 미래의 위협요소를 이미 통찰해 내고 있었던 것이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며, 자기 자신에 대해 관찰하고, 주체적으로 사고하고, 창조하며 문제점들을 지양한다는 점에서 다른 생명체와는 다른 우수성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우수성을 바탕으로 눈부신 과학기술 발전도 가능했다. 하지만 이제 너무나도 편리하게 해주는 기술들로 인해 인간은 자신에 대해 관찰하고, 주체적으로 사고하는 방법들을 쉽게 잊어가고 있는 듯하다. 우리는 ‘멋진 신세계’의 도래를 예감하고, 과학기술의 거침없는 저돌적 행보에 다소 찜찜함과 공포감을 느끼면서도 과학기술이 가져올 긍정적인 혜택들을 쉽게 포기할 수 없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 하지만 과학기술의 맹목적인 힘이 지속될 경우의 부정적 결과를 고려할 때, 발전의 혜택을 바라는 우매한 대중으로만 남아서도 안 될 것이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정부와 민간의 협력적 차원에서 다양한 홍보활동을 통한 과학대중화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국민모두가 과학강국을 실현하기 위한 참여의지, 누구든 어디서든 즐겁게 과학을 이야기하고 알기 쉽게 과학현상을 설명하고 토론하는 ‘생활 속 과학’을 기치로 실행되고 있는 이러한 움직임은 그동안 정부 주도로 일관하던 일방향적이며 계몽적인 모습을 지녔던 기존 정책을 변화시켰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더욱 중요한 의미는 대중의 과학기술에 대한 능동적 관심과 자각이 이러한 변화의 시금석이 되었다는 것이다.

앞으로는 과학기술의 발전이 축복을 잉태할 것인지 혹은 저주의 재를 뿌릴 것인지에 대한 섣부른 판단보다는 포드주의의 환상에 젖어있던 1900년대 초반의 대중들과 같이 과학기술 자체에 맹목적으로 빠져들고 있지는 않은지 반성하는 것이 더욱 필요하다. 은유적인 ‘멋진 신세계’를 직설화법으로 바꿀 수 있는 원동력은 이제 일부 과학자들에서 건전한 감시의 시야를 지닌 대중에게 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조항민 겸임교수
학부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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