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수중발굴과 허문녕 학예연구사

기자명 조연교 기자 (joyungyo@skkuw.com)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수중발굴과 허문녕 학예연구사(이하 학예사)는 전국에 단 7명밖에 없는 공식적인 수중문화재 발굴조사 전문가 중 한 명이다. 그래서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문화재 전시를 기획하는 보통의 학예사들보다 좀 더 특별하다. 직접 깊은 바닷속으로 잠수해 수중의 유물ㆍ유적을 발굴 조사하는, 학예사이자 고고학자이며 잠수부인 그에게 수중고고학의 생생한 현장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전에 육상고고학을 연구했다고 들었다. 육상고고학과 비교하여 수중고고학만이 가진 매력은 무엇인가.
수중고고학이 가진 가장 큰 매력은 바로 유물의 종류가 다양하다는 것이에요. 유기물의 경우, 육상에서는 산소에 노출돼 모두 썩어버리지만, 갯벌에서는 산소가 차단돼 본래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할 수 있죠. 예를 들어, 마도 3호선 발굴 당시 갯벌에 묻힌 생선뼈가 발견됐는데 생선뼈 사이에 살이 다 붙어 있었어요. 또 신안선에서는 후추랑 여지 씨가 나오고, 곡물을 운반했던 마도 1·2호선에서는 △보리 △쌀 △콩 같은 유기물들이 대량으로 발견됐죠.

마도 2호선의 수중 발굴조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제공

가장 기억에 남는 현장 에피소드가 있다면.
작년에 안산 대부도 2호선 발굴조사에 참여했어요. 매몰된 선체의 한 부분을 들어 올렸는데 동시에 갯벌이 갈라지더군요. 그 순간 감 내음이 확 풍겼죠. 그리고 갈라진 갯벌 사이로 불그스름한 감의 과육들이 가득 차 있던 걸 제 눈으로 직접 봤어요. 기다란 나무작대기도 같이 있었는데, 알고 보니 옛날에는 감나무 가지에 바로 감들을 꽂아 널어서 곶감을 만들어 먹었다고 하더라고요. 조상들이 널어 놓았던 곶감을 발견한 거죠. 육상에서는 썩어 버렸을 텐데, 오직 수중발굴에서만 볼 수 있는 놀라운 광경이었어요.

안산 대부도 2호선 발굴 당시 갈라진 갯벌 사이로 곶감 과육이 발견됐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제공

반면에 수중고고학자로서 고충도 있을 것 같다.
가장 큰 고충은 역시 위험하다는 것이에요. 우리나라의 수중발굴활동은 대부분 서해에서 진행되는데, 서해는 조류가 무척 세고 시야가 매우 나빠요. 조류가 셀 때는 들어가지 않고 잔잔해질 때까지 기다리면 되지만, 나쁜 시야는 수중발굴활동에 심각한 지장을 주죠. 서해는 두 눈앞에서 손을 휘저어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물이 탁하거든요. 손의 감각만을 이용해 보이지 않는 줄을 잡고 따라가야 하니 굉장히 긴장되죠. 또한, 잠수라는 게 한계 시간이 있어요. 한계 시간 동안 발굴을 끝내지 못하고 수면 위로 올라갔다 다시 내려오면 유물이 휩쓸려 내려가 없어지기도 하죠. 그러다 보니 무리해서 오랜 시간 잠수하는 경우가 다반사이고 결국엔 건강이 악화돼 일을 그만둬야 했던 사람들도 있었어요.

우리나라의 수중고고학이 세계적으로도 높은 수준을 자랑한다고 들었다.
수중고고학은 육상고고학과는 단위 자체가 다를 정도로 엄청난 비용이 드는 일이에요. 베트남이나 스리랑카 같은 나라들도 바다에 둘러싸여 있잖아요. 그들도 유적은 있는데 자금이 없다 보니까 우리나라와 공동작업을 하길 원하죠. 일본 같은 경우에는 자금도 있고 기술이 발달했으니 수중고고학 분야 또한 많이 발달해있을 것 같은데 생각보다 그렇지 못해요. 반대로 유적이 없는 거죠. 최근엔 가마쿠라 막부 당시 가미카제(신풍)로 침몰했다는 원나라의 배 두 척을 찾아내, 연구를 막 시작하는 단계예요. 그래서 연수 목적으로 수중고고학 연구활동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우리나라에 자주 방문하죠.

최근에는 수중발굴활동에 로봇과 같은 과학기술을 사용한다고 들었다.
사실 아직 로봇과 같은 과학기술로부터 발굴 조사에 실질적인 도움을 받고 있지는 않아요. 그런 기술이나 장비가 수중문화재 발굴조사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기존에 해양 관련 연구를 하던 전문가들이 사용하던 장비거든요. 그래서 지금은 장비들을 실험해보면서 수중발굴 활동에 적합하게 만들기 위해 개조 방법을 구상하는 단계라고 할 수 있어요. 수중무인잠수정과 같은 경우도 마찬가지예요. 프로펠러로 움직이는 일반 무인잠수정은 프로펠러가 돌아가는 순간 진흙 먼지가 일어나요. 가뜩이나 시야가 나쁜 서해에서 이용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거죠. 그래서 최근엔 프로펠러가 아니라 다리로 움직이는 가재 모양의 크랩스터라는 무인잠수정이 개발됐어요. 크랩스터는 진흙 먼지로 인한 시야의 방해가 적어 앞으로 발굴 조사에 적극적으로 활용할 생각이에요.

앞으로 수중고고학의 전망은 어떠한가.
사실 최근 들어서 수중고고학 연구가 세계적으로 매우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어요. 신생학문이다 보니 개척될 수 있는 영역이 많죠. 특히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서도 수중문화재 발굴사업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주고 있어서 ‘블루오션’이라 불리기도 해요. 물론 우리나라의 경우 서해에서의 작업이 워낙 어렵다 보니 다른 나라에 비해 수중고고학에 대한 접근성이 떨어질 수 있는데, 그래서 앞으로 홍보에 더욱 힘쓰고자 합니다. 학자들만이 보는 책이 아닌, 일반 대중이 즐겨 읽을 수 있도록 수중고고학을 쉽게 소개한 인문교양서를 제작하고 있어요. 우리나라의 수중고고학을 다룬 첫 번째 책이 되겠죠.

기사도우미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우리나라의 수중문화재 발굴·조사를 담당하는 유일한 기관이다. 1976년 전남 신안 앞바다에서 중세 무역선(신안선)이 발견되면서 보존 및 연구를 위해 가까운 목포에 설립했던 보존처리장이 점차 발전해, 2009년에 마침내 지금의 명칭을 얻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