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대계열 모집으로 문과대학 학부생이었던 나는 작년 말 1년을 미뤄뒀던 학과 선택에서 언론 쪽의 진로를 생각한다는 이유만으로 국어국문학과를 신청했다. 후에 치를 언론고시에 도움도 될 듯하고, 다른 언어를 새롭게 공부해지 않아도 돼서 또, 책 읽는 일도 글 쓰는 일도 그닥 꺼리지 않았던 터라 편한 마음으로 전공 수업을 들을 수 있을 듯 했다. 하지만 ‘과제 국문’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었다. 나태한 마음으로 신청한 전공 수업들은 1학년 땐 느껴보지 못한 수많은 과제를 나에게 던져주었다.

그 중에서도 독특한 과제가 있었다. ‘현대시의 이해’라는 수업의 과제인데, 매주 9편 가량의 시를 2번씩 필사하고 짧은 감상을 서술하는 방식이었다. 교재 한 챕터에 있는 9편 정도의 시를 예습으로 2번씩, 복습으로 1번씩 필사를 해야 하니 합하면 3번씩 따라 써야했다. 그 수업을 듣는 대부분의 학생이 그렇듯이 나는 처음 필사를 시작할 때 아무 생각 없이 시를 받아 적기만 했다. 시를 옮겨 적는데 시간이 오래 걸릴 뿐만 아니라 다른 과제들을 할 시간도 필요했기에 시 하나하나를 음미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렇게 과제를 해내다 한 학기의 반이 지나갔음을 알리는 중간고사를 마치고 유난히 피곤이 몰려오던 날 나는 별다른 생각 없이 필사해야 하는 시를 낭독해보았다.

갈대  -신경림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

이 짧은 시는 긴 시간동안 내 마음을 울렸다. 대학교에 진학하면서 인간관계에 대한 회의를 느끼고,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불안과 내가 가는 길에 대한 회의가 공존하는 시점에서 조용히 시를 읊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재학 시절 수없이 봐왔던 시들은 누군가가 정해놓은 정답을 대입해서 읽어야하는 그저 문제일 뿐이었는데, 나의 입장을 대입해서 읽은 시는 나에게 위로가 되었다.

흔히들 중2병처럼 대2병이 있다고 한다. 자존감이 하늘을 찔러 근거 없는 자신감을 지닌 중학교 2학년 때와 달리, 대학교 2학년 때엔 자신의 진로에 대한 고민이 머릿속을 가득 메우고, 취업에 대한 압박을 끊임없이 받지만 나태해지곤 한다. 이 때 도종환 시인의 시는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있으랴’고 말하며 방황 속에서 지친 우리를 다시 일으켜주고, 정석주 시인의 <대추 한 알>이라는 시는 ‘저게 저 혼자 둥글어질 리는 없다’고 지금의 고난이 우리에게 지금보다 나은 미래를 펼쳐준다고 말해주고 있다.

시가 지친 나에게 위로가 되고 세상을 다르게 보는 눈을 심어준 것처럼 헬조선이라 불리는 이 시대의 청춘들에게 힘이 될 것이라 믿는다. 그러니 휴대폰을 들고 다니는 것처럼 시집을 들고 다니며 시 한편 읽어보는 것이 어떨까?
 

최예은(국문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