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조연교 기자 (joyungyo@skkuw.com)

전통주는 가양주(家釀酒)와 그 문화로부터 비롯된다. 가양주는 말 그대로 ‘집에서 빚은 술’을 의미한다. 전통주의 전성기라 불리는 조선 시대에는 집집이 직접 빚은 술이 있었을 정도로 술은 선조들의 삶, 그 자체였다. 불교 사회였던 고려 시대에는 승려를 중심으로 한 술빚기가 이루어져 사찰에서 빚은 술을 일반에 공급하는 것이 주된 풍토였다. 반면 유교 사회인 조선 시대에서는 조상숭배와 추수 감사제, 명절과 같은 세시풍속을 중시함에 따라 집마다 제사와 같은 가정 행사에 이용하기 위해 술을 빚는 우리의 고유한 가양주 문화가 널리 퍼지게 됐다. 지역적 특색에 따라, 가문 대대로 전해지는 고유한 비법에 따라 특색있는 가양주들이 그 맛과 향을 자랑해 ‘이름 있는 집안에 맛있는 술이 있다’는 뜻의 명가명주(名家銘酒)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였다. 또한 ‘주인은 손님에게 술을 권하고, 손님은 주인에게 밥을 권한다’는 뜻의 주주객반(主酒客飯)이라는 말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손님을 접대할 시에 술을 권하는 것이 예(禮)와 도리(道理)로 여겨졌다. 그에 따라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의 형편에 따라 찹쌀이나 보리쌀, 좁쌀 등의 곡식으로 술을 빚어 손님 접대에 이용했다. 또한, 밥을 먹으면서 술을 곁들어 먹는 것을 의미하는 반주(飯酒)는 『삼국유사』에 따르면 통일신라 시대 때부터 뿌리내렸으며 가양주 문화와 더불어 우리네 고유한 술 문화이다. 독주(毒酒)를 과음하는 것이 만연한 오늘날의 술 문화와는 다르게, 우리 선조들은 전통주 특유의 단맛으로 과음을 방지하고 술과 음식의 어울림을 즐기는 건전한 술 문화인 반주를 즐겼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우리 고유의 전통주와 술 문화는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그 명맥이 끊어졌다. 1905년 을사늑약이 강제로 체결된 이후, 1907년 7월 조선총독부에 의해 주류를 과세 대상으로 규정한 ‘주세령’이 최초로 공포되었다. 우리나라를 통치하기 위한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일본은 역사 이래 최초로 술에 세금을 매겼다. 뒤이어 주세를 걷어 들이기 위해 자연스럽게 자가양조를 금지했고 집집이 술을 빚는 우리의 전통 가양주 문화는 말살당하게 됐다. 이후 일본은 고을마다 주류 공장을 지정해 일본식 청주를 대량생산하기 시작했다. 그에 따라 술 판매가 활성화됐고 총독부의 주세 수입은 매우 증가해 총독부의 1918년의 수입은 1909년의 12배로 상승했다. 이렇게 우리나라의 주류는 일본의 통제하에 규격·단일화되고 주세령 또한 시간이 지날수록 강화됐다. 1945년 광복 이후에도 총독부 치하의 주세행정은 한동안 그대로 이어졌고 1965년에는 만성적인 식량난으로 인해 ‘양곡관리법’이 도입되면서 쌀막걸리와 증류식 소주의 제조가 금지됐다. 이로써 밀주의 형태로 그 명맥을 간신히 이어가던 우리의 전통주는 완전히 사라져갔다.
1988년 서울올림픽이 개최되고서야 비로소, 우리는 행방불명된 우리 술의 발자취를 찾아 헤매기 시작했다. 서울올림픽을 보기 위해 우리나라를 찾아온 수많은 외국인에게 내보일 우리의 전통술이 없다는 사실은 문화민족으로서 자부심을 지녀온 한국인에게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혼돈의 근현대사 속에서 그 씨가 말라버린 우리의 전통 술. 그러나 우리 고유의 풍습이자 전통문화로서의 우리 술을 잊힌 채로 남겨둘 수는 없었다. 정부는 “우리나라를 찾는 외국인들에게 역사 깊은 우리나라의 술을 알리고 세계화를 도모하자”는 취지로, 맥이 끊긴 가양주와 밀주 형태로 빚어지고 있던 술에 대한 조사와 발굴을 시행하고 전통문화재적 가치가 있는 술에 ‘전통주(傳統酒)’라는 명칭을 부여했다. 더불어 밀주의 형태로 이어지던 민속주 가운데 딱 8가지를 지정해 판매를 허용했는데, 이것이 안동소주와 교동법주 등이 속해있는 ‘국가지정 8대 민속주’이다. 1991년부터는 양곡관리법을 완화해 쌀막걸리를 허용했으며 현재에도 사라진 전통주를 되살리고자 하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2013년 기준으로 700여 개에 이르는 영세·소규모 제조장에서 생산되는 전통주의 출고액이 전체 주류매출액의 0.3%에 그친다는 사실은 아직도 전통주가 국내시장에서조차 자리 잡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전통주는 5000년의 민족 역사와 늘 함께했던 삶 그 자체로서의 문화였기에 일제강점기 시대 문화말살정책의 대상이 됐었다. 이제야 제 위상을 되찾아가기 위한 발걸음을 내디디고 있는 전통주를 위해 젊은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우리의 전통주를 계승·발전시키기 위한 노력은 모두 거창한 것이 아니라 전통문화를 사랑하는, 작지만 소중한 마음에서 시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