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최소현 기자 (thonya@skkuw.com)

인형은 그동안 아이의 영역으로만 여겨졌으나, 인형극에 등장하는 인형들은 그와는 조금 다른 특별한 힘이 있다. 무대 위에 올라선 인형들은 살아 움직이는 배우가 되어 관객을 또 다른 세계로 데려간다. 그저 나뭇조각에 불과했던 인형이 얼마나 생생하게 감정을 전달할 수 있는지, 인형극 연출가 문수호 씨를 만나 그 이야기를 들어봤다.

연출가 문수호씨는 인형도 공연하는 시간만큼은 인간성을 부여받은 한 명의 연기자라고 이야기 한다.
사진┃이호정 기자 sonamuda@

극장이자 카페이자 공방인 공간 ‘다락극장’에 대해 소개해달라.
처음에는 그냥 작업실이었다. 여기에서 인형을 작업하고 연출해서 체코로 보내는 일을 했는데, 느닷없이 누가 찾아와서 ‘여기 인형극하는 곳 아니냐’고 하더라. 트렁크까지 들고 멀리서 오셔서 인형극을 보여달라길래 ‘보여줄까?’ 했는데 이게 참 재밌었다. 그다음 주에는 그 사람이 친구 몇 명을 더 데리고 와서 또 공연을 하고, 그렇게 시작했다. 다락극장이라는 이름은 다락방에서 따왔는데, 체코 유학에서 돌아와서 쌓아뒀던 짐들을 하나둘 정리하던 추억에서 생각해냈다. 다락방 특유의 감성을 담고 싶었다.

공연에 쓰이는 인형을 다 직접 제작한다고 들었다. 인형을 만들고 이야기를 구상하는가, 먼저 이야기를 만든 뒤 그에 맞는 인형을 만드는가.
그때 그때 다르다. 인형을 먼저 만들기도 하고 이야기를 먼저 만들기도 한다. 나무를 막 쪼개다 보면 희한한 모양이 나오는데 여기에 얼굴을 조각해보면 인형이 된다. 그렇게 만들어진 인형을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그 생김새에 어울리는 에피소드를 만들기도 하고, 같이 작업하는 동료 Honza가 음악을 먼저 만들면 그에 맞춰서 인형을 만들기도 한다. 유동적으로 작업하기 때문에 만들다보면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이야기가 흐르기도 한다. 밝고 기분 좋은 에피소드를 생각해서 희망적인 음악을 부탁했는데 상당히 우울한 음악을 만들어와서 다툰 적도 있다. 그렇게 만들어진 게 줄타는 인형이다. 원래는 줄을 다 타고 올라와서 벌꿀도 따는 즐거운 이야기였는데, 떨어져 죽어버리는 결말이 되어버렸다.(웃음)

 

<다락에서 두 번째 이야기>는 열 가지 에피소드를 단막극 형식으로 구성한 작품이다. 모든 에피소드를 통틀어 관객에게 전달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가.
전달하고자 하는 뚜렷한 메시지는 없고 다만 ‘감성’을 전달하고 싶다. 보통의 공연에서는 어떤 이야기 구조를 만들고 그 구조 속에서 메시지를 가져가는 형식이지만, 나는 그저 감정을 전달하는 방식이 더 잘 맞았다. 내가 생각하는 사랑에 대한 감정, 두려움에 대한 감정, 이런 감정에 공감하고 한 번 생각해보는 정도면 충분하다. 굳이 공연을 보면서까지 고민하고 생각하려 하기보다는 그저 온전히 즐거움을 느끼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공연이 체코어로만 진행되어 관람에 불편함을 느끼는 관객들도 있을 것 같다.
그런 이야기가 종종 들리긴 하지만 드문 편이다. 오히려 말을 못 알아들어서 좋았다는 사람이 더 많다. 우리가 하는 말 또한 그렇게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닌데, 어떤 뜻을 이야기하는 전달언어 대신 말의 높낮이나 말투로 감정을 전달하는 이미지언어를 사용하는 셈이다. 체코에 유학을 가서 아직 체코어가 능숙하지 않던 시절 공연을 보러 다녔는데 언어를 알아듣지 못하니까 내 나름대로 상상할 수 있어서 더 재밌었다. 마찬가지로 나는 그냥 공연을 하며 판을 벌릴 뿐이고, 사람들이 다 각자가 다르게 받아들였으면 했다. 체코에서는 일부러 한국어로 공연 한다.

체코 인형극에 기원을 두지만 독자적인 연출 기법으로 또 다른 인형극 세계를 만들어냈다.
체코 인형극의 특징이자 장점은 뚜렷한 형식이 없다는 점이다. 이 자체가 대안 연극에서 시작됐기에 각각의 작가들이 정말 다양하고 다르게 극을 만든다. 음악하는 사람이 만드는 인형극과 건축하는 사람, 영화하는 사람이 만드는 인형극은 다 다르지 않겠나. 이게 체코 인형극이다. 여기서 대안 연극이란 나에 대한 대안을 찾는 것인데, 보통 극작가 출신이 연극을 만드는데 나는 극작가 출신이 아니니까 그게 되지 않는다. 그래서 나에 대한 대안을 찾는 과정에서 영상이나 음악을 사용하는 등의 시도를 하게 됐다.

 

인형극의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휴머니즘에 관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무엇이 사람이냐에 대한 이야기. 인형이라는 건 사람의 형태다. 나무로 만들어져서 분명 사람이 아닌데 무엇 때문에 사람답게 보이는가. 그냥 나뭇조각일 뿐인데 공연하는 시간만큼은 인간성을 부여받는다. 배우가 공연할 때도 실제 그 배우가 있는 것이 아니라 배우가 연기하는 인물로서 존재하듯 인형 배우도 마찬가지로 그 순간만큼은 그 인물로서 있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사람이 연기하는 것보다는 인형이 조금 덜 작위적이라고 느껴지는데, 그 역할을 위해 태어난 배우와 그 역할을 맡기 위해 훈련한 배우는 분명 다르다고 생각한다.

인형이 연기를 한다는 사실이 생소하다. 인형사가 함께 연기를 해야 하는 건가.
사실 인형이 처음 등장했을 때의 에너지가 5분이 채 지속되지 않기 때문에 금세 지루해진다. 그 지루함을 해소하기 위해서 인형을 잘 움직이다가 잘 움직이지 않기를 반복한다. 매끄럽게 움직이는 인형을 보며 ‘오’ 하다가도 움직임이 뜸해지면 ‘아, 쟤가 사람이 아니었지’ 하면서 재미있는데 이러다 보니까 정작 감정을 얻어가야 하는 부분에서 그러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인형사를 통해서 감정을 더 전달하고자 한다. 나중에는 인형이 표정을 지었나, 인형사가 표정을 지었나 헷갈린다. 인형과 인형사라는 두 개의 객체가 감정을 전달하는 하나의 오브제가 되는 것이다.

체코 유학 시절 중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체코어를 하지 못했는데도 실기시험에 덜컥 붙어버려서 ‘야, 이거 어떻게 다니지’ 하고 겁이 났다. 그래서 언어를 먼저 배워오려고 시간을 좀 줄 수 있겠냐 연락을 드렸더니 교수님께서 언어를 못해서 뽑은 거라고 하셨다. 결국 언어가 아닌 다른 수단으로 소통하고자 하는 게 예술이니까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핸디캡이 결국 다른 언어를 만드는 데에 굉장히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는 말씀이었다. 지원과정에서부터 외국인 전형이 아니라 자국인 전형으로 원서를 넣는 등 실수가 있었는데 운이 좋게 일이 잘 풀려서 좋은 환경에서 공부할 수 있었다.

그동안 만들었던 인형 중 남다른 의미가 있는 인형이 있는가.
체코에서 유학하던 시절에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항상 보게 되는 얼굴들이 있었다. 말이 통하지 않다 보니까 그 사람들이 어떤 이야기를 가지고 있을까 나름대로 상상해서 인형을 만들었다. 그렇게 만든 인형들을 전시하고, 혹시 그 인형이 자기인 줄 눈치챘으면 찾아오라고 했더니 서른 명 정도 중에 여덟 명이 찾아왔다. 곧 체코로 떠날 계획 중에 있는데 그 전에 한국에서도 진행해볼 생각이다.

 

아직까지 한국에는 인형극이 보편화되어있지 않은데, 그 이유가 무엇일까.
단어에 대한 인식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인형’은 일본어 의 ‘닌교’에서 넘어온 말로 한자어를 가져와서 그대로 읽은 단어다. 대부분의 언어에서는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인형과 극에 쓰이는 인형은 어원이 다르다. 예를 들어 영어에서는 ‘puppet’과 ‘doll’이라는 단어가 각각 따로 있는데, 우리는 ‘doll만 있는 셈이다. 그래서 인형은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거니까 인형극은 아이들이 보는 거라는 인식이 있다.

앞으로 계획 중인 프로젝트가 있다면.
영화 쪽으로 작업을 시작하고 있다. 체코에는 마리오네트 애니메이션이 많은데, 이렇게 인형극을 영상으로 옮기는 작업을 하고 있다. 또 극장도 이제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고 하니까 좀 더 다양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도록 다른 곳으로 옮기는 건 어떨까 생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