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배우 김의성

기자명 장소현 기자 (ddloves@skkuw.com)

 

엔딩 크레딧이 오르고, 관객들은 하나같이 한 배우를 욕하기 바쁘다. 스크린 속 매서운 눈빛과 거침없는 악행으로 관객을 긴장시키며 누구보다 맛깔나게 악역을 소화하는 배우. 하지만 알고 보면 촬영 중간중간 팬들을 위한 인터넷 수다의 장을 손수 마련하여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게 즐겁다는 프로 네티즌.
영화 흥행 시 '명존쎄’(명치를 세게 때리고 싶다는 뜻의 은어)를 맞겠다는 공약을 SNS상에 내세워 위기를 느낀 적도 있지만 여전히 온라인상의 수다를 즐기고 악역에 중독된 배우 김의성 씨를 만났다.

사진 | 김수현 기자 skrtn1122@

연기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대학교 때 연극반을 하면서 연기를 시작하게 됐어요. 제가 80년대에 대학을 들어갔는데 당시 사회 분위기가 대학생이라면 운동권 활동을 하는 게 당연한 것처럼 여겨졌던 시기에요. 제가 다녔던 대학의 연극반이 정치 성향이 강했어요. 저는 사회에 대한 불만은 많지만 겁이 많고 육체적으로도 약해서 연기를 학생 운동의 한 부분으로 삼았던 거죠. 육체적으로 힘들지도 않고 재미도 있으면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할 수도 있고.
대학을 졸업할 무렵 사상적으로 혼란감도 느끼고 인생에 대한 회의감이 많이 들었어요. 취직할 나이가 되어서도 회사에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은 안 들었어요. 어릴 적 연기자로의 꿈을 전혀 꾸지 않았는데 그동안 해왔던 연극에서의 연기가 즐거웠고 나한테 잘 맞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이걸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하자는 결심에 연극배우부터 시작했어요.

2000년, 돌연 연기자로서의 생활을 그만두었는데 그 이유는.
연기자로서 평생을 살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했어요. 연기자는 ‘수동적’이라는 직업의 특성이 있어요. 남이 불러줘야 연기를 할 수 있고 찍으면 찍히는 그런 수동성이 있는 거죠. 연기자로서 일정 궤도 이상을 넘으면 그나마 작품을 선택할 수 있는 능동성은 가질 수 있지만 그게 아니라면 누군가 나를 캐스팅 해주기를 끊임없이 기다려야 해요. 그렇게 끊임없는 기다림 속에서 나이가 들어가는 몇몇 선배 연기자들을 보면서 나는 이 정도 연기로 밥 벌어먹고는 살 수 있나 하는 생각에 계속 자신감이 떨어졌어요. 그래서 그만둔 거죠.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었는데 왜 그랬나 모르겠어요. 그냥 도망쳤던 거죠.

연기를 포기한 것에 대해 후회는 않나.
그래도 후회는 안 남아요. 연기라는 게 제 인생에서 완전히 끝났다고 생각해서 10년 정도는 미련을 아예 안 가지고 살았어요. 아쉬운 점이 있다면 제가 서른다섯 살부터 마흔다섯 살까지 연기를 안 한 거잖아요. 남자배우로서는 그 시기가 가장 황금 시기인데 그 시기에 연기자로서의 삶을 살지 못한 거니까 속상하기는 하죠. 그때 할 수 있는 배역이랑 지금 할 수 있는 배역이 다르니까. 그래도 세상일은 안 좋은 것 안에 좋은 게 있고 좋은 것 안에 나쁜 게 있고 그런 것 같아요. 배우 입장에서 보면 그 십년이 허송세월을 한 거지만 그 시기가 저에게 준 게 정말 많아요. 그 십년이 없었으면 지금 이렇게 행복감을 느낄 수 있을까, 더 나이 먹어서까지 배우를 할 힘을 가질 수 있었을까. 오히려 또 다른 일로 포기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죠.

어떻게 연기를 다시 시작하게 됐나.
살다 보면 중요한 결정을 쉽게 하는 시기가 있는 것 같아요. 저는 그게 2010년에서 2011년으로 넘어가는 겨울이었어요. 결정적인 이유는 아버지 때문인데, 그해 아버지가 암으로 6개월 정도 투병을 하시다가 돌아가셨어요. 마지막 3주 정도는 침대에서 꼼짝도 못 하셨죠. 아버지는 어릴 때부터 저에 대한 기대가 크셨어요. 자신의 삶에서 부족한 부분을 저를 통해 채우고자 하신 거죠. 그래서 아버지랑 굉장히 많이 싸웠어요.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몇 달 동안 제가 아버지를 간호했는데 그때 아버지가 죽음을 대하는 용감함, 이런 좋은 모습을 많이 보면서 아버지와 화해를 했어요. 어느 날 목소리에 기운이 하나도 없고 침대에 누워서 아버지가 저를 부르셔서는 저한테 그러시는 거예요. “야, 재밌게 살아라.” 맨날 공부해라, 데모하지 마라 이런 소리만 하시던 분 입에서 나오리라 상상 못 했던 말을 하신 거예요. 그리고 그다음 날 돌아가셨어요. 그게 아버지 유언이었던 거죠. 아버지 장례식장에 앉아서 생각하다가 연기를 다시 해야겠다고 결정했어요.

최근 다수의 영화와 드라마에 등장했다. 본인만의 작품 선정 기준이 있나.
세 가지 정도의 기준이 있는데 그 세 가지의 비중 차이는 거의 없어요. 첫째는 돈이에요. 돈이라는 건 내가 생활할 수 있게 만들어주기 때문에 중요하죠. 또한 내가 얼마를 받느냐는 상대가 나를 얼마나 존중하느냐와 거의 일치해요. 물론 내가 절대적으로 얼마를 받아야 한다는 건 아니에요. 작품의 크기에 따라 다를 수 있죠.
두 번째는 대본, 시나리오에요. 시나리오 전체도 중요하지만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제가 맡을 캐릭터에요. 캐릭터란 배우로서의 내가 작품을 끌고 가는 요소이고 내가 어떻게 이 일에 참여할까를 정하는 첫 번째 전략이기 때문에 그 캐릭터가 어떤가가 작품을 결정하는 중요한 기준이 되죠.
세 번째는 지금 나에게 이 작품이 어떤 의미를 가지느냐 에요. 제 커리어와 관련된 거죠. 저는 공백기가 있었고 다시 연기를 시작했기 때문에 나이는 많지만 아직 신인배우라서 커리어를 잘 쌓아가야 하는 시기에요. 그래서 이 작품이 지금의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고 나에게 어떤 길을 제공할 건가 하는 고민을 많이 하죠. 이 세 가지가 저에게 중요한 조건인데 물론 어떤 감독과 어떤 배우와 함께 일하느냐도 중요하죠.

최근 작품에서 악역을 주로 맡았다. 악역을 연기하는 데 힘든 점은.
사람은 자기 안에 수많은 얼굴들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 영향력이 얼마나 크고 작은가의 차이인 거죠. 어떨 때는 불의를 못 참는 용감한 사람이다가도 어떨 때는 일기장에도 못 쓸 정도로 비겁할 때가 있잖아요. 내 안의 얼굴 중 어떨 때는 좋은 모습이 나오기도 하고 어떨 때는 나쁜 모습이 나오는 건데 그냥 우리는 이럴 때는 이런 사람이야 하고 생각해버리고 믿어버리잖아요. 연기도 그렇게 믿으면 되는 거예요. 이 상황에서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그렇게 생각하면 대부분 배역은 이해가 돼요. 대신 나랑 완벽히 똑같은 사람은 아니니까 그 배역의 작은 습관, 특이한 특징, 기이한 행동 등에 집중하는 편이에요.

SNS 활동이 무척 활발하다. 공개적으로 글을 쓰는 게 조심스럽지는 않나.
조심스럽고 조심하는 편이에요. 사람이 어쩔 수 없는 게 조금씩 잃을 게 많아지니까 조금씩 더 조심하게 돼요. 예전에는 SNS에 거친 말을 많이 썼어요. 그런 걸 보고 몇몇은 시원하다, 멋있다 그런 얘기를 하기도 했었는데 돌이켜 보니까 절대 그런 게 아니더라고요. 일부 사람들의 기분을 좋게 할 수는 있지만 사회를 바꾸는 데는 하나도 도움이 안 되는 것 같았어요. 좋은 움직임을 하는 건 좋은데 독한 말을 한다고 해서 좋은 건 아닌 것 같아요. 그래서 가능한 한 말은 순하게, 행동은 정확하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그래서 요즘은 재미없다는 반응이 많더라고요. (웃음)

앞으로 배우로서의 목표는.
지금 꼭 하고 싶은 배역이 따로 있진 않아요. 사실 지금까지 별거를 다 했거든요. 만화 속에 나오는 살인범도 했는데 그 정도면 많이 했죠. 어떤 역할이든 있으면 재밌게 하겠다는 생각이에요. 특별히 있다면 유머러스하고 말을 많이 하는 그런 역할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 대중에게는 이상한 배우로 계속 기억됐으면 좋겠어요. 사람들이 저에게 익숙해지지 않고 이 역할의 이 배우가 저 역할의 저 배우와 같은 사람이었나 하고 자연스럽게 연결되지 않는 그런 배우가 되고 싶어요.

드라마 '더블유' 캡쳐


영화 '부산행' 캡쳐

영화 '부산행' 캡쳐

영화 '소수의견' 캡쳐

영화 '부산행' 캡쳐

영화 '관상' 캡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