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홍정아 차장 (ja2307@skkuw.com)

“여자답게 달려보세요.” 위스퍼의 ‘여자답게’ 캠페인 영상 중 진행자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요구한다. 그러자 그들은 팔다리를 좌우로 흔들며 사뿐사뿐 뛴다. 이후 더 어린 소녀들에게도 같은 질문을 한다. 하지만 앞선 결과와 달리 그들은 최대한 열심히 달린다. 그들에게 ‘여자답게’라는 말은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 빨리 달리라는 말로 받아들여진 것이다. 사춘기를 겪으며 수도 없이 들어온 “여자는 얌전해야지”, “여자는 연약한 존재야”라는 말들이 ‘여자답게’와 ‘나답게’를 서로 다른 의미로 만든 것은 아닐까.

지난해 세계경제포럼이 발표한 젠더격차지수에 의하면 한국은 0.651점으로 145개국 중 116위에 해당했다. 젠더격차지수는 △건강과 생존 △경제 참여 기회 △교육적 성취 △정치적 권한 등의 분야에서 성별에 의해 발생하는 차이를 수치화한 것이다. 점차 개선되는 추세라고 하지만, 상당수의 통계자료가 보여주듯이 아직 우리 사회에는 여성에 대한 차별이 존재한다.
우리가 일상 속에서 무의식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말들은 이와 같은 불평등을 고착화하는 데 기여한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사회적 의사소통 연구 : 성차별적 언어 표현 사례조사 및 대안마련을 위한 연구>는 언어와 사고의 연관성에 주목했다. 언어에서 성차별이 지속되고 아동이 그런 성차별적 언어를 내면화하여 사고체계를 발달시키는 한, 성 역할 고정관념과 성차별적 사고가 영원히 이어질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이 연구는 3주간에 걸쳐 신문과 방송, 인터넷에서 성차별적 언어 표현의 사례 5087개를 수집·분석했다. 그 결과 ‘부모’나 ‘신사숙녀’ 등 남성을 표준으로 여성에 앞서 호명되는 단어가 33%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그 뒤를 이어 △‘엄마표 손맛’과 같이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강조하는 성차별적 이데올로기 포함 여성 관련 언어(17.6%) △‘가냘픈 외모’ 또는 ‘여우짓’ 등 여성의 특정 속성을 불필요하게 강조하는 언어(11.0%) △‘여배우’, ‘여의사’와 같이 여성임을 불필요하게 표현(10.2%)하는 순으로 집계됐다.
지난 7월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성인 남녀 103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45.4%가 성별과 관련된 차별적 표현을 직장이나 학교 등 사회생활 공간에서 가장 빈번하게 듣는다고 답했다. 현재까지 유행하고 있는 ‘김치녀’ 담론도 마찬가지다. 초기에는 이기적이고 사치스러운 일부 여성들을 지칭했지만, 현재는 한국 여성들 전체를 일컫는 것으로 확대 사용되고 있다. 이렇듯 여성에 대한 편견이 담긴 언어는 듣는 이에게 불쾌감을 줄 뿐만 아니라 여성을 향한 차별을 재생산하는 등의 사회적인 부작용까지 초래한다. 우리 학교 최문희 사회학과 교수는 “김치녀, 김여사 등의 담론들은 일차적으로 여성 혐오를 심화시켰다. 그러나 어떤 측면에서는 이에 대응할 수 있는 언어를 만들어냄으로써 대상에서 벗어나려는 여성들의 시도를 촉발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어머니가 가사일을 전담하는 상황이 담긴 시에 대해 한국 여성 민우회가 포스트잇을 붙이고 있다.
ⓒ한국 여성 민우회 제공


한편, 이런 말들에 대해 적극적으로 자신의 ‘불편함’을 표현하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지난 1일 한국여성민우회는 서울 홍대, 신촌 인근을 돌아다니며 성차별을 조장하는 광고 문구에 경고 문구를 부착하는 ‘포스트잇 거리액션’ 캠페인을 진행했다. 또한 인권네트워크 ‘사람들’ 성균관대 모임은 대성로에 대자보를 붙이고 학우들에게 재학 중 들은 불편한 발언들을 자유롭게 적어 붙이게 했다. 지난 12일에는 <그래도 되는 존재는 없다>라는 집담회를 주최해, 학우들이 자신이 겪었던 불쾌한 경험들을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다. 당시 집담회를 진행한 신민주(유동 13) 학우는 “수집된 발언들을 보면 그런 발언을 한 주체나 그 내용이 정말 다양하다.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여성 차별적 발언들을 고발하고자 했다”며, 또한 “대학 내 여성들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다”고 기획 의도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