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박희철 기자 (wheel21@skkuw.com)

 거북이의 꾸준함을 칭찬하지 않고 토끼의 게으름을 비난하는 사회. 우리는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정신없이 하루를 보내다 보니 어느 순간 놓치며 잃어버린 것들도 있다. 관계도 그중 하나다. 원하지 않았더라도 언젠가 자신이 가장 중요해지고 타인의 삶은 방목하게 되었다. 하지만 잊어버린 중요한 사실 하나를 떠올려보자. 우리 모두는 혼자서는 살 수 없다. 세상은 나 혼자 살아가는 공간이 아니다. 사람들은 길에서 스쳐가는 것이 아니라 마주 보고 바라보는 존재다. 봉사를 다룬 이번 특집에서 나는 식상할 정도로 당연한 ‘사람의 관계’가 지닌 중요성을 새삼 알게 되었다. “손을 잡아 본 경험이 있어야 손을 내밀 수도 있다” 인터뷰 중 들은 이 말은 오랫동안 내 안에 복잡하게 머물렀다. 드라마에서 기억상실증에 걸린 주인공이 기억을 찾은 순간 느낀 혼돈과 유사하다. 온전한 자신이 아니었을 때 잊고 있었던 사람들에 대한 회한이다.
뉴스에서 전하는 안타까운 소식 중, 유독 슬픈 내용은 외롭게 떠난 사람들의 존재다. 그들의 손을 한 번이라도 잡아줬다면 함께일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봉사의 의미는 여기에 있다. 손을 잡아줬기 때문에 손을 내밀 수 있고, 내 손을 잡아 준 누군가는 다시 다른 사람에게 손을 내밀 수 있다. 우리는 함께 더불어 살아야 한다.
성대신문의 의미도 함께할 때 생긴다. 성대신문이 존재하는 것은 신문을 읽는 독자 덕분이다. 사진부 기자인 나는 사람들의 ‘공감’이 있기에 모모이를 쓸 수 있다. 공감을 말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각자 다른 삶을 살지라도 ‘함께’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는 성대신문 내부에서도 마찬가지다. 한 부서만으로는 성대신문을 채울 수 없어 여러 부서가 있다. 그러나 동시에 한 부서라도 없으면 성대신문은 완성되지 않는다.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성대신문의 모든 기자는 소중하다. 하나는 손을 잡아 둘이 되기 위해 존재한다. 성대신문을 함께 하는 기자와 독자에게 감사함을 전한다. 
누군가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다독여줬던 경험은 언제가 마지막일까? 곰곰이 생각해봐도 떠오르지 않는 것은 내가 힘들 때 섣불리 다른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 수 없는 이유다. 당연하게 느껴 습관이 된 외로움을 이제 외면해야겠다. 어차피 우리 모두는 더불어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따뜻한 즐거움을 위해 이제는 먼저 손을 내밀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