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져나갈 '구멍' 찾는 '구멍' 뚫린 정부
빠져나갈 '구멍' 찾는 '구멍' 뚫린 정부
  • 김수현 기자
  • 승인 2016.05.23 20:38
  • 호수 16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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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사상자를 낸 이번 사태는 기업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흡입한 이의 폐를 굳혀 결국 죽음에까지 이르게 하는 가습기 살균제가 시장에 유통돼 소비자에게 닿을 때까지 정부의 규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이 사태를 악화시켰다. 수많은 피해자를 발생시킨 PHMG가 20년간 소리 없이 세상을 누빌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환경부를 무용지물로 만든 미흡한 법률
1996년 12월 주식회사 유공(현 SK케미칼)은 PHMG을 제조하겠다고 환경부에 신고했다. 그리고 이듬해 3월 15일, 환경부는 PHMG가 속한 부류의 화합물이 ‘유독물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결과를 고시했다. 환경부는 이와 같은 판단을 내린 이유로 크게 두 가지 이유를 들었다. 첫째는 PHMG가 독성자료제출 의무 면제 대상인 ‘고분자 화합물’에 속하는 물질이기 때문이다. 둘째는 당시 유공이 이 물질을 카펫 제조에 첨가할 항균제로 사용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에 환경부에서는 해당 기업에 별다른 흡입독성 실험을 요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1991년에 제정된 유해화학물질관리법에 따르면 환경부는 화학물질을 제조·수입하고자 하는 이로부터 관련 자료를 제공받아 해당 물질에 대한 유해성 심사를 진행한다. 관련 자료에는 해당 물질의 독성실험자료도 포함돼있다. 하지만 PHMG를 포함한 고분자 화합물은 독성실험자료를 제출할 의무가 면제된다. 고분자 화합물은 열과 전기, 화학약품 등에 대해 안정성이 높고 용매에 의해 잘 녹지 않아 휘발성 및 반응성이 낮아 위험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PHMG는 별다른 독성실험 없이 환경부의 유해성 심사를 통과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PHMG가 양이온성 고분자 화합물이라는 데 있었다. 양이온성 고분자 화합물은 일반적인 고분자 화합물과 달리 용해 가능성이 있고 다른 물질에 반응할 여지가 존재하는 물질이다. 이는 인체에 유입될 시 인체와 유해한 반응을 일으킬 수 있음을 뜻한다. 그렇기에 양이온성 고분자 화합물은 반드시 독성실험을 통해 유독성 여부를 밝힌 후 제조 및 유통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이미 미국과 호주 등의 나라에서는 고분자 화합물과 달리 양이온성 고분자 화합물에 대해선 의무적으로 독성실험자료를 내도록 규제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수많은 피해자가 생긴 뒤에야 뒤늦게 2013년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을 제정, 지난해 시행해 해당 부류에 대한 독성실험자료를 제출하도록 조치를 취했다.
또한 우리나라는 용도에 따른 노출경로를 고려해 독성실험을 진행하도록 했다. 유공이 PHMG를 카펫에 첨가할 항균제로 신고한 바, 환경부는 소비자가 해당 성분을 흡입할 가능성이 작다고 판단해 흡입독성 실험을 유공에 따로 요청하지 않았다. 하지만 PHMG에 대한 문제가 제기된 이후인 2012년, 환경부는 자체적으로 PHMG가 유출될 수 있는 모든 경로에 대한 독성실험을 진행했고 전체 경우에서 해당 물질이 유독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뿐만 아니라 흡입 가능성이 낮은 카펫 첨가제 용도로 유해성 심사에서 통과된 PHMG가 흡입 가능성이 농후한 가습기 살균제의 첨가제로 사용되었음에도 흡입독성평가를 포함한 재심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이에 대해 환경부는 “당시에는 용도가 변경돼도 재심사할 법적 근거가 마련되지 않았었다”고 해명했다. 반면 미국의 경우에는 이미 신고가 된 물질이어도 용도가 변경된다면 환경청의 재심사를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PHMG의 용도 변경 사례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현재 PHMG는 가습기 살균제뿐만 아니라 신발 탈취제에도 사용된 것으로 드러났다. 이뿐만 아니라 △PGH △CMIT △MIT와 같은 물질들도 PHMG와 함께 유독성이 있는 것으로 밝혀져 해당 성분이 포함된 제품을 사용한 소비자들의 피해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유해성 평가는 환경부, 제품 관리는 누가?
현재 화학물질의 유해성 평가는 환경부의 관할이다. 하지만 이들 물질이 포함된 제품은 여러 부처가 나눠 관리하고 있다. 통합된 관리 체계의 부재 상황에서 각 부처는 서로 ‘우리 관할이 아니었다’며 책임을 미루는 실정이다. 문제는 발생했으나 관리할 법적 근거가 없었기에 정부엔 책임이 없는, 오로지 기업과 소비자 간에 발생한 문제라는 게 정부의 중론인 것이다.
약사법에 따라 제품을 관리하는 식품의약품안전처는 가습기 살균제를 공산품으로 간주해 자신의 관리대상으로 지정하지 않았었다. 2011년, 수많은 생명이 꺼진 뒤에야 식품의약품안전처는 가습기 살균제를 의약외품으로 간주해 관리대상에 포함시켰다. 그렇다면 그때까지 공산품으로 유통된 가습기 살균제는 어떤 부처의 관할 아래 있었던 것일까. 해당 제품은 품질경영 및 공산품안전관리법에 따라 산업통상자원부(이하 산자부)가 관리했어야 한다. 하지만 산자부 또한 가습기 살균제를 별도로 관리하지 않았다. 산자부에 따르면 세정제는 산자부의 안전인증이 필요하지만 살균제에 대한 법적 규제 근거는 마련되지 않았기에 자신들은 해당 상품을 관리대상으로 간주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유해성이 밝혀져 판매중지 및 수거 대상이 된 가습기 살균제 제품 중에는 산자부 산하의 국가기술표준원으로부터 ‘KC안전인증’을 받은 제품이 있었다. 이는 산자부가 가습기 살균제 제품군에 일괄적 기준을 적용하지 않았고 부실하게 관리했음을 보여준다.

이빨 빠진 수사, 맥 빠진 피해자들
피해사례가 속속들이 드러난 이후에도 피해 구제와 책임자 수사 및 처벌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결국 2012년 8월, 피해자들이 직접 옥시를 비롯한 문제 기업들을 고발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공정거래위원회가 제조사들에 안전성 허위광고를 사유로 과징금 오천이백만 원을 부과한 것을 제외하곤 아무런 진척도 없었다. 결국 2013년 검찰은 *시한부 기소 중지를 했고, 더 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3년 뒤인 올해에서야 특별수사팀이 꾸려졌다.
이처럼 전반적인 국책에 대해 피해자들은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지만 법원은 1심에서 ‘정부에 귀책사유가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에 대해 박태현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논문을 통해 "국가는 유해화학물질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신체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를 마련하지 못 했으며 이에 손해배상책임을 면할 수 없다고 본다"고 밝혔다.

 김수현 기자
skrtn122@skkuw.com

기사 도우미

◇시한부 기소 중지=전문가 감정 등이 필요할 경우 수사를 일시적으로 중지하는 검사의 처분으로 이 사건의 경우 역학 조사 결과가 나오면 수사를 재개할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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