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살리는 일, 곧 인간을 살리는 길이죠”
“나무를 살리는 일, 곧 인간을 살리는 길이죠”
  • 조연교 기자
  • 승인 2016.11.08 02:36
  • 호수 16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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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과캠 만남 - 이창하(조경 84) 동문

 

ⓒ이창하 동문 제공
사람 사이엔 고요함이 어색하기 마련이지만 나무는 사람의 이야기를 묵묵히 들어주고 고요함으로 답한다. 침묵은 때로 진심어린 조언보다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나무 의사 이창하(조경 84) 동문은 나무에 대한 사랑과 존경으로 마침내 자타공인 수목보호 분야의 전문가가 되었다. 
정직한 땀방울로 일궈낸 그의 인생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고요함이 주는 울림을 느껴보자.

시골 소년, 친숙한 것이 좋아
“어린 시절을 떠올리니 문득 할미꽃이 생각나요. 지천으로 할미꽃이 참 많았었죠.” 경북 안동 출신인 이 동문은 말 그대로 시골 토박이였다. “산에서 삼촌들과 토끼몰이도 하고 낙동강 강변에서도 자주 놀았어요.” 어디를 둘러봐도 푸른 자연은 한결같은 모습으로 그 자리에 있었다. “어릴 적 꿈은 많은 나무를 키우는 농장주가 되는 것이었죠.” 나무가 무럭무럭 자라듯 순수한 꿈을 간직한 시골 소년도 어느덧 대학 진학을 앞둔 청년으로 성장했다.
“부모님께선 취업을 고려해 공대 진학을 권유하셨죠. 하지만 제 성격상 아무래도 쇠나 돌보다는 꽃과 나무가 더 끌리더라고요. 그래서 이를 다룰 수 있는 조경학과에 진학하기로 했죠.” 그는 자신의 관심사와 근접한 전공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그래야만 공부를 하면서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을 수 있거든요.” 더불어 단순히 좋아하는 분야를 선택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안에서도 남들보다 열심히 노력하는 게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그러다 보면 부와 명예, 그리고 삶의 보람까지도 자연히 따라온다고 생각해요.”
순박한 시골 소년은 대학에 진학할 무렵 정들었던 고향을 떠나 도시로 향했다. “처음으로 서울 같은 큰 도시에 가보니 이상한 기분이 들었어요. 높은 건물이 들어선 낯선 풍경을 보며 나와는 맞지 않는 곳이라고 느꼈나 봐요.” 다행히 수원에 위치한 자과캠은 그가 생활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지금은 학교 안팎으로 건물이 가득하더라고요. 제가 다니던 시절에는 시골 같은 분위기였죠. 학교 밖은 논밭이었고 안으로는 나무와 잔디밭이 펼쳐져 있었어요.”

기쁨과 슬픔 모두 자연과 함께 나누다
“사실 1학년 땐 마냥 놀았어요. 서울로 고궁 구경도 가고 친구 고향에도 놀러 가고, 여행을 자주 다녔죠.” 이 동문은 후배들에게도 여행을 많이 다녀 볼 것을 권유하고 싶다며 특히 산으로 떠나는 여행을 추천했다. “높은 산 위로 올라가 아래를 내려다보면, 사람 사는 게 참 별거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눈앞에 닥치는 일을 해결하는 데만 급급해 산 아래에 있을 때는 모르고 살았던 많은 것들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죠. 편협한 시각으로 살아온 나 자신을 돌이켜 보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높은 차원의 논의도 할 수 있을 거예요.” 이 동문에게 대학 시절은 인생 ‘가장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있다. 특히 그 시절을 함께 했던 조경학과 동기들과의 각별한 사이는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84학번 동기들끼리 굉장히 끈끈해서 지금까지도 서로 생일을 축하해주고 1년에 한 번씩은 꼭 만나고 있죠.”
컴퓨터가 보급되기 시작하던 1991년, 이 동문은 우리 학교 대학원 토지정보시스템 학과에 진학했다. 컴퓨터를 사용해 적지 분석을 하는 조경학의 심화 전공이었다. 컴퓨터엔 문외한이었지만 그는 지금 아니면 이 분야에 대해 공부해 볼 수 없을 거란 생각에 담대한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기초 없이 심화 수업을 따라가는 건 너무 벅찬 일이었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쓴웃음이 나요. 간신히 졸업은 했지만 말도 못하게 고생했죠. 대학 시절이 아름답고 행복했던 시간이라면, 대학원 3년간은 정말 악몽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학업 스트레스로 인해 유난히 지치고 힘든 날이면 그는 숲으로 향했다.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종종 눈물을 쏟아 내기도 했다. “보통은 홀로 숲속에 앉아 명상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너무 힘든 날에는 울기도 했어요. 말없이 제 얘기를 들어주는 숲으로부터 위안을 얻고 치유 받았다고 말하고 싶어요.” 이 동문은 이처럼 자연 속에서 웃고 울며 한층 더 강직한 청년으로 성장했다.

‘절실하게’ 그리고 ‘꾸준하게’
졸업 후 이 동문은 대기업 임업 설계팀에 입사했다. 야근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던 중, 울산대공원 조성사업이 진행된다는 소식을 들은 그는 이 프로젝트에 자원하기로 했다. “조경부터 건축, 통신 등 각종 기술이 한데 모이는 대공원 조성사업에 참여하면 여러 분야를 동시에 경험해 볼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5년간 조성사업에 참여한 뒤 그는 회사를 나와 공기업인 울산시설공단으로 이직했다. 바쁘고 복잡한 서울 생활보다 쾌적하고 조용한 울산 생활이 더 좋기도 했을뿐더러, 시설공단이 대공원사업을 위탁받을 경우 훗날 대공원 관리에도 참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울산시설공단으로 이직한 이후 이 동문은 가로수관리팀에서만 13년이라는 긴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얼떨결에 맡게 된 가로수 관리는 단순한 조경학 지식을 넘어 생육관리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과 실무능력이 있어야 하는 업무였다. “경관을 아름답게 꾸미는 것이 주된 목적인 조경학 지식만으론 가로수 하나하나를 보호하고 치료하는 업무를 수행하는데 부족함이 많았죠. 그래서 혼자 공부를 하기 시작했어요.”
그의 인생에서 가장 열정적인 순간은 이렇게 20대도, 30대도 아닌 40대에 찾아왔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묵묵히 자신의 옆자리를 지켜줬던 나무에게 비로소 무언가 베풀 수 있단 사실은 그가 다시 책을 펴는 원동력이 되기에 충분했다. “퇴근하고 저녁을 먹은 다음 도서관에 갔어요. 그리곤 밤 11시가 돼서야 집으로 돌아왔죠. 이걸 4년 동안 매일같이 했어요.” 삼림학이나 식물학의 전문 지식을 독학으로 깨우치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으나, 그는 포기하지 않고 직장 생활과 공부를 병행해 나갔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선 절실히 노력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과목마다 책을 최소 10번씩 정독하는 노력 끝에 이 동문은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식물 보호 관련 자격증을 모두 취득해 냈다. △문화재 수리 기술자(식물 보호) △수목보호 기술사 △식물 보호 산업기사에 이어 △나무 의사 자격증까지 취득했다. 그가 나무 의사 시험에 합격했을 당시, 전국에 나무 의사 타이틀을 보유한 자는 단 8명뿐이었다. “자격증을 하나씩 취득할 때마다 엄청난 성취감을 느낄 수 있었어요.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생겼고 부모님께도 좋은 소식을 들려드릴 수 있어 뿌듯했죠.”

강풍을 맞으면 쉽게 찢기는 약한 줄기를 치료하기 위해 상처의 폭을 재고 있다.
ⓒ이창하 동문 제공

식지 않는 열정으로 새로운 꿈을 꾸다
그는 5년 후엔 직장을 그만두고 고향에 돌아가 나무 병원을 개원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일터 내 나무뿐만 아니라 전국 각지의 *노거수를 보호하고 치료하는 데 힘쓰고자 하는 바람에서였다. “나무는 사람처럼 어디가 아프다고 말할 수 없으니 나무마다 딱 맞는 처방을 내리기가 결코 쉽지 않아요. 하지만 죽어가던 나무가 치료를 받고 마침내 활기를 되찾았을 때, 말로 표현할 수 없이 커다란 보람을 느끼죠.” 어느덧 50대가 된 이 동문이지만, 그는 노거수를 부를 때 존칭을 사용한다. “그분들 앞에 서면 한없이 존경스럽고 때로는 경외심이 들어요.” 노거수 한 그루는 수백 년 동안 인간을 위해 아무런 조건 없이 무한한 혜택을 베풀어 준 소중한 존재이다. “그러니 나무를 살리는 일은 곧 사람을 살리는 길이 아니겠습니까?”
이 동문은 아직 못 이룬 꿈이 한 가지 남아있다고 말했다. “일본 나무 의사 자격증을 따고 싶어요. 시험을 치르기 위해 일본어를 한창 공부했었죠. 지금은 잠시 쉬고 있지만, 아직 포기한 것은 아녜요.” 그는 수목보호 분야가 발달한 일본과 활발한 교류가 이뤄질 수 있도록 양국 나무 의사들을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하고 싶다고 전했다. “일본 나무 의사들과 친분이 있어 그들이 우리나라 노거수에 관심을 갖고 찾아올 때마다 제가 안내해주곤 해요.” 그는 실제로 오사카 나무 의사 협회에 특별회원으로 등록돼있다.
어떤 풍파에도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나무로부터 삶을 살아가는 자세를 배운 그는 무엇하나 노력하지 않고 얻은 것이 없다. 그렇기에 그가 이뤄낸 결실들은 유난히 찬란한 빛을 발하고 있다.

우리가 상처 난 부위에 연고를 바르듯 나무 치료 시에도 보호제를 사용하고 있다.
ⓒ이창하 동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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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거수=나이가 많고 커다란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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