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박범준 편집장 (magic6609@skkuw.com)

“논에 들에 / 할 일도 많은데 / 공부시간이라고 / 일도 놓고 / 허둥지둥 왔는데 / 시를 쓰라 하네 / 시가 뭐고 / 나는 시금치씨 / 배추씨만 아는데” (소화자,「시가 뭐고」,『시가 뭐고』).
지난해 겨울, 한글을 막 뗀 경상북도 칠곡군 ‘할매’들이 시집을 냈다. 시집에는 나날의 노동에 대한 태도, 먼저 간 영감과 가족들에 대한 그리움, 한글을 배우고 익히는 즐거움 등이 할머니들의 방언 섞인 꾸밈없는 언어로 표현돼 있다. 시집을 읽는 내내 소박한 그네들의 삶과 솔직함에 미소 짓게 된다. 시집을 덮고 나면 문학이 그리 거창한 것이 아님을 그리고 꾸밈없는 솔직함이 좋은 문학의 시작이 될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할매’들이 용기 있게 펴낸 시집은 글쓰기를 하는 사람들에게 작은 위안을 준다. 하지만 글 쓰는 사람은 안다. 눈앞에 놓인 백지가 얼마나 하얗고 광대한지. 이번 ‘2016 성대문학상’에 참가한 96명의 학우도 시나 소설을 쓰기 전에 수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다. 많은 학우가 문학상을 통해 문학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보여줬다. 저마다의 색깔로 빛나는 81편의 시와 30편의 소설이 성대문학상의 문을 두드렸다. 모든 작품을 하나하나 지면을 통해 소개하지 못해 아쉬운 마음이 든다.
소설과 시 공통적으로 화자가 20대 대학생인 경우가 많았고, 그 배경 또한 도서관, 강의실, 카페, 패스트푸드점 등 청년의 공간인 경우가 많았다. 학우들이 직접 삶의 현장에서 부딪히며 치열하게 고민했던 화두들이 작품 속에 담겨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모든 작품이 청년의 삶을 다룬 것은 아니었다. 우주가 배경인 SF소설도 있었고 별장에서 벌어지는 스릴러물도 있었다. 시골의 장터를 배경으로 한 시도 있었다. 이러한 학우들의 다양한 시도가 문학상을 더욱 다채롭게 만들어 주었다.
이번 소설부문 최우수, 우수에 당선된 <벤더, 램지, 로스에게>, <집에 가자>는 각각 가상의 도시, 가상의 마을을 설정하고 있지만, 소설이 비유한 도시와 마을이 어딘지 유추해내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두 소설에서 작가는 언뜻 보면 불가해하고 복잡해 보이는 세계를 자신만의 언어로 풀어냈다. 세계에서 벌어지는 폭력과 부조리를 전자는 살짝 떨어진 거리에서 후자는 그보다는 좀 더 가까운 거리에서 공감하는 태도로 그려내고 있다. 독자들은 작가가 풀어낸 이야기의 결들을 만지면서 어떤 부분은 마음에 들어 하고 어떤 부분은 고개를 갸우뚱해가며 자신의 경험을 재구성해나간다. 그런 점에서 문학은 작가가 생각의 무늬를 드러내는 과정이고 독서는 독자가 그 무늬를 자신의 무늬와 비교, 대조해보는 입체적인 경험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문학이 자신의 무늬를 글로 표현하는 과정이라면, 춤은 그것을 몸으로 표현하는 과정이다. 지난달 26일, 600주년기념관 새천년홀에서 열린 우리 학교 무용학과 작품발표회에 참석했다. 나는 무용학과에 어떤 연고도 없고, 현대무용이나 발레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다. 단순히 호기심 때문에 새천년홀에 들어갔는데, 무용학과 학우들의 무대에 압도되고 말았다. 특히 4학년생들의 ‘Dust’라는 작품을 인상 깊게 봤다. 맨몸으로 삶과 죽음의 순환이라는 추상적인 관념을 표현해낸다는 것이 신기했다. 간헐적으로 들리는 타악기 소리에 맨발이 무대에 삐익- 부딪는 소리, 떨어지는 땀방울과 먼지, 뼈와 관절과 근육의 움직임이 하나의 주제에 기여하고 있었다.
칠곡 ‘할매’들의 시, 학우들의 시와 소설과 무용, 그리고 매호 내보내는 나의 편집장 칼럼. 이들은 서로 조금씩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사람의 무늬를 드러내는 일’을 하고 있다. 히말라야 라다크 지방에는 이런 속담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고 한다. “호랑이의 줄무늬는 몸 밖에 있지만, 사람의 줄무늬는 몸 안에 있다”. 사람의 무늬(人紋)를 가꾸고 표현하는 일. 나는 아직 이보다 더 가치 있고 아름다운 일을 찾지 못했다.

박범준 편집장
magic6609@skkuw.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