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학생입니다, 그리고 나는 엄마입니다
나는 학생입니다, 그리고 나는 엄마입니다
  • 홍정아 차장
  • 승인 2016.10.10 17:18
  • 호수 16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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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0시경의 서울시 성북구 정릉동의 한 골목길,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만이 길을 가득 채울 정도로 한산하다. 근처 중학교에서 흘러나오는 수업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에 그 적막이 잠시 깨진다. 그 종소리가 닿는 또 다른 학교, 종은 울리지 않지만 여기서도 한창 수업이 이루어지는 중이다. 이곳의 수업시간은 일반 학교와는 약간 다르다. 복도에 쭉 늘어선 5~6개의 교실 각각에는 학생들이 한 명씩 개별수업을 받고 있다. 아이들이 학습을 중단한 시기가 제각각이라 한 번에 모아서 수업을 진행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뛰어다니면 안 돼. 그러다 넘어질라.” 웃음이 넘치는 해맑은 얼굴로 학교 안을 뛰어다니는 아기도 이 학교만의 특별한 모습이다. 이곳은 바로 청소년 미혼모와 학교밖 여성 청소년들의 학습권과 양육권을 되찾아주기 위한 ‘자오나학교’다.

수도원의 전경. 3층에 자오나학교가 자리 잡고 있다.

아이들의 집이 된 학교
‘원죄없으신 마리아교육선교수녀회’에서 운영하는 주거·생활형 대안학교인 자오나학교는 2014년 10월에 그 문을 열었다. 이곳은 본래 30년 동안 지방에서 올라온 여대생을 위한 기숙사로 쓰였다. 초기에는 학생들과 여러 활동을 진행해보고자 했지만, 점점 빡빡해지는 대학생들의 일과로 인해 더는 잠을 자는 숙소 이외의 기능을 하지 못했다. 좀 더 활력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던 강명옥 교장 수녀는 사회에서 정말 아프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누구일까 생각해보았다. 그렇게 내린 답이 바로 청소년 미혼모였다. 학업에서 단절되었을 뿐 아니라 아기까지 양육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 이후 이곳은 청소년 미혼모와 학교밖 여성 청소년들을 위한 학교가 되었다. 일차 대상은 청소년 미혼모뿐 이었지만, 학교 부적응이나 학교·가정폭력 등에 노출된 학교밖 여성 청소년에 대한 예방교육도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여대생들에게 편안한 잠자리를 제공하던 곳은 이렇게 도움이 절실한 소녀들의 따뜻한 ‘집’이 되었다. 이제 아이들은 친구와 통화하다가 “이번 주에는 그냥 집에 있을 거야”라며 자연스럽게 이곳을 집이라 칭한다.
2007년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의 ‘청소년 미혼모의 교육권 보장 실태조사’에 따르면 미혼모시설에 거주하고 있는 19세 이하 미혼모 63명 중 71.4%가 임신 당시 이미 학업을 중단한 상태였다. 그중 87.6%는 △공부를 하고 싶어서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학력에 대한 사회적 인식 때문에 학업을 지속하고 싶어 했다. 인권위는 “헌법과 교육기본법은 누구나 신체적 조건 등을 이유로 교육에서 차별받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어 임신을 이유로 자퇴를 종용하는 것은 명백한 학습권 침해”라고 판단했다. 또한 청소년 미혼모 문제를 외면함으로써 이들의 학업이 중단되고 그로 인해 취업의 어려움, 아동 빈곤 등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생긴다고 지적했다.
지난 5월 자오나학교가 열었던 토크콘서트에서 한국여성재단의 이숙진 상임이사는 “‘결혼을 정산이라 생각하는 편견’, ‘특정 연령 안에서 자녀를 출산해야 한다는 편견’, ‘자기 몸을 지키지 못한 청소년’라는 사회의 통념들이 청소년 미혼모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다”고 말했다. 힘들어도 내 아이를 키우겠다는 책임감을 지닌 소녀들, 자오나학교는 그들의 어깨를 짓누르는 짐을 덜어주고 싶었다.

“누가 나 때문에 우는 건 처음이에요.”
그렇게 ‘오늘 밤은 어디서 보내고 먹을 것은 어디서 찾아야 하지’라는 걱정과 불안에서 벗어난 아이들은 책을 엶과 동시에 자신을 열기 시작했다. 몸을 뉘일 따뜻한 보금자리뿐 아니라 지친 마음을 뉘일 따뜻한 사람들이 생겼기 때문이다.
어느 날 자오나학교의 중요한 생활수칙을 어겼던 유승민(18·가명) 씨는 선생님들에게 크게 혼이 났다. 다음 날 아침, 승민 씨를 깨우러 갔던 강 수녀는 다리에 힘이 풀려 그만 주저앉고 말았다. 승민 씨 몸에 언뜻 보이는 검붉은 상처를 보았기 때문이다. 그 상처는 지난밤, 속상하고 답답한 마음이 자신을 향해 표출된 것이었다. 펑펑 우는 강 수녀의 모습을 본 승민 씨는 처음으로 눈물을 보였다고 한다. “누가 나 때문에 우는 건 처음이에요.” 그녀는 무서운 얼굴로 자신을 혼내기만 하는 어른들만 보다가 누군가가 자신의 행동 때문에 우는 건 처음이었다며 나중에서야 함께 눈물을 흘린 이유를 말했다. ‘나를 걱정해서 그러는 건가?’ 이런 생각이 든 승민 씨는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았고, 공부를 시작했다. 그 결과 지난 4월 중등검정고시와 같은 해 고등검정고시까지 한 번에 통과했다.

생활하며 배우는 곳
“댄스 수업 넣어주세요! 운동해야 할 것 같은데 혼자서는 힘들어요.” 이처럼 자오나학교의 시간표에는 아이들의 요구가 가득 담겨있다. 배우고 싶은 것을 아무리 물어도 묵묵부답이던 아이들이, 이제는 적극적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강 수녀는 “자신에게 소중한 것을 챙기기 시작한 아이들을 보며 그들이 점점 자존감을 회복하고 있음을 느낀다”며 웃었다.
또한 아기를 키워본 어머니로 이루어진 자원봉사자들이 △기저귀 가는 법 △아기 안는 법 △젖 먹이는 법 등의 양육수업을 돕는다. 아기 아빠가 생각난다며 아기의 눈도 제대로 마주하지 못했던 어린 엄마들은 수업을 통해 다정하게 아이의 눈을 보고 말을 걸 수 있게 됐다. 특히 자오나학교의 양육 수업은 아기를 키우기 위한 것만이 아니라 아이들에 대한 양육까지 포함한다. 아이들 역시 제대로 된 양육을 경험하지 못한 상황에서 자랐기 때문이다. 처음에 아이들은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고 자는 것을 정말 힘들어했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성질을 내며 나가 버리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규칙적인 식사를 하지 못해 영양상태도 매우 좋지 않았다. 강 수녀는 “처음에는 학업만 이어나갈 수 있게 해주면 아이들이 사회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알고 보니 그동안 잃어버렸던 삶의 리듬을 먼저 찾아줘야 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피자나 햄버거 같은 인스턴트식품만 찾던 아이들은 하루 세 번 정성스레 차려지는 밥과 국에 익숙해졌다.

아기들과 함께 양육수업을 받고 있다.
 ⓒ자오나학교 제공

아이들이 난타를 연습하는 장면이다. 열심히 연습하여 자오나학교 1주년 행사에서 멋진 난타공연을 선보였다.
 ⓒ자오나학교 제공

내일을 꿈꾸는 오늘
자오나학교는 아이들이 사회로 나가 소중한 꿈을 실현하기 위한 준비도 함께 한다. “꿈이 왜 필요해요? 내일 일도 모르는데”라던 아이들은, 이제 하나씩 각자의 꿈이 생겼다. 22개월 된 아기 엄마 김수영(19·가명) 씨는 고등검정고시를 통과하고 본격적으로 진로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미용을 하고 싶어 했던 그녀는 미용 학원에 다니며 꿈을 키워나갔다. 그런 노력 끝에 수영 씨는 미용 분야 1급 자격증까지 취득했고, 미용 강사가 되고 싶다는 구체적인 꿈이 생겨 대학 진학을 희망했다. 현재 수영 씨는 서울 소재 대학의 미용학과에 합격했으며, 내년에 신입생이 될 예정이다. 이처럼 자오나학교는 꿈을 향해 나아가는 아이들의 힘찬 걸음을 돕고 있다. 졸업하고 자오나학교의 후원자가 되겠다는 또 다른 꿈은 아이들의 동력원이다.
또한 자오나학교는 진로교육의 하나로 아이들이 경제활동을 경험할 수 있는 카페를 준비 중이다. 단국대학교 인액터스 ‘라오나 프로젝트’ 팀과 함께 준비 중인 이 카페는 아이들을 닮은 새싹을 모티브로 하여, 정원 느낌의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이 될 예정이다. 카페에는 아이들의 이야기도 함께 담아내고자 한다. 카페의 콘셉트와 판매상품을 정하는 것에도 아이들의 의견이 많이 반영됐다.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황선우 씨는 “작은 것 하나에도 고마워하고 적극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내는 아이들의 모습이 참 좋았다”고 말했다.
강 수녀는 이곳이 아이들에게 따뜻한 공간이 될 수 있고 나가서라도 언제든 다시 찾을 수 있는 친정이 됐으면 한다고 말한다. 어려움에 부닥쳤을 때 도움을 청할 누군가가 있어야만 스스로 설 수 있다는 것이다. 강 수녀는 “옛날에는 가정 안에서 돌봄과 교육의 절반 이상이 이루어졌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며 “이제는 마을과 사회, 국가가 부모의 역할을 함께 해 주어야 한다”고 했다. 자오나학교의 선생님과 아이들의 공통된 소망은 아이들이 졸업할 때쯤에는 평범한 사회의 일원으로 자리 잡는 것이다. 편견을 딛고 일어나 사회의 당당한 구성원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삶, 그 평범한 삶을 함께 응원하고 싶다.

개울장에서 아이들이 만든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자오나학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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