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지난 30년간 강단에서 국제정치를 가르쳤던 국제정치학도로서 새삼스레 국제정치학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며 지난 퇴임강연에서 발제했던 내용을 축약해 본다.
국제정치의 궁극적인 목적은 전쟁을 넘어 평화를 구현하는 것이다. 그러나 인류사는 갈등, 대립, 전쟁으로 점철되어 왔다. 이 과정에서 인류는 인간 존엄성의 황폐화와 비인간화를 경험했다. 물론 협력과 평화를 위한 노력이 없지는 않았지만, 대부분의 시간을 국가, 조직, 혹은 개인의 생존을 보전하기 위해 크고 작은 갈등, 대립, 전쟁으로 보냈다는 의미이다.

 일러스트Ⅰ유은진 기자 qwertys@

최근 전쟁을 예방하고 평화를 증진하려는 국제사회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아직도 전쟁의 개연성 속에서 불안하게 살고 있다. 현대무기의 발달과 핵무기, 생화학 무기 등 대량살상무기의 확산은 인류의 미래를 위협하고 있다.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 특히 어린아이들과 부녀자들이 국가, 조직, 테러집단에 의해 합법적, 불법적으로 자행되는 폭력 앞에 아무런 방폐막이도 없이 노출되어 있으며, 그 누구도 이에 대해 책임감을 느끼지 않고 있다. 유엔개발계획(UNDP)이 ‘인간안보’(human security)를 외치며 이러한 폭력으로부터 소외된 자들을 걱정하는 정도이다.
그렇다면 국제사회가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논의는 어디서부터 시작되어야 하는가? 오늘날 국제사회는 주제의 다양성과 문화의 상대성을 이해해야할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인적인 교류와 이동은 문화, 스포츠, 학문 영역뿐만 아니라 경제 등 모든 영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일정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시민사회의 연대와 실천은 환경, 젠더, 기아 등 특정 영역에서 국가를 넘어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고 있다.
국제사회의 화해와 협력을 위해서는 ‘상생의 담론’을 통해 ‘문화적 상대성’(cultural relativism)을 인정하고 ‘평화의 가치’를 확대하는 곳에서 출발해야 한다. ‘종의 다양성’이 생태계를 건강하게 만든다는 자연의 법칙에 따라, 우리는 상대적 문명권의 존재를 재인식하고 재확인해야 한다. 세계에는 기독교, 이슬람교, 불교, 유교 등 다양한 문명권이 존재하고 있으며 어느 문명의 절대성을 강제할 수 없다. 각각의 문명권은 자신들의 고유 가치와 질서를 가지고 있다. 기독교 문명만을 선으로 간주하는 과거의 억압적 논리가 다시 강요된다면 이는 또 다른 갈등과 전쟁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제 국제정치학자들은 인류의 존엄성을 보존할 수 있는 ‘적극적인’ 평화연구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평화를 위해서는 전쟁을 준비하라.”는 로마의 장군 베제티우스의 주술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소극적인’ 평화는 더 이상 국제사회의 갈등과 반목을 치유하는 패러다임이 될 수 없다. 이는 궁극적으로 ‘힘의 축적’을 통한 평화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작금의 국제사회에는 “평화를 위해서는 평화를 준비하라”는 ‘적극적인 평화’가 필요하다. 평화의 모습은 선ㆍ후진국들이 같이 공존할 수 있는 ‘전일적(holistic)ㆍ전지구적 사고’와 ‘상대성의 원리’로 그려져야 한다.
또한, 국제정치학도들은 국제사회 구성원들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다양성’을 인정하면서 건강한 ‘하나의 공동체’ 원리를 만들어 가는 이론을 개발하고, 세계평화를 위한 국제시민사회의 실천적 노력과 연대에 적극 참여해야한다.

 

김성주 교수(정치외교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