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박주화 기자 (joohwa12345@gmail.com)

 

대한민국은 전형적인 저신뢰국가다. OECD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들의 단 26%만이 타인을 신뢰할 수 있다고 답했다. 89%의 국민이 긍정적인 답변을 해 1위를 차지한 덴마크의 1/3 수준이다. 또한, 사회 구성원들간 최소한의 합의점, 의사의 수렴이라고 볼 수 있는 사법에 대한 신뢰는 OECD 최하위권에 머무르는 실정이다. 제3자를 의심하고 신뢰하지 못하는 것이다. 단지 인식만이 그런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형사 사건에서 사기가 차지하는 비중이 여타 선진국과 비교했을 때 더 높았으며, 위증죄는 일본의 수백 배에 달한다.
스탠퍼드대 정치학과 Francis Fukuyama 교수는 자신의 저서 '트러스트'에서 “경제활동의 대부분은 신뢰를 바탕으로 일어나며 사회적 신뢰는 거래비용을 줄임으로써 경제의 효율성을 높여주는 경제적 자산”이라고 설명한다. 실제 세계은행 연구원 Knack과 Keefer의 공동연구는 신뢰지수가 10% 하락하면 경제성장률은 0.8% 하락하는 것을 밝혀냈다. 저성장 시대에 빠져있는 현시점에서 우리 사회의 신뢰회복은 사회 정의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저성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신뢰와 사회적 자본: 어떻게 축적할 것인가'의 저자 유종근은 공적인 신뢰는 사적 신뢰를 넘어 전 사회적 협력과 합의를 가능하게 하는 제도적 기반이기 때문에 그 중요성이 더욱 크다고 말한다. 그러나 공적 신뢰 기반이 허약한 것은 규칙을 만들고 적용하는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으로부터 드러난다. 현대사회연구소와 문화일보가 일반 국민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국회의원, 법원을 신뢰한다는 응답은 30%를 넘지 않았다. 그는 우리 사회처럼 규칙에 대한 신뢰가 없는 경우 연고에 의존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주장한다. 즉, 공적 제도가 자신의 권리를 보호해줄 것이라는 ‘공적 신뢰’가 부족하기 때문에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비해 인맥을 통해 ‘사적 신뢰관계’를 강화하려는 악순환이 지속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연고주의, 인맥주의가 강화되면 인맥 안에 속한 사람들의 불확실성은 감소하지만, 그것은 인맥 밖 사람들의 불확실성을 증가시킴으로써 얻어오는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삼성경제연구소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OECD 국가 중 두 번째로 갈등지수가 높은 나라다. 그는 이 결과에 대해, 사회의 구성원들이 각자의 연고주의적 연결망을 구축하려는 시도들이 사회를 분열하고 있는 것이라 지적한다.

뿌리내리지 못한 법치주의와 불신
그는 우리나라의 신뢰 결핍의 원인 중 하나로 유교적 가치관을 꼽는다. 신뢰 있는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법치주의가 뿌리내려야 하는데, 우리들의 법과 제도에 대한 인식이 유교적 가치관에 기인한다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라고 주장한다. 유교 정치철학의 요체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는 구절에서 살펴볼 수 있듯, 덕망이 있는 사람이 통치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구 민주주의는 오랜 기간 지도층의 도덕성에만 기대지 않고 정부기관 간의 견제를 제도화하고 국민이 통치권을 견제하는 방법들을 고안해왔다. 하지만 그는 그런 기간을 거치지 않았던 우리 사회에는 아직 덕치주의에 기반한 사고가 널리 퍼져있다고 말한다. 덕치주의의 이상은 고귀하지만 비현실적이다. 덕치의 판단 기준은 객관적 기준이 아니라 도덕적인 것이기 때문에 자신이 입장이 ‘도덕적’이라고 생각하면 의견들이 절충되기 어렵다. 그는 이러한 현상의 예로 법에 따라 이미 판결이 났지만,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투쟁을 지속했던 *‘천성산 사건’을 든다. 또한 그는 서구 민주주의에 비해 덕치에 기반한 우리나라의 정치이념은 절차보다 성과를 중요시하게 만든다고 말한다. 신뢰가 바로 서기 위해서는 절차 규칙을 존중하고 법을 지키는 법치주의 정신이 요구되지만, 도덕에 기반을 두고 덕 있는 지도자가 나서 문제를 해결하기 바라는 체제에서는 이것이 이루어지기 어렵다는 것이다.

신뢰 회복을 위한 법치주의의 원칙 확립
법치주의의 확립은 국민들 간의 신뢰 증진뿐만 아니라 투자나 노동의 결과에 대해 불법적인 피해에 대해 안심하고 경제활동을 할 수 있게 해 경제발전에도 기여한다. 또한 법과 제도에 대한 신뢰는 타인이 자신에게 피해를 끼치지 못하게 해줄 것이라는 믿음을 만들고 타인을 불신하지 않게 만든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우리 국민 중 절반 이상이 ‘법을 지키면 손해를 본다’고 생각한다. 법에 대한 신뢰가 바로서지 못해 개인이 스스로의 방법으로 자신의 이익을 관철하려 하고, 사회 갈등은 증폭된다. 이를 극복하고 법치주의가 뿌리내리게 하기 위해 저자는 첫째로 정부와 국민 모두 동일한 법에 의해 동일하게 통제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에 잘못된 예로 현직 대통령의 형사소추를 금하는 법률을 지적한다. 모두가 동일하게 법을 적용받아야 한다는 법치주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둘째로 누구도 국가 기관으로부터 법에 근거하지 않은 통제를 받지 않고, 모든 국민은 차별 없이 법의 보호를 받을 권리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2005년, 계열사 지분 의결권 행사를 제한한 공정거래위원회의 결정에 삼성그룹이 헌법소원을 제기했는데, 이에 대해 공정거래위원장이 매우 유감이라며 삼성그룹을 압박해 헌법소원을 철회하게 했다. 국가권력이 법에 의하지 않고 일반 기업의 권리에 제재를 가한 것이다. 누구나 자신의 권리를 위해 제기할 수 있어야 하는 절차를 국가가 제한해선 안 된다고 그는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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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패의 사전 차단을 위한제도적 접근이 필요
매릴랜드대 정치학과 Uslaner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부정부패와 불신은 매우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다. 부정부패가 만연하다는 것은 사회 구성원들 사이에 법과 제도에 의한 방법보다 편법과 불법과 같은 비정상적인 방법이 선호된다는 것이다. 그 결과 정치, 법, 정책 등과 같은 사회 전반에 대한 불신을 만들어낸다. 그렇기 때문에 부정부패를 근절하고 투명한 국가를 만들어야 사회에 신뢰가 자리 잡을 수 있다. 세계투명성협회의 부패인지지수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176개국 중 45위로 여타 선진국에 비해 매우 낮으며 중동 국가들보다 낮게 평가되고 있다. 그는 부정부패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강도 높은 처벌도 중요하지만, 제도를 통해 부정부패를 불가능하거나 매우 어렵게 만들어야 한다고 한다. 우리 사회에서 언론, 정치권, 국민들이 대형비리가 터질 때마다 ‘누가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느냐’에 주목하지만, 그런 비리가 다시 재발하지 않도록 어떤 시스템을 만들어야 하는지엔 무관심하다는 점을 그는 비판한다. 그러한 제도의 예로 그는, 큰 액수의 현금을 거래할 때 금융기관이 당국에 신고하게 하는 제도 등을 든다. 자금 세탁을 처벌하는 데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닌, 어떻게 하면 그것을 어렵게 할 것이냐를 고려하는 제도인 것이다.

신뢰회복을 꿈꾸며
신뢰의 핵심은 사회적 시너지 효과에 있다. 사회 구성원들이 서로 신뢰에 기반한 행동을 한다면 통합된 사회를 이룰 수 있고, 그곳에서 개개인의 능력 총합 이상의 효율이 나오게 된다. 하지만 신뢰가 부족한 나라에선 이를 기대할 수 없고 오히려 각자의 능력을 발휘하기도 어려워진다. 삼성, 현대와 같은 초우량기업들이 해외에서 선전하고 한류가 세계로 뻗어 나가고 있지만, 청년들은 취업이 어렵고 사회는 양극화돼가고 있다. 이와 같은 문제를 발생시키는 가장 큰 원인은 저성장이라고 그는 말한다. 저성장의 굴레에서 소비는 위축되고 내수는 더욱더 악화된다. 그래서 우리나라가 위기를 극복하고 앞으로 나아갈 추진력을 찾지 못하고 있는다. 저자는 그 해답을 경제 정책만이 아닌, 바로 신뢰에서 찾는다. 사회 구성원들이 서로 신뢰하는 사회가 각종 경제 정책이나 개혁의 성과를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에 신뢰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고 그는 주장한다. 

기사 도우미

◇천성산 터널 사건=2003년 환경 훼손 문제로 경부고속철도 천성산 구간(원효터널)의 공사를 반대하며 고속철도청을 상대로 공사금지 소송을 진행한 사건. 대법원에서 원고의 청구를 기각하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