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박범준 편집장 (magic6609@skkuw.com)

“인공지능 시대에는 무노동 계급이 탄생할 것입니다. 이 계급에 속한 수많은 사람을 어떻게 할 것이냐가 인류 최대의 과제가 될 것입니다.”

지난달 26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유발 하라리 교수의 강연에 참석했다. 하라리 교수는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사피엔스』의 저자이다. 이스라엘의 역사학자인 그는 이 저서를 통해 여섯 개의 인간종 중 하나에 불과했던 사피엔스가 어떻게 다른 인간종을 누르고 세계의 지배자가 되었는지 설명하고 있다.

이날 강연에는 진화 생물학자인 최재천 교수가 토론자로 배석했다. 최 교수는 하라리 교수가 언급한 ‘무노동 계급’은 자신이 생각하는 자연의 ‘거품’ 개념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그는 민들레 홀씨, 해양생물의 번식 과정 등을 사례로 들며 “자연은 낭비를 선택했다”고 주장했다. 자연은 무모하리만치 많은 생물을 잉태하고 그 중 탁월한 개체가 생존하게 함으로써 진화해왔다는 것이다.

최근 프라임 사업 선정 대학의 결과가 발표되면서, 대학사회가 술렁이고 있다. 사업의 결과로 인문·자연과학·예체능 계열의 입학정원은 줄고 공학계열은 4429명이 증가하게 된다. 이는 선정대학 입학 정원의 약 10%에 달하는 수치다. 선정에 탈락한 일부 대학이 사업에 제출한 계획안을 따르겠다고 밝힘에 따라, 대학 사회 전반에 미치는 영향은 보이는 수치보다 더 클 것으로 보인다.

교육부는 ‘대학의 체질개선을 통해 청년 실업률 증가와 분야별 인력 미스매치 등을 대비하겠다’는 입장이다. 한 마디로 산업의 수요에 맞게 인문계열 인재의 ‘거품’(공급과잉)을 거둬내고 공학계열 인재를 늘리겠다는 것이다.

최 교수는 ‘거품’의 개념을 설명하면서, ‘생물 다양성’이 생물의 생존확률을 높이는 가장 결정적인 요소라고 강조했다. 그에 따르면 하나의 유전적 형질로는 변화무쌍하고 혹독한 자연을 견딜 수 없다. 종의 생존을 위해서는 각 개체의 다양한 유전적 형질을 보장해야 한다.

인간사회도 마찬가지다. 하나의 ‘올바른’ 모델은 없다. 사회의 급격한 변화에 따른 대학의 체질개선은 필연적이지만 그 체질개선의 지표가 꼭 취업률이어야 하는지, 그 지향점이 ‘산업의 수요’에 맞춘 공학계열 중심의 대학 모델이어야만 하는지는 의문이다.

10만 년 동안 승리의 역사를 밟아온 사피엔스는 또 한 번의 대격변을 눈앞에 두고 있다. 지금 우리의 대학은 사회의 급격한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인재를 키워내고 있는가. 변화에 맞게 적절하게 대응하고 있는가. 프라임 사업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한편, 최 교수가 주장한 ‘거품’에 대해 첨언하자면, 이 개념은 그리 완벽한 건 아니다. 자연에서 관찰되는 모든 현상이 ‘좋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무수한 수로 생산돼 낭비되는 홀씨와 유충들에게 우리는 어떤 권리를 보장하지는 못하지만, 인간은 다르다. 우리는 인간에게 ‘인권’이라는 걸 보장하기로 약속했다.

박범준 편집장
magic6609@skkuw.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