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조수민 기자 (soommminn@skkuw.com)

유득공의 시 『애정련』에도 등장하는 감홍로(甘紅露)는 달곰한 맛과 붉은 빛깔을 가진 우리나라 최초의 증류식 소주이다. 조선 시대에는 평안도 지방을 중심으로 발전하여 평양의 특산명주였으나 6·25 전쟁 시기에 남한으로 내려왔다. 술에는 로(露)·고(膏)·춘(春)·주(酒) 순으로 격이 있는데 현재 유지되고 있는 로(露)는 감홍로가 유일하다. 육당 최남선은 『조선상식문답』에서 △평양의 감홍로 △전주의 이강고 △정읍의 죽력고를 조선 3대 명주라 하고 감홍로를 그 중 으뜸으로 꼽았다. 감홍로는 1950년 시행된 양곡관리법으로 인해 몇십 년 동안 생산되지 못하며 소실될 뻔했으나 이기숙 명인에 의해 복원돼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사라져가는 전통주를 보존하기 위해 힘쓰고 있는 전통식품명인 제43호 이기숙 씨와 그녀의 남편인 농업회사법인 감홍로 대표이사 이민형 씨를 만났다.

감홍로 이기숙 식품 명인(오른쪽)과 농업회사법인 감홍로 이민형 대표이사

부부는 파주에 세운 작은 공장에서 감홍로를 만들고 있다. 공장의 사무실로 들어가자 ‘1980년 감홍로’라는 이름표가 붙어있는 병이 눈에 띄었다. 이 명인은 그녀의 아버지가 담근 감홍로라고 설명했다. 그녀는 증류식 소주의 하나인 문배주 기능 보유자였던 故 이경찬 씨의 딸이다. 故 이 씨는 6·25 전쟁이 발발하기 전 평양에서 양조장을 하며 문배주와 감홍로를 만들었다. “감홍로에 들어가는 재료나 제법이 집안 대대로 전해왔어요. 그걸 바탕으로 감홍로를 복원할 수 있었죠.”

지금 생산되고 있는 감홍로(왼쪽)와 1980년에 만들어진 감홍로

이 명인이 어렸을 때부터 가업을 이어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아버지 옆에서 일을 도우며 오랜 시간 함께 있다 보니 아버지의 꿈을 이해하게 됐다고 말했다. “아버지가 문배주로 국가 지정 인간문화재가 되시고 난 다음에 감홍로로도 인간문화재가 되길 바라셨어요. 그런데 건강악화로 그 바람을 이루지 못하고 돌아가셨고 제가 아버지의 뜻에 따라 전통주를 계승하고 공유하게 된 거죠.” 계속된 노력 끝에 이 명인은 2012년 감홍로 식품 명인으로 지정받았다. 집안에서 전해 내려오던 술을 외부에 알리고, 소실될 수도 있었던 전통주를 계속 이어나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전통주이기 때문에 전통방식 그대로 술을 빚을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공장에는 기계들이 가득했다. 술을 빚는 전통 도구들은 곳곳에 조그맣게 자리를 잡은 채 더는 쓰이지 않고 있었다. 사람 손이 닿는 것은 밥을 짓거나 술을 만드는 재료를 넣는 일 정도이다. 그 외의 과정은 모두 기계를 통해 이뤄진다. “밥 지은 것을 일일이 손으로 퍼서 나르면 오염이 되고 벌레가 들어갈 수도 있어요. 효율성도 떨어지죠. 그래도 전통방식과 비교했을 때 규모와 도구만 다르지 과정 자체는 같아요.” 공장 입구에는 감홍로에 들어갈 밥을 지을 *메조가 산처럼 쌓여있었다. 이 대표는 영월에서 직접 계약재배를 해온 것이라며 감홍로를 빚는 것이 우리 농산물도 살리는 일이라고 말했다. “저희가 계약하지 않는다면 우리나라에서는 아예 메조를 생산하지 않을 거예요. 우리가 술을 만들지 않으면 메조라는 곡물도 보존이 어려운 거죠.”
이 대표는 감홍로 복원을 시작하면서 술을 빚기 위한 허가를 받는 것 자체가 어려웠다고 말했다. “술을 제조하려면 회사를 차려 허가를 받거나, 인간문화재 혹은 식품 명인이 돼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았어요. 2005년에 법인을 설립하고서야 그다음 해부터 생산을 시작할 수 있었죠.” 하지만 어렵게 복원한 후에도 감홍로를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술은 17도가 넘어가면 광고를 할 수 없어요. 그러니까 알릴 방법이 거의 없었죠.” 하지만 복원 후 시간이 조금 지나자 ‘소실 직전에 복원된 전통주’에 대해 언론에서 많은 관심을 가졌고 그런 관심이 전통주를 홍보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마지막으로 부부는 젊은 세대에게 건강한 술 문화가 자리 잡기를 당부했다. 이 대표는 술이라는 하나의 문화가 현대에 와서 갑작스럽게 변해가는 것에 대해서도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제가 어렸을 때만 해도 술 마시는 것에 풍류가 있었어요. 술을 마시다가 시를 쓰기도 하고 그림도 그렸죠. 지금 젊은이들도 그들 나름대로 술 문화를 만들어가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점이 아쉬워요.” 그는 좋은 술이란 좋은 사람과 좋은 이야기를 나누며 마시는 술이라며 지금의 젊은이들에게도 술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이어주는 좋은 연결고리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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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조=조의 한 종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