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얼마 전 한강에서 열리는 작은 마라톤대회에 다녀왔다. 고등학교 때 체력장을 하면 다른 종목은 몰라도 오래달리기만큼은 반에서 1등을 유지해 오던 나였다.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아무런 준비도 없이 마라톤 10km 대회를 신청해버렸다. ‘나 정도면 마라톤에 소질이 있으니까 잘하겠지?’ 공부는 안 했어도 시험은 잘 치고 싶은 은근한 기대처럼, 마라톤 전날 밤까지도 고등학교 졸업 후 뜀뛰기 한번 하지 않은 나는 10km 마라톤에 대한 부담감이 전혀 없었다. 남들보다 빠르고 쉽게 완주하는 것을 꿈꾸며 평소처럼 새벽 2시에 잠들었다.
하지만 웬걸. 마라톤, 그것도 만만하게 봤던 10km 마라톤을 달리는데 숨은 턱 끝까지 차올랐다. 10km 마라톤이라고 무시한 나 자신이 무척이나 한심스러웠다. 과거에 오래달리기 1.5km를 잘 뛰었기 때문에 전날 5시간 밖에 못 잤어도 나는 아주 쉽게 마라톤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7시에 부랴부랴 일어나 대회 장소로 이동하다 보니 몸 상태가 최악이었고 한 번도 연습해보지 않아 뛸 때 발바닥이 찢어질 것 같았다. 이런 내 모습을 보니 10km 마라톤 하나를 위해 열심히 준비해 오신 다른 분들께 뭔가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인생은 마라톤’이라는 말, 고등학교 수험생 시간 동안 정말 질리도록 들어왔던 그 말이, 마라톤을 뛰어보고 나니 이제야 실감 났다. 나의 페이스를 유지하려 자신을 진정시켜 봤지만, 한 명 한 명 사람들을 앞질러가야만 한다는 압박감을 느낀 나머지 초반에 오버페이스를 했다. 그래서 중반 지점인 5km 반환점을 돌 때쯤에는 체력이 남아있지 않아 거의 걷다시피 했다. 더욱 서러웠던 점은, 남들에게 뒤처지는 동안 어느 누구도 나를 신경 써주지 않고 묵묵히 다들 자신의 길에서 달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나 역시 남들을 앞지를 때 그랬던 것처럼.
이번 경험을 통해, 인생은 마라톤이라는 그 흔한 말이 뼈저리게 내 마음속에 박히게 되었다. 남과 나를 비교하고 그들을 앞질러야 한다고 생각하다 보면 오히려 상대방을 앞지를 수 없어 박탈감만 더욱 커졌다. 하지만 남들보다 높은 기록을 내야 하는 무한경쟁에서 잠깐, 아주 잠깐이라도 눈을 떼고 주변을 둘러보게 된다면, 보이지 않았던 한강 경치의 아름다움을 알 수 있고, 가을이라는 날씨, 그 녀석이 뽐내는 아름다운 하늘빛과 시원한 공기를 맛볼 여유를 가질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내가 걸어가는 길이 온전히 보인다.
그냥 그런 것 같다. 누구는 토익이 만점이고 누구는 화려한 공모전 수상 실적을 가지고 있고 누구는 산더미만한 스펙을 가지고 있고, 이런 것만 신경 쓰며 남들 한 번 이겨보겠다고 부랴부랴 뒤쫓아 가는 내 꼴은 결승선을 향해 채 절반도 가기 전에 바닥에 뒹굴 것이다. 금, 은, 동메달이 뭐가 중요한가? 자기 페이스대로 열심히 한 그대에게는 그 무엇보다도 아름다운 완주 메달이 주어질 텐데. 좀 더 여유를 가지고 경치나 좀 구경하다 가자 우리.

이선웅(소가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