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시생들은 노량진에 남았다
공시생들은 노량진에 남았다
  • 황병준 기자
  • 승인 2016.09.25 20:37
  • 호수 16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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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과 함께 즐거운 한가위 보내시길 바랍니다'

취업준비생 10명 중 4명이 공무원 시험 준비생(이하 공시생)이다. 지난 7월, 통계청이 발표한 ‘2016 5월 청년층 부가조사 결과’에 따르면, 청년층(15세~29세) 비경제활동인구 중 취업시험 준비자는 65만 2000명이며, 이 중 일반직 공무원 시험 준비자가 25만 6000명으로 전체 취업시험 준비자의 약 40%를 차지했다. 약 22%를 차지한 일반 기업체 취업시험 준비자의 수를 훨씬 웃도는 수치다.
이는 젊은이들이 보다 안정적인 직장을 얻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취업 포털 알바몬이 현재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대학생 578명을 대상으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이유'에 대해 설문 조사한 결과 '고용 안전성'이 응답률 80.1%(복수 응답)로 1위를 차지했다. ‘취업 한파’, ‘고용 불안’의 장기화에 따라, 공무원 시험 열풍 또한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 노량진은 공무원 시험의 ‘메카’로 통한다. 많은 청년이 안정적인 직장을 얻기 위해 노량진으로 몰리고 있다. 추석 연휴 첫날이었던 지난 14일, ‘추석’이란 말은 노량진에서 무색했다.

 

오전 7시 30분, 붐비는 노량진
지난 14일, 노량진으로 향하는 열차 안에는 손에 유인물을 들고 공부하는 사람이 많았다. 오전 7시 30분, 노량진역에서 내린 그들은 손에 유인물을 들고 공부하며 역을 걸어나갔다. 유인물의 무게는 손이 아닌 목에서 구현되는 듯싶었다. 고개를 숙인 채 걷는 사람이 많았다.
‘가족과 함께 즐거운 한가위 보내시길 바랍니다.’ 학원가로 향하는 역 앞 횡단보도 인근에는 각 정당의 추석맞이 플래카드가 걸려있었다. 많은 이들이 볼 수 있도록, 플래카드는 역을 등지고 학원가를 향해 펼쳐져 있었다. 역에서 나와 횡단보도를 건너는 이들은 플래카드를 등지고 걸었다.
추석 연휴 첫날의 노량진 학원가는 이른 아침부터 공시생들로 붐볐다. 경찰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인 김진영(24) 씨는 오전 6시에 집에서 나왔다고 했다. 그는 “평소 오전 6시에 집에서 나와 막차를 타고 귀가한다”고 말했다. 6개월 동안 시험 준비를 한 그는 “남들도 다 그렇게 한다”며 “나는 열심히 하는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24시간 영업을 하는 패스트푸드점은 아침밥을 해결하러 온 공시생들이 좌석을 채웠다. 절반은 햄버거와 음료, 절반은 책과 유인물들이 올려져 있는 식탁이 많았다.
아침 일찍부터 영업을 시작한 한 작은 커피숍 앞으로는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커피숍 아르바이트생은 “이른 시간부터 학생들이 많이 오기 때문에 오전 6시 30분부터 영업을 시작한다”고 말했다. 커피를 받은 공시생들은 차례대로 저마다의 학원을 찾아 들어갔다.

추석특강, 문전성시를 이룬 학원가
오전 8시 이전부터 학원가는 문전성시를 이뤘다. A 학원의 경우 기존의 정규 수업들은 휴강하지 않았고 추석맞이 영어특강, 띄어쓰기 특강, 한자성어 특강, 근현대사 특강 등이 새로 개설되어있었다. 추석특강을 듣는 박승희(25) 씨는 아르바이트를 하는 동생과 함께 서울에 남았다고 했다. 그는 “내려가고 싶었으나 특강을 듣는 것이 나에게 더 도움이 될 것 같았다”고 말했다. 추석특강으로 연휴를 반납한 이들은 박 씨뿐만이 아닌 듯했다. A 학원 관계자는 “하루에도 여러 개의 수업이 있는데 한 반에 약 100명 이상의 인원이 수강 중”이라며 “수강신청은 연휴 내내 받을 것”이라고 밝혔다.
수업이 진행되지 않는 강의실에도 학생들은 많았다. B 학원의 경우 강의실 문마다 ‘자습 가능 시간표’가 붙어있었다. 수업시간을 피해 자습이 가능한 시간대를 알려주는 안내문이었다. 학생들은 그것을 보고 자습할 강의실을 찾아 들어가 공부하고 있었다. 김민영(27) 씨는 추석특강을 듣지는 않지만, 자습을 하기 위해 남았다고 했다. 그는 “부모님은 고향에 내려가셨지만, 수험생인 동생과 함께 남기로 했다”고 말했다. B학원 관계자는 “큰 강의실에는 좌석이 약 400개 정도 있다”며 “정확한 인원은 알 수 없으나 절반 이상의 좌석이 자습하는 학생들로 찬다”고 전했다.
8시 이전의 학원가는 이렇게 추석특강을 듣는 학생들, 자습하는 학생들, 프런트에 앉아 상담하는 학생들과 그 학생들을 상담해주는 직원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A 학원과 B 학원의 오전 수업은 모두 9시에 시작했다. 수업이 진행되는 동안, 거리는 사뭇 헐거워 보였다.

“특강이 많아서 학생들 안 내려가”
낮 12시, 오전 수업을 끝마친 학생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거리 위로는 비가 쏟아졌다. 비 내리는 거리 위로 우산을 챙기지 못한 공시생들이 밥을 먹기 위해 내달렸다. 거리는 활기를 띤 듯 보였다.
컵밥 거리도 마찬가지였다. 오전에는 14개의 점포 중 2개의 점포만이 문을 열었으나 점심때가 되니 8개의 점포가 장사를 시작했다. 컵밥집을 운영하는 최윤숙(57) 씨는 공시생들만큼이나 학원 일정과 시험 일정에 밝았다. 그는 “특강이 많아서 학생들이 안 내려간다”며 “내달에 7급 공무원 시험이 있어서인지 오늘 내일 다 특강이 있다”고 말했다. 컵밥집 앞으로는 혼자 서서 밥을 먹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는 “노량진은 혼자 먹는다 해서 뭐라 하는 사람 없다”고 덧붙였다.
학원가 인근에는 박리다매형 식당들이 포진해있다. ‘음식 백화점’이라는 이름의 식당에는 한식, 중식, 일식, 뷔페, 커피숍이 한데 들어차 있었다. 음식들의 가격은 대부분 5천 원을 넘지 않았다. 컵밥 거리와 달리, 삼삼오오 둘러앉아 담소를 나누며 밥을 먹는 학생들이 많았다. 옆자리에 앉아 밥을 먹던 학생들은 어느 강의의 어느 강사가 좋더라는 이야기를 했다. 오전에 공부하려던 분량을 달성하지 못 했다는 이야기도 오갔다.
노량진의 식당가는 공시생들 저마다의 허기를 채워 다시 학원가로 돌려보냈다. 거리는 다시 헐거워 보였다.
점심시간의 컵밥거리


“요새는 방이 없다”
학원가 뒤편에는 원룸촌이 진을 치고 있다. 오후의 원룸촌은 학원가와 달리 붐비지 않아서 정적이었다. 많은 학생이 학원가로 빠져나간 듯했다. 원룸촌 진입로 초입에는 동작구청에서 붙인 ‘추석 연휴 간 쓰레기 수거 업무 중지’에 대한 안내문이 이곳저곳 붙어있었다. 골목마다, 집 앞과 전봇대 인근에 쓰레기 더미들이 쌓여있었다. 다만, 추석 연휴 간 쓰레기는 계속 쌓일 듯했다.
원룸촌 인근 부동산 관계자에 따르면 노량진의 원룸은 보증금 500만 원에 월세 50만 원이 기본이다. 부동산 관계자는 “3~4평 남짓에 내부 시설도 다른 지역에 비해 부족하지만, 요새는 남는 방이 없다”고 말했다. 최근 9급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원상호(25) 씨는 “한 달에 방값 50만 원, 식비 40만 원, 학원비는 천차만별이나 한 달 평균 30만 원으로 잡는다면 100만 원 이상은 족히 쓰더라”며 “비용이 적지 않음에도, 많은 이들이 노량진으로 몰려드는 세태가 안타깝기도 하다”고 전했다.

‘가족과 즐거운 한가위 보내시길 바랍니다’
저녁 어스름이 깔린 노량진 학원가에는 낮에 볼 수 없던 이들도 보였다. 구걸하는 노숙자, 달고나 파는 할아버지는 저녁 노량진의 붐빔에 기대고 있었다. 폐지 줍기를 밥벌이로 하는 노숙자 정갑수(53) 씨는 컵라면 그릇을 앞에 놓고 구걸하고 있었다. 그는 “노량진에는 추석에도 사람이 많으니까, 돈 좀 벌 수 있을까 해서 왔다”고 말했다. 달고나를 파는 최동락(72) 씨는 “노량진에는 사람이 늘 많다”며 “오가는 학생들이 달고나를 이따금 사준다”고 말했다.
오후 9시, 학원가들은 토해내듯 학생들을 거리로 쏟아냈다. 수업을 마친 학생들이 가방을 메고 역으로 향했다. 역으로 향하는 횡단보도에는 많은 학생이 서 있었다. 횡단보도 인근 플래카드들은 학원가를 향해 펼쳐져 있어서 역으로 건너려는 학생들과 마주하고 있었다. ‘가족과 함께 즐거운 한가위 보내시길 바랍니다’라는 플래카드가 공중에 매달려 펄럭였다. 이틀은 더 매달려있을 것이었다.

*모든 이름은 가명으로 표기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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