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의 쇼핑카트에 젤리가 가득 담기기를 바라요”
“사람들의 쇼핑카트에 젤리가 가득 담기기를 바라요”
  • 문관우 기자
  • 승인 2016.11.08 02:43
  • 호수 16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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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캠 만남 - 손옥윤(무역 87) 동문

 

 

손옥윤(무역 87) 동문은 자신만의 ‘젤리’ 무역회사를 창업하여 10년 만에 매출 250억 원의 규모로 성장시킨 CEO이다.
하지만 지금의 성공을 거두기까지 IMF를 비롯한 인생의 우여곡절을 여러 번 겪었다고 한다.
이제는 명실상부 대한민국의 ‘젤리왕’이라 불러도 좋을 그의 파란만장한 인생 이야기를 들어봤다.

‘학사경고’ 아찔했던 열등생 시절
손 동문은 어렸을 적 부모님께서 김치 장사를 한 것을 보고 자라면서 ‘나도 장사를 해서 돈을 벌고 싶다’라고 생각했다. 학창시절 공부를 잘하지 못했던 그는 재수해서 우리 학교 무역학과에 입학했다. “장사를 배워볼까 했던 어렸을 적 생각이 국제적인 무역을 통해서 돈을 벌고 싶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던 것 같아요.” 그가 입학했던 87년도는 민주화 열풍으로 학생들이 공부를 하는 것보다는 민주화 운동에 동참하는 분위기가 강했다. 손 동문도 예외는 아니었지만, 친구들보다 성적이 훨씬 낮았다. “심지어 4.5만점에 2.0 이하로 학사경고를 받아본 적도 있어요.”
하지만 성적이 낮은 그의 대학생활이 마냥 의미 없게 흘러간 것은 아니었다. 2학년 때는 동대부고 출신의 우리 학교 동문회장을 맡게 된 것이다. 손 동문은 동문회에 얽힌 추억이 많은 듯했다. “우리 동문회는 연말에 카니발이라는 행사를 했는데, 매년 적자가 컸어요. 그래서 그 카니발 행사비용을 채우기 위해 졸업 선배들을 찾아가서 손을 벌리곤 했죠.” 손 동문은 회장은 졸업생, 부회장은 재학생을 집중 공략하도록 역할을 나누었고, 그 결과 졸업생이 예년보다 훨씬 많이 참석하면서 흑자 재정을 만들었다. “다른 방법도 있었어요. 카니발 행사 중 게임에서 이기면 금 한 돈을 주겠다는 이벤트를 했는데, 사실 그 안에는 값싼 머리핀이 들어있었어요. 그런데 선배들은 그걸 모르고 금 한 돈 받았다며 신나서 기부금을 더 냈어요. 재밌으라고 한 일종의 이벤트였죠.” 손 동문은 이렇듯 대학 시절 즐거운 추억을 만들 수 있었던 동문회장으로서의 활동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학점’ 대신 ‘영어’, 한 마리 토끼라도 잡아야지
손 동문은 군대를 다녀온 뒤, 3.0도 되지 않는 자신의 학점을 보고 현실을 체감했다. 워낙 1, 2학년 때 공부를 소홀히 한 탓이었다. 당시에는 졸업 시 학점이 3.0 이상이어야 대기업에 추천서를 받을 수 있었는데, 손 동문은 남은 학기 동안 공부를 열심히 하더라도 3.0을 넘길 자신이 없었다. “무역학과를 나오면 영어라도 잘해야겠다 싶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학점과 영어 두 마리 토끼를 잡기엔 무리였고, 결국 학점을 챙기는 대신 영어를 공부하기로 했죠.” 오직 영어에만 매진하겠다는 결심 후에, 그는 영문학과 강의만 신청해서 수강했다. “이름까지 기억나요. 당시 영문과 교수였던 맥퍼슨, 홀스타인 교수에게 성적 향상으로 칭찬을 많이 받았어요.” 영어를 공부하는 데 최선을 다했던 그는 ‘타임지 해석반’에 들어가기도 했다. 또한 그는 고등학교 3학년 학생에게 영문법 과외를 하며 돈을 벌었다. 과외를 통해 세 군데에서 150만 원을 번 그는 그 돈을 외국인에게 영어 과외 값으로 지급했다. “그 과외비를 다 주는 대신 온종일, 심지어 밥 먹을 때도 붙어 있어 달라고 할 정도였어요. 그 당시 제 하루 일과는, 영문학과 수업을 듣고 나서 저녁 7시에 외국어 학원에서 프리토킹하고, 끝나면 옆의 다른 외국어 학원을 가서 공부하는, 말 그대로 ‘하루 종일’ 영어공부였어요.” 그는 영어공부를 하는 1년 간 한국말을 거의 쓰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평소에도 커다란 헤드폰을 끼고 다니며 영어 청취를 하고 다녔을 정도니 말이다. 심지어 후배들은 아직도 그를 ‘헤드폰 선배’로 기억한다고. 이때 익힌 영어 실력으로 그는 지금도 해외 제조사들을 만날 때 무리 없이 영어로 소통한다.
이처럼 영어 공부에 집중하면서 학점을 관리하지 못했던 그는 결국 학점 미흡으로 대기업에 입사할 수 있는 추천장을 받지 못했다. “그 당시 무역학과를 나오면 대기업이나 금융회사에 입사하는 게 일반적이었어요. 왜냐면 일반 무역회사보다 급여가 3배 이상 높았거든요.” 그렇게 그는 무역회사를 찾을 수밖에 없었고, 그중 학점 제한이 없는 미원통상 무역사업본부에 입사하게 됐다.

“수입상품개발만 23년째 하고 있죠”
손 동문은 미원통상에 입사한 해에 수입개발부서로 발령받았다. “저는 영어를 잘하니까 수출 부서를 희망했는데, 뜻밖에도 수입개발부서에 들어갔어요. 이 일이 현재 제가 하는 일의 시발점이 됐을 줄은 그땐 몰랐죠.” 수입개발부서는 해외에서 제품을 찾아 신상품을 개발하는 일을 하는데, 그가 현재 한 회사의 사장임에도 꾸준히 신제품 발굴을 위해 한 달 중 절반 이상을 해외에서 보내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수입개발만 23년째인 셈이다. 하지만 500여 가지가 넘는 신상품을 개발했음에도 번번이 실패의 쓴맛을 봤던 그 시기는 한마디로 지옥이었다. 그렇지만 그는 계속해서 버텨나갔다. 오기가 생겨서 전 세계의 식품 쇼가 열리면 안 가본 곳이 없을 정도였다.
그렇게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던 무렵, 입사한 지 5년이 채 안 되어 IMF 금융위기로 인해 다니던 회사를 퇴직하고 만다. 회사는 그만뒀어도 개인적으로라도 수입개발을 하고 싶었던 그는 왕복 200만 원의 비행기를 타고 무작정 거래 회사인 브라질의 바두코 회사를 찾아갔다. 그가 수입하고 싶었던 제품은 바두코 웨하스였다. 그러나 돈이 없었던 그는 매니저에게 웨하스의 용량을 좀 더 키우고, 외상으로 거래 해달라고 요청을 했지만 두 가지 요청 모두 거절당했다. 그는 포기하지 않고 3일 동안 회장을 직접 만나게 해달라는 요청을 했고, 마침내 바두코 회장을 직접 만나 설득에 성공하며 거래를 성사시켰다. 그렇게 해서 우리나라에 들어오게 된 웨하스는 성공적으로 판매되었다. 한 백화점에서는 6시간 만에 300박스가 팔릴 정도로 엄청난 인기였다. 이 성공을 계기로 손 동문은 앞으로 수입개발을 할 수 있는 탄탄한 기반을 갖추게 됐다. “만약 이 사업이 망했더라면 오늘날의 저도 없을 뻔했죠. 하하.”

손 동문의 직원들이 소비자의 반응을 알아보기 위해 젤리 시식코너를 준비하고 있다.

지금의 ‘젤리 왕국’을 이뤄내기까지
그렇게 손 동문은 점차 사업의 규모를 늘려갔다. 하지만 시련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2004년도에 다른 회사 제품의 젤리가 질식사 문제를 일으켜 덩달아 젤리를 판매했던 그의 회사 제품마저 판매 금지를 당한 것이다. 들여왔던 상품은 모두 반품됐고, 어쩔 수 없이 사원들의 90% 이상을 구조 조정할 정도로 회사의 규모를 줄였다. 상황은 심각했지만 그는 좌절하지 않고 조그마한 가건물을 빌려 다시 사업을 시작했다. 포기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상품개발을 이어간 것이다. 그렇게 해서 차리게 된 회사가 지금의 ‘키즈웰’이다. “키즈웰은 큰 꿈을 갖고 창업한 것은 아니에요. 아이들이 좋아하는 상품을 만들면 그 아이들이 어른이 돼서도 상품을 기억할 것이고, 잘 공략하면 그 고객층이 오래 유지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그의 회사는 해외에서 과자류를 수입해 국내 편의점과 할인점에 판매한다. 다만 해외에서 제품을 그대로 들여오는 것이 아닌, 한국 소비자의 기호에 맞게 패키지, 디자인, 심지어 제품의 맛까지 직접 바꿔 들여온다. 20명도 채 안 되는 직원들로 구성됐지만, 연 매출은 250억에 가깝다. 이러한 성공의 비결로 그는 스피드와 타이밍을 꼽는다. 큰 회사와 달리 그의 회사처럼 작은 회사는 여러 사람의 반복되는 결재를 거칠 필요가 없어 상품 개발이 훨씬 빠르다는 것이다. 타이밍에 대한 그의 신념도 확고하다. “저는 저녁 9시쯤이면 잠자리에 들어 새벽 3시에 잠에서 깨요. 그 시간에 해외는 낮일 테니 바로 전화로 거래처들과 연락을 할 수 있기 때문이죠. 남들은 이메일 쓸 시간에 저는 전화로 해결하니 더욱 차별화가 될 수 있죠.”

키즈웰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팀을 후원했을 당시 경기장 앞의 손 동문.

독점은 진보의 원동력이다
손 동문은 그동안 자신을 이끌어온 신조가 ‘독점’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그가 가장 좋아하는 말은 바로 ‘독점은 진보의 원동력’이다. 그가 특히 젤리에 집중하게 된 이유는 한국에서 젤리 시장의 성장 가능성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외국 같은 경우는 후식으로 젤리를 먹는 경우가 흔해요. 유럽도 그렇고. 근데 유독 우리나라만 젤리를 먹는 문화가 없어요. 그렇다고 사람들이 젤리를 싫어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남들이 주목하지 않는 영역을 찾아 손 동문은 젤리 시장을 독점했고 지금의 회사 실적에 이르게 된 것이다.
“사람들이 쇼핑카트에 신라면보다 젤리를 더 많이 담아갔으면 좋겠어요.” 손 동문이 생각하는 앞으로의 꿈이었다. 자신감이 가득한 그의 말을 들으니 ‘젤리왕’으로서 우리나라 젤리시장을 선도할 그의 모습이 더욱 기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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