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이소연 편집장 (ery347@skkuw.com)

촛불은 꺼질 줄을 모른다. 꺼지려고 해도 꺼질 수 없는 밤이다. 학내신문이라고는 해도 촛불이 꺼지지 않는 현 시국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학생들이 학외에서 참여하는 다양한 활동을 취재하러 가기도 했지만, 우리 안의 목소리는 어떠한가도 들어보고 싶었다.
발간일은 정해져 있기에 주어진 시간은 짧았다. 객관식으로 구성한 설문지라면 비교적 짧은 시간 내에 많은 응답자를 확보할 수 있었겠지만, 현 상황에 대해 자유로운 의견을 적을 수 있도록 질문지를 구상한 이상 응답자는 더 적을 수밖에 없었다. 기자들은 과방, 학생회, 학회, 동아리 등 40여 곳에 방문해 설문을 부탁했다. 단위별로 부탁하는 것 외에 추가적인 응답을 받기 위해 게시판을 설치하고 설문지를 부착했다. 의견을 적어 설문지에 붙일 수 있도록 메모지와 볼펜을 함께 뒀다. 유일하게 허락된 곳은 인문관과 경제관 사이. 호암관 3층 신문사에서도 창문 너머로 설치된 게시판을 볼 수 있었다.
왕래가 거의 없는 주말에 설치한 뒤 일주일의 시작을 맞았다. 신문사 창문 밖으로는 게시판의 설문지를 읽어보는 학우들의 모습이 보였다. 시간이 흘러 게시한 지 일주일이 되는 날, 수거한 설문지에는 빈 메모지가 붙어있었다. 옆에 놓아둔 볼펜 한 다스가 사라진 사실만이 사람이 왕래했음을 말해주었다. 방문해 부탁했던 설문지는 잃어버린 곳이 몇 군데, 의견을 남겨준 곳이 몇 군데 있었다. 학우들뿐 아니라 교수님들에게도 응답을 부탁하며 전화를 돌렸다. 질문에 응답해주신 분은 많지 않았다. 바쁘신 분도, 정치적 견해를 밝히기 어렵다는 분도, 사안에 대해 논할 입장이 아니라는 분도 있었다.
분명 이번 설문조사의 응답률은 낮았다. 그러나 이를 학내구성원 전체에 일반화할 수도, 의견이 나오지 않는 것 자체를 문제시할 수도 없다. 짧은 기간에 준비가 부족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과연 내가 기자가 아니었다면 설문지에 의견을 적었을까?’라는 물음에 답하기 망설여지기 때문이다. 문득 예전에 한 선배가 썼던 칼럼이 떠올랐다. 네 입을 막은 것은 내 손이었다는 내용의 칼럼. 우리는 민주주의가 자유로운 논의와 토론에 의해 발전할 수 있는 것이라고 배웠다. 그러나 정작 정치에 관한 개인적인 견해를 밝히기는 꺼려졌다. 누군가 정치적 의사를 적나라하게 드러낼 때 질타를 받는 일은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정치적 견해에 대한 자유로운 비판이 아닌 비방이 가해질 때도 묵인했던 건, 그럼으로써 불합리하다고 여겨질 수도 있는 질타에 동조했던 건 결국 내가, 우리가 아니었을까. 그런 내 손이 결국 다른 이들의 입을 막게 됐다. 
그러나 아직 촛불은 켜져 있다. 어느 누구도 말을 꺼내지 않는 시위 현장에서도 모두 촛불을 통해 외치고 있다. 지금 내가 해야 하는 일은 손에 든 초에 불을 붙이고 다른 이들과 함께 서는 것이다.