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세상이 이래도, 세상이 이러하기에 젊은 문학도들은 글을 쓴다. 선혈 같기도 하고 울음 같기도 하며, 때로는 힙합 같기도 하고 히피 같기도 하다. 무엇보다 나름의 싸움들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혐오와 좌절과 분노로 가득한 세계에선 한 사람 한 사람이 결기에 찬 전사처럼도 느껴졌다. 올해 성대문학상 소설부문 공모는 그 어느 때보다 풍성했다. 총 30편의 작품이 투고되었고, 절반 이상의 작품이 끝까지 읽어야 판단이 설 정도로 나름의 장점들을 갖고 있었다. 가깝게는 입시생 시절이나 군생활의 어려움, 연애와 아르바이트와 책읽기로 요약되는 대학생활의 절절한 사건들, 동성애 문제나 신의 문제와 같은 심각한 사회적, 형이상학적 물음들도 있었다. 물론 많은 작품들이 자신에게는 더 없이 절실한 이야기지만, 보기에 따라서는 너무나 익숙한 플롯과 화소(話素)에 의해 구성되어 있어 학생문단의 ‘진지한’ 한계들이 노정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대화나 사건 진술로만 일관함으로써 서사적 거리 확보에 실패한 작품, 자신에게는 절실하지만 별다른 도약이나 서사 장치 없이 단순한 고백담에 그친 작품이 많았다. 
변화도 엿보였다. 몇 해 동안 ‘미래를 위해 현재를 담보 잡힌’ 삶의 고단함에 대한 이야기들(안티-스펙 서사)이 많았던 것을 떠올려보니, 올해는 어떤 식으로든 이 상황으로부터 적극적으로 벗어나려는 목소리들이 하나의 ‘경향’으로 실감되었다. 응모작들을 읽으며 때로는 각자의 마음에 있는 라파엘이 느껴졌고, 루시퍼들이 출몰하는 장소를 탐문하는 사제 혹은 트릭스터들의 진지함이나 장난기도 눈에 띄곤 했다. 라파엘 쪽이 맑았을 영혼을 긁은 상처에 대한 이야기, 푸념이나 넋두리와 구별되지 않는 고백담에 기울어진 ‘순진함’에 갇힌 사례가 많았다면, 루시퍼 쪽은 말의 운용과 반전이 전부인 꽁트식 재치들이나 하드보일드나 미스테리의 장르적 컨벤션에 기댄 ‘위악’들에 재능을 허비해 버린 경우가 적지 않았다. 다만, 어느 쪽이든 이 지리멸렬한 상황을 자기식으로 돌파하겠다는 의지는 분명해 보였다. 10편 가까운 작품들이 뽑아도 될 만한 재능을 보여주고 있었지만, 지금 뽑기보다 좀 더 기다려주는 게 본인에게 도움이 될 성 싶었다. 더 나아간 작품을 보고 싶기 때문이다. 좌절도 거름이 되는 수가 있고 칭찬도 독이 되는 수가 있지 않겠는가. 그래서 결국 가능성이 문장이나 서사의 결구력으로 ‘증명된’ 작품들만 골라내는 게 좋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런 이유로 두 작품을 각각 최우수작과 우수작으로 선정한다. 루시퍼 계열에선 조금만 더 숙고해 다듬으면 당장에라도 중앙을 지나 골대 앞에 설만한 한 작품에 눈이 멈춰졌다. 『벤더, 램지, 로스에게』는 헤밍웨이 모독이라는 가상의 죄와 세계의 파국을 다룬 미스터리로 영미문인협회에 납치 당한 버클리를 둘러싼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펼쳐 놓는다. 히피, LSD, 록음악, 비트문학과 같은 미국 반문화/저항문화의 세례나 긴박감에 공헌하는 하드보일드식 문장이 참으로 세련된 한편 2016년의 시간에서 보자면 일종의 ‘고전 다시 읽기’ 같은 튼튼한 문화적 자양을 느끼게 한다. 미국문화의 컨벤션으로 그것을 뒤집어 보겠다는 의욕도 그 성공 여부를 떠나 야심차다. 다만 몇 대목은 재능에서 온 작위성으로 인해 제발에 걸려 넘어지는 듯한 부분이 있었다. 최우수작으로 삼는다. 그에 비하면 『집에 가자』는 순수하달 정도로 진지한 라파엘이 안에 있는 작품이다. 마을 지키기, 재개발의 문제, 유년과 현재를 오가는 기억의 문제 등 디테일들에 대한 천착이 밋밋하고 건조한대로 믿음직했다. 정공법으로 써가겠다는 의지로 받아들이고 싶었다. 철거 반대 투쟁이라는 문제를 다루면서, 그 투쟁에서 살아남았지만, 이제는 결국 ‘패배의 이야기’만을 가진 청년의 심사를 잘 조직해내고 있다. 문학적 수사나 결구방식들이 잘 정련되었다고 보기 어려웠지만, “모든 것이 무너지고 부서지지 않을 때를 향해 글을 쓴다”는 결의와 각오를 사주고 싶었다. 더 넓지만, 더 가혹한 진짜 사막에서 오아시스가 되어 주시길 빈다.  

 

황호덕 교수
국어국문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